소녀의 복수

by the그레이스

나는 7남매의 여섯째 딸이다.

요즘은 보기 드문 가족구성이지만,

'7남매예요~' 대답할 때

내가 낳은 건 아니지만 굉장히 뿌듯하고, 행복하다.


32년 전,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 직장인까지 골고루 분포된 우리 자매.

우리가 살았던 작은 방 두 칸은 24시간 수다와 웃음소리로 바글바글 행복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난 잊을 수 없는 '웃픈 날'을 기억한다.




나는 어린시절부터

부모님 식사하실 때, 언니들 야식 먹을 때 꼬~옥! 껴서 한입씩 얻어먹곤 했다.

그래서 위로도...옆으로도....쑥쑥 성장했다. (그때 좀 누가 말려주지...)

초등학교 5학년이 될 무렵엔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인 언니들과 10cm정도 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겨울 빨래가 안마르던 어느날엔 언니 옷을 접어입고 학교 갈 때도 있었다.


그날 밤 나는 일찍 잠이 들 수 없었다.

시계가 11시 반을 가리키는 걸 보고 그 이후 시계본 기억이 없는 걸 보니,

난 그 시간 즘 잠들었던 것 같다.

내일은 '소풍'이다.

부모님은 바쁘시고, 언니들도 바쁘고,

늘 동네만 떠돌던 내 또래 아이들은 소풍만을 기다리며 학교를 다닌다.


저녁상을 치운 엄마는 무려 3천원을 주시며, 내일 소풍에 가져갈 과자를 사오라 하셨다.

(이 당시 새우깡은 300원이던 시절이었다)

슈퍼까지 한달음에 달려간 나는 과자, 선생님 드릴 음료수, 껌 등을

요리조리 계산해서 잔돈 남기지 않고 샀다.

학교 가방에서 책을 꺼내고, 질소로 꽉찬 과자를 빵빵히 채웠다.

으흐흐흐-

머리맡에 놓인 아슬아슬 잠길 듯 말듯 잠긴 가방을 보니 행복했다.

내일 선생님께 음료수도 드리고,

평소 비싸서 먹지 못한 과자도 자랑스럽게 꺼내놓는 내 모습을 상상했다.

소풍은 가지 가지도 않았지만, 내 마음은 몹시 몹시 설레고 좋았다.


당시 딸 여섯이 한 방에서 잠을 자던 때였다.

밤 11시까지 말똥말똥한 내 눈을 본 언니들은 낼 지각한다고 겁을 줬다.

그래서 겨우...겨우...눈 감고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누구야!!!!!!!!!!!!!!!!!!!!!!!!!!!!!!!!!!!'

눈 뜨자마자 행복감에 젖어 바라본 내 가방은....

질소 과자로 몹시 빵빵해야했던 내 가방은...

말 그대로 텅- 비어있었다.


언니들은 다 등교하고... 중학생 언니만 남아있었다.

'언니들이 너 주래'하며 건넨 4천원.

야밤에 내 가방에 들어있는 과자를 까먹었으니...

학교 가는 길에 슈퍼에서 다시 과자를 사갖고 가라는

느아쁜~~ 언니들! 그돈을 쥐고 엉엉- 울었다.

별거 아닌 일에 운다고 엄마에게 등짝을 한 대 맞았지만

나의 상실감은 나라잃은 것처럼 크고 서러웠다.


그래도 4천원이 어디냐며, 금새 헤헤거리며 슈퍼에 들러 가방을 다시 채우고 소풍을 갔다.


그날 밤, 언니들이 깔깔대며 내 가방 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바스락~ 과자를 꺼내면 내가 잠자는 자세를 바꿨다고 한다.

그 모습이 웃겨서 하나하나...꺼내 먹었다나.

내 모습을 상상하니 웃겼지만, 감정이 다시 되살아나며 서러웠다.

울다..웃다...그렇게 추억 하나로 마무리가 됐다.


며칠 후 주말.

난 아침 일찍 일어났다.

5학년 아이가 아침 일찍 갈곳도 없고, 약속도 없었지만 일찍 눈을 떴다.

벽에 걸린 옷걸이를 쓱- 쳐다보고, 부엌으로 들고 나갔다.


자매들이 있는 집엔 늘 옷싸움이 난다.

자기 전에 옷걸이에 옷을 걸어두고 내일 입을 옷을 선점해놓고 잠이 든다.

오늘은 내 복수의 날이다...

언니가 찜해둔 옷을 입고, 난 유유히 동네 친구집 앞까지 걸어갔다왔다.

(지금 생각해봐도 열두살 아이에겐 갈 곳이 너무 없던 시절이었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마침 일어난 옷주인 언니에게 등짝 한대 맞고 상황은 종료됐으나

어쨌든 소녀의 소심한 복수는 미수에 그쳤지만

아주 만족스러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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