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부터 조금씩 단조로워진 일상은 차곡차곡 잘 정리된 수납장처럼 마음을 차분하고 고요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그 사이 필라테스를 6개월 더 끊었고, 방역지침 강화로 9시반이 없어진 바람에 부랴부랴 퇴근하고 8시 필라테스 수업을 듣고 있다. 8시반 인원이 확 느는 바람에 요즘은 맨몸 필라테스라는 것도 해보고 있다. 기구 필라테스도 죽을 맛이었는데, 맨몸 필라테스는 스프링의 텐션도 어떤 기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는, 그야말로 내 팔다리만 의지해서 하는 아주 무시무시한 필라테스다. 그만큼 효과도 좋다는데 근육통 정도를 봐서는 맞는 말 같다.
요즘은 내 글의 방향성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오늘 마신 한 잔의 차가, 또 잠깐 스친 인연이 해주는 부끄러운 이야기가, 지금 내리는 눈 같은 한 순간이 우리를 긍정적인 삶으로 이끌 수 있다고 믿는다. 내 글은 그 믿음 아래 쓰고, 또 쓰인다. 그래서 내 글을 읽는 모두에게 그런류의 긍정의 마음이 닿길 바란다. 모든 생각과 지향이 하나의 라이프스타일로 이어진다고 생각하는 나는 힘든 일을 대하는 방식이 내가 음식을 섭취할 때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어린 시절부터 음식을 잘 씹지 않고 휙 삼켜버리는 습관이 있는데, 부정적인 감정도 그렇게 큰 음식물을 삼키듯 꿀꺽 삼킨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힘들고 슬픈 일을 글로 적는 것도, 타인의 그런 감정을 글로 마주하는 것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고도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무언가 부정적인 감정을 티 내는 방식의 직접적인 표현이 싫었다. 내 방식이 회피는 아닌 것 같고 오히려 큰 음식물처럼 큰 감정을 한입에 꿀꺽 삼키는 과도한 직면 같은 거려나. 물론 가끔 힘들 때 나만 볼 수 있는 메모장에 감정을 털어놓는 글을 쓰기도, 기도 손을 모은 채 잠들기도 한다. 아무튼 이런 감정 처리 방식의 장점은 괴로운 일을 서둘러 잊는 훈련이 된다는 것이고, 단점은 감정이 잘 희석됐는지 나 조차도 의아한 순간이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중간 어디쯤으로 가끔씩 힘든 감정에 대해서도 써보기로 했다.
연초부터 괴로운 일이 있었다. 그 일은 내가 지키고 싶은 오리지널리티를 다시 한번 흔들기도 했고, 시시때때로 내 마음을 어지럽게도 했다. 그때마다 깊은 탄식과 번뇌가 찾아왔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미 부표 위로 올라온 그 감정을 유유히 흘러가게 두는 것, 그 감정의 부표를 굳이 잡고 있지 않는 것. 미용실에 가서 오랜만에 패션 잡지를 읽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는, 스트레스를 받아들이는 마음의 근육이 견고한 것 같다는 에디터의 물음에 그레이는 점점 감정을 컨트롤 하는 짬이 생겼다고 했다. 예전에는 불편한 마음이 들면 그것 때문에 하루를 망치는 일이 다반사였지만, 그 기분을 다스리고 해소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 뿐이라는 생각에 그 상황에서 최대한 빨리 벗어나는 게 답이라는 결론을 냈다고. 그게 결국 내 몸과 마음을 위하는 길이라고. 그레이의 인터뷰를 읽고 확신했다. 모든 삶의 방식이 옳고 그른 것으로 판단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적어도 나는 내 몸과 마음을 위하며 살고 있구나. 나를 위해 애쓰며 살고 있구나. 올해도 여전히 나는 내 몸과 마음을 위해 일주일에 2번 반드시 필라테스를 하고, 지금껏 꿀꺽 삼킨 감정이 잘 소화될 수 있도록 마음을 두루두루 살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