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니 블루

by 채율립

20대 후반 29살이 되자마자 30대를 준비하라는 듯 사랑니가 불편해져 왔다. 컨디션이 안 좋은 주였는지 오른쪽 아래 사랑니가 아프더니, 왼쪽 아래 사랑니가 아프고 곧이어 이 전체가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평소라면 그냥 잠깐 아프고 말겠지, 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겠지만 이번엔 그 아픔이 꽤 오래 나를 괴롭혔다. 또 이 전체가 욱신거리면서 전체 이가 빠질 것 같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는데, 살면서 한번 이가 모두 빠져 과자처럼 입안에 가득했던 끔찍한 꿈이 기억났다. 30대를 앞두고 있는 29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고 또 해내야만 할 것 같은 이상한 용기가 드는 29살. 그래서 사랑니 발치를 결심했다.

좋아하는 동네의 친절한 치과는 사랑니 발치를 안 한다고 했다. 연계된 큰 병원이 있어 소개해준다고 했지만, 시국이 시국이니 만큼 큰 병원을 가기엔 두려웠다. 친구들에게 수소문을 하며 사랑니를 발치할 치과 리스트를 뽑았다. 그 결과 광화문의 할아버지가 정답게 사랑니를 뽑아준다는 곳과 흔히 사랑니계의 공장이라고 불리는 곳으로 추려졌다. 사랑니 공장은 사랑니를 너무 많이 뽑아서 기네스북까지 오를 정도라고 했다. 홍보 카피도 무려 '5분 만에 ok'였다. 아뿔싸. 그래도 많이 뽑은 만큼 잘 뽑겠더니 해서 예약을 거치고 드디어 디데이가 됐다.

처음 아팠던 오른쪽 밑 사랑니, 무시무시한 매복 사랑니를 먼저 뽑기로 했다. 그때는 몰랐다. 마취가 깨고 이렇게나 아플 줄은. 진동과 함께 마취가 시작됐고, 입술이 마비된 느낌이 날 때쯤 마취했던 의사 선생님이 다시 돌아왔다. 시작인 모양이었다. 양 손을 포개고 두 손을 꽉 잡았다. 이를 부시는 소리와 함께 우지끈하고 사랑니가 나왔다. 정신 차려보니 입 안에 거즈를 물고 있었는데 3등분으로 부서진 사랑니가 굉장히 컸다. 그 이후로 소독하고 실밥을 풀고, 밥을 먹으면 사랑니로 생긴 구멍에 오롯이 큰 밥풀이 발견될 때까지 몇 주가 걸렸다.

그리고 또 용기를 내서 왼쪽 아래 반매복 사랑니 도전. 이번엔 마취가 잘 되지 않았는지 너무 아팠다. 다행히 매복 사랑니보다는 이후 통증이 약했지만. 뽑을 때 통증은 그 전보다 극심했다. 발치 후에 눈물이 한 방울 또르르 흘렀다. 방심한 대가를 톡톡히 치른 것이다. 이렇게 코로나 블루를 겪을 새도 없이 사랑니 블루를 겪고 있지만, 이 또한 어른이 되는 작은 과정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니 새삼 대견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이제 당분간은 사랑니 발치 안 해도 되니까. 아래 사랑니가 2개뿐이라 얼마나 다행인지. 역시 어른이 되는 건 어려운 것, 고통스러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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