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6년 차, 돌이켜보면 내게는 선배가 있던 시절보다 없던 시절이 훨씬 많았다. 첫 회사였던 주간지에서는 선배와 선임이라는 개념이 존재했으나, 주간지 특성상 각자 자신에게 주어진 매주의 마감을 치르기 바빴다. 두 번째 회사였던 매거진을 발행하는 출판사 역시 선배라는 개념은 모호할 뿐 각자의 업무에 집중하기 바빴다. 지금 생각해보면 각 에디터의 개성을 중시하던 매거진 편집 방향이었을까 싶기도 하지만. 이 생각도 역시 습관성 포장이겠다. 세 번째 회사는 선임이 있었으나 동갑인 데다가 업무 능력, 그러니까 내가 요즘 계속 말하는 퍼포먼스가 나와 비등비등하거나 혹은 내가 더 앞설 때도 있는 그런 사수였다.
이렇게 3번째 회사까지 제대로 된 선배를 만나지 못했던 나. 내가 선택한 4번째 회사에는 꼭 선배가 있어야 했다. 선배가 그간 갈고닦은 업무 능력과 에디팅, 그리고 에디터십까지 한 데 모아 차곡차곡 배우리라 생각했다. 당시의 나는 현명하게 그리고 어쩌면 이기적인 마음으로 타인이 닦아놓은 길에 무혈입성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던 것 같다. 그리고 하늘이 그 바람을 들었는지 무려 4명의 선배가 있는 회사에 입사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그중 가장 배우고 싶고, 함께 일하고 싶었던 1명은 개인 사정으로 휴직에 들어갔고, 또 1명은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큰 실망감을 안겼다. 앞으로도 회사에서 그렇게 울어볼 날이 또 있을까. 눈물을 닦느라 밤을 지새울 날이 또 있을까. 그리고 그중에서도 딱 1명, 세심하게 a부터 z까지 챙겨주는 성미는 아니었으나 늘 정확한 가이드와 방향으로 날 이끌어준 선배가 있었다. 그 선배는 항상 내 얘기를 귀담아 들어줬고, 나의 퍼포먼스를 좋게 봐줬다. 그런 그와도 회사 사정으로 헤어졌다. 나에게 선배 천하는 딱 1년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어느새 4년 차 에디터가 됐다.
선배는 나와 헤어질 때 그간의 다정함이 농축된 듯한 편지 한 장을 건네주었다. 그 편지에는 나를 항상 기대보다 큰 만족을 선사해주는 동료이자 후배라는 말과 그간 나와 일한 것이 즐거웠다는 회고가 담겨있었다. 또 그녀답게 앞으로의 방향 설정을 해주는 것도 잊지 않으며 훗날 다시 만나자고 했다. 혼자 성장할 때 얻어야 할 것들의 퀘스트와 밀도에 대해 써준 편지. 이 편지로 충분하다 싶었다. 이후로 그 편지는 가끔 힘들 때, 커리어와 방향에 대한 고민이 짙어질 때마다 꺼내 읽는 신물 같은 게 됐다. 그게 2020년이었으니, 벌써 2년이 훌쩍 지나 어느새 햇수로 6년 차 에디터가 됐다.
선배 품에서 때로는 칭찬을 받으며, 또 때로는 부족한 나를 직면해가며 그들의 에디팅을 흠모하고 싶은데, 어느새 그런 롤은 점점 멀어져 간다. 심지어 누군가가 흠모하는 에디팅을 내가 해내야 하는 그런 연차가 됐다. 그런데도 그렇게 혼자 성장하는 동안 내게는 느슨하게 나의 성장을 돕고, 지켜보는 선배들이 함께했음도 깨닫는다. 위의 선배는 자신이 pm으로 맡은 프로젝트를 내가 물려받은 것을 기뻐해 줬고, 잘 해낸 것을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고 자랑스러워해 줬다. 누군가에게 자랑스럽다는 말을 듣는 기쁨과 감격이 크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그 말을 들으며 나중에 나도 후배의 성장을 자랑스러워하는 멋진 선배가 되리라 다짐했다. 또 한 선배는 직속 선배는 아니었음에도 나의 일을 만들어주며 멀리서 커리어의 확장을 돕는다. 그 방향이 나를 위한 유연한 연대임을 안다. 이렇게 혼자가 됐음에도, 누군가의 느슨하고 살뜰한 연대 속에 하루하루 꽤 잘 크고 있다고 믿는다. 마치 식물을 잘 키우는 사람들에게 그 비법을 물으면 무관심 속 느슨한 애정인 것처럼. 자주 들여다보고 물을 주는 것보다, 잊을 때쯤 물을 주는 것이 비법이라는 그들의 말처럼. 물도 애정도 관심도 과도하면 넘치고, 또 그 습기가 자리한 자리에는 구김이 남기 마련이니까. 홀로 크는 에디터로서 현재 진행형인 나, 여전히 정답은 모르겠으나 이렇게 느슨한 연대 속에서 조금씩 조금씩 성장하며 싹을 피운다. 마치 초봄의 목련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