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희의 랜선 이모

by 채율립

요즘 내가 흔히 말하는 덕질을 하는 대상이 있다. 성은 홍이요, 이름은 춘희. 이름하여 홍춘희다. 이름만 들으면 50대가 훌쩍 넘은 중년 여성을 떠올리겠지만, 사실 춘희는 갈색 시바종의 여자 아기 강아지다. 실제로 한 번도 본 적 없는 춘희에게 빠진 건 남자 친구에게서 받은 한 장의 사진 덕이었다. 남자 친구의 회사 동료, 그러니까 춘희의 아버지가 춘희와 같이 출근하면서 남자 친구도 나도 춘희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이다. 그렇게 성사된 우리의 첫 만남, 춘희는 아기 강아지답게 그 자체로 똥꼬 발랄했다.


이후로 나와 남자 친구의 일상은 조금 변했다. 남자 친구가 출근을 잘했는지보다 춘희가 출근 도장을 찍었는지 먼저 묻게 됐고, 회사에서의 그녀의 근무 태도는 어떤지가 더 궁금해졌다. 춘희는 오자마자 신나게 영역표시를 하며 뛰어다니고, 춘희의 아버지는 그녀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뒤처리 하기 바쁘다고 했다. 또 춘희의 유일한 직장 동료인 둘리와 신나게 놀기 바쁘다는데, 둘리는 또 다른 동료가 데려온 검정 푸들이다.


이후로 남자 친구의 말을 빌려 회사는 가히 개판. 그래도 강아지들이 뛰어다니는 회사. 상상만 해도 회사 복지의 격이 다른데, 게다가 그 털보가 춘희라면 말 다했다. 춘희를 본 지 어언 몇 주, 잘 먹고 잘 누는 게 성장의 비결인지 영상으로 보는 춘희는 볼 때마다 훌쩍 자라 있다. 이상하게 빨리 크는 춘희를 보면서 아쉽고 아까운 마음이 든다. 아기 가진 엄마들이 아기가 훌쩍 크는 걸 보면서 조금만 천천히 커달라고 한다던데, 이게 그런 마음일지도. 언젠가 춘희 실물을 알현하는 그날까지 오늘도 춘희 랜선 이모의 덕질을 계속된다. 주욱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2020년 첫 번째 키워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