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할 용기

by 채율립

지난 연휴는 좋아하는 친구와 그 친구의 소울푸드로 시작했다. 그녀의 소울푸드인 닭갈비, 그중에서도 서울에서는 먹기 쉽지 않은 숯불 닭갈비 맛집을 찾았기 때문이다. 그 숯불 닭갈비집은 중년 부부가 운영하는 곳인데, 가풍은 '가모장'인 것 같았다. 하나하나 반찬이 다 맛있다는 내 말에 남자 사장님인 아저씨가 와이프가 식품영양학과를 나왔다며 연신 칭찬을 하셨고, 반찬 리필을 요청한 손님 테이블에 빨리 반찬을 갖다 달라는 말에 여자 사장님인 아주머니가 재촉하지 말라며 큰소리를 내셨다.

올해 여름 우연히 발견한 이 숯불 닭갈비집의 별미는 뭐니 뭐니 해도 특제 소스인데, 이 집의 닭갈비 소스는 무려 3종이나 서브된다. 일반 고깃집에서 주는 양파 절임 소스와 직접 개발한 매콤 소스와 부드러운 맛이 일품인 하얀 소스까지. 그중 내 픽은 단연 하얀 소스다. 너무 맛있어서 먹다 보면 나도 모르게 게걸스럽게 먹게 되는 맛집. 이 맛집에 닭갈비를 소울푸드라 칭하는 친구를 데려오고 싶었다.

그 친구는 내가 생각나서 샀다며 노란 노트와 '에디터'라고 쓰인 빨간 볼펜, 자신의 마음을 적은 만두 엽서를 주었다. 내가 만두를 좋아하는 걸 알아서 그 엽서를 골랐다 했다. (웃음) 생각해보니 올해는 유독 지난한 인간관계에 많은 피로감을 느꼈다. '이렇게 마음 쓰면 뭐하나, 내 품만 들지'라는 생각이 꽤 자주 들었고, 관계에 실망도 많이 한 것 같다. 그리고 코로나 시대에 결혼식을 올리는 것을 보며 주변의 관계를 살피게 됐다. '만약 내가 이 시국에 결혼했다면, 어떤 친구들을 추려서 결혼식에 불렀을까.'

엽서를 천천히 읽으며 다시 관계를 맺고 잘 헤쳐나갈 힘이, 또 한편으로는 용기가 생겼다. 지금까지 과거의 추억 때문에 정리하지 못했던 관계를 극단적이진 않지만 마음속에서 잘 정리할 용기. 코로나19는 많은 것을 멈추게 했지만, 또 지금까지 돌아보지 못한 삶의 일부분을 돌아보게 만든다.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지금까지 정리하지 못했던 책장, 옷장, 신발장 그리고 관계의 장까지 여러 곳에 시선을 머물게 한다. 이렇게 코로나가 우리의 일상에서 완벽히 물러갈 때까지 조금씩 서서히 정리하다 보면, 내 삶은 그 전보다 더 단단해지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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