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가장 잘한 일

엄마랑 태국 여행

by 채율립

작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처음으로 우울함을 절절히 느꼈습니다. 회사 때문에 우울함이 생겼고, 차차 깊어졌던 것 같아요. 그래서 잠깐 동안 훌쩍 태국으로 떠나기로 했습니다. 힘든 시간을 버티며 ‘퇴사한다면’이라는 가정에는 항상 ‘태국 여행’이 먼저 떠올랐거든요. 혼자 여행을 계획하면서 문득 내가 제일 좋아하는 태국을 사랑하는 엄마와 함께 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툭, 엄마에게 태국 여행을 제안했더니 엄마가 흔쾌히 좋다는 겁니다. 평소라면 괜찮다고 잘 다녀오라고 했을 텐데 말이죠. 그런 엄마의 의지와 귀여운 욕심이 반가웠습니다.


본격적으로 항공권을 끊고 숙소를 예약하면서 일정을 잡았습니다. 엄마와 함께하는 여행이라 준비 과정부터 조금 달랐습니다. 평소라면 가성비 좋은 숙소를 먼저 찾았겠지만, 효도여행이라는 특성에 맞게 4성급 이상의 호텔 위주로 찾아보게 됐습니다. 혼자라면 노점 쌀국수 한 그릇을 호로록 먹겠지만, 근사한 식당에서의 한끼를 찾아보게 되고요. 여행을 준비하면서 문득 엄마와의 두 번째 태국 여행을 기약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여행엔 조금 더 무리해서 5성급 호텔을 예약하고 호텔 스파를 예약했습니다. 돈은 어떻게든 또 벌면 되지만, 엄마와의 여행은 어쩌면 다시 기약하기까지 생각보다 오래 걸릴 수도 있잖아요.


여행하면서 나의 젊음이 엄마의 젊음을 희생해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생각이 짙어졌습니다. 그래서 오믈렛을 다 먹고 한 개 더 먹고 싶다며 욕심부리는 모습도, 눈이 번쩍 뜨이는 화려한 분수쇼 앞에서 이런 건 태어나서 처음 본다며 아이처럼 좋아하는 모습도 그렇게 기쁘지만은 않았습니다. 아직 엄마가 보지 못한 세계가 너무나도 많다는 것과 그만큼 젊음을 많이 잃어버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엄마의 표현을 빌려 ‘다 차려 놓은 저의 여행에 엄마가 숟가락을 얹는 것’으로 시작된 여행이었지만, 돌이켜보니 올해 가장 잘한 일은 엄마에게 작지만 하나의 단단한 세계를 보여줬다는 것인 것 같습니다. 이걸 시작으로 더 넓은 세계를 함께 거닐고 싶다는 다짐이 생겼습니다. 내년에도 엄마에게 또 다른 세계를 보여준 일을 내년의 가장 잘한 일로 꼽고 싶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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