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도는 실시간입니다.

by the그레이스

코로나로 아이들의 등교가 계속 연기될 무렵.

청정지역이었던 친정에 며칠 머무르고 있었다.


엄마와 어린 딸은 알콩달콩 하지만,

엄마와 내 가정을 꾸린 나이 든 딸은 티격태격이다.

끝도 없이 아끼는 엄마와 이런 건 좀 버리라는 나이 든 딸의 전쟁이 사나흘째 이어지고 있었다.


한 번 쓴 비닐백도 헹구고 화분지지대에 걸어 말려 다시 쓰는 엄마.

비위생적이라고 버리라고 해도 구멍 안났다고 또 쓸수 있다는 주장.


어중간히 남은 반찬은 이 접시로 옮기고, 저 그릇으로 옮겨 담는 엄마.

반찬그릇에 덜어먹은 반찬이 남으면 버려야한다고 해도

아깝다고, 한 끼 더 먹고 버리자는 엄마의 주장.


이미 유통기한이 석 달 지난 핸드크림을 다시 챙겨넣는 엄마.

염증생긴다고 버려야한다고 해도

발에 바르면 괜찮다는 엄마의 주장.


'놔둬라'와 '버려라'의 싸움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수시로 짜증내시는 엄마와 더 살다가는 더 크게 싸울 것 같아서

오늘 다시 서울로 가겠다고 했었다.


엄마는 집으로 간다는 딸도 챙겨야하고,

재개발문제 때문에 예전집도 들러야해서 마음이 바빴다.


'당신은 집에 있어'라는 아빠의 만류에도

얼른 일보고 돌아와서 이것저것 싸주겠다고 말하시고

바쁜 마음으로 휙- 사라지셨다.


그리고 두 시간 후,

응급실이라고 연락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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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며칠 엄마 표정이 일그러져있었다.

4년 전, 가벼운 뇌출혈로 석달간 병원에 입원하셨던 엄마는

빠르게 회복하고 일상으로 돌아왔다.

예전과는 살짝 다른 엄마였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몸상태, 새로울 일이 없는 매일이 엄마 자신을 힘들게 했나보다.


이번이 두 번째였다.

중환자실로 옮기셨다는 연락을 받고

언니와 나는 첫 번째보다 좀 더 침착하게 병원짐을 쌌다.

슬리퍼도, 로션도, 습도계, 수건에 옷걸이까지.

짐을 싸며 피식- 웃음이 났다.


'언니, 병원 짐싸는 거도 한 번 해봤다고 뭐가 필요한지 딱딱 나오네'


그런데, 코로나로 타지역 환자를 이 지역 대형병원에 입원시키며

보호자 1인도 머물수 없는 상황이었다.

병원에서는 엄마를 중환자실로 옮기며 몸에 있는 모든 걸 비닐봉투에 담아 건넸다고 한다.

엄마 옷, 신발, 휴대폰, 틀니까지...

아빠가 가져온 엄마옷을 보며 난 아이들을 챙겨 도망치듯 집을 나섰다.


나와 아이들 챙기느라 바쁜 언니들과 아빠가 이제 엄마를 챙기셔야하기 때문이다.

눈물을 간신히 참고, 운전을 했다.

인사도 안했는데, 아침까지도 티격태격 엄마한테 쌀쌀맞은 말만 했는데...

연락도 안되는 병원에 누워계실 엄마 생각에 마음이 무너졌다.


매일 중환자실 간호사가 보호자 1인에게 환자의 상황을 전화로 전해준다고 했다.

며칠간 누워서 물도 못드시던 엄마는 사흘쯤 지나서 언니와 직접 통화를 하셨다.

'엄마 괜찮고, 걱정하지 말라고, 입이 마르지만 괜찮다고

막내 잘 올라갔냐... 냉동실에 생선 챙겨줘야 했는데...'


틀니도 없고 뇌가 고장나 다 무너진 발음으로

성질 나쁜 막내 딸에게 생선 못 챙겨준 걱정이라니....

엄마.....

미안해 미치겠다. 죄송스러워 미치겠다.


인상으로 일그러져있던 엄마 얼굴이 생각 안나고

방긋 웃는 엄마 얼굴만 생각이 났다.

얼른 엄마 얼굴을 보고 싶었다.


며칠 후, 일반 병실로 옮긴 엄마와 통화를 하게 됐다.

'으어구도 모보고 그아서....

내앵도시레....'

엄마는 또 냉동실 생선 못챙겨준 이야기다.

'엄마~ 담에 내려가서 내가 싹-쓸어담아서 올께~

잘 먹고, 잘 자고, 운동 많이 하고 있어!'하고 눈물나기 전에 빵긋 웃고 끊었다.


이번에도 길고 긴 병원생활 석 달.

엄마가 퇴원하는 날 맞춰 친정으로 갔다.

문 앞에 서서 퇴원하는 엄마를 품에 안았다.

작아졌지만, 따뜻했다.

기억 속 울엄마 맞다.


석달 전 그렇게 아침에 집을 떠나, 다시 못만났으면

그 아침을 두고두고 후회했을 것 같았다.

평생 입을 닫고 싶을 것 같았다.


다시 나에게 기회를 준 엄마에게

좋은 말, 좋은 것만 해드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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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 되도록이면 자주 친정에 간다.

언어와 왼손 기능이 좀 떨어진 엄마와 함께

스티커 놀이도 하고, 말 따라하기 놀이도 하고, 동요도 부른다.

가까운 곳이라도 드라이브 나가, 잘 드시는 음식을 사 먹는다,

새벽배송으로 두부와 두유, 고기, 과일같은 좋은 단백질을 챙긴다.

내가 좀 힘들어도,

엄마가 건강을 잃은 현실에 우울해하지 않도록.

엄마를 걱정하고 사랑하는 자녀들이 항상 엄마를 예의주시하다는 걸 알려드리고 싶다.


그래서,

오래오래 '엄마'하고 부르고, 안아보며 살고 싶다.


나이가 들어가며, 옛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음을 깨닫는 일이 자주 생긴다.


'부모는 효도할 때를 기다리지 않는다'는

옛말에 또 한 번 무릎을 치는 날들이다.


효도는 실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