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갛게 빨갛게 물들었네

by 채율립

2년 전 가을, 27년 인생을 살면서 최초로 또 최고로 엄청난 우울함을 느꼈다. 아무리 단 걸 먹어도 기분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한번 빠진 자기 연민의 수렁에서는 도저히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겨우 출근을 해서 모니터 앞에 앉아 있으면 눈물이 한가득 고이는 그런 나날들. 인생에서 처음으로 경험해보는 슈퍼 리얼 우울이었다. 우울한 마음을 걷어내려고 가장 햇볕이 찬란한 시간에 좋아하는 공원에서 꽤 오랜 시간을 걸었다.

우울증에 햇빛이 특효약이라는 이야기는 자주 들어 알고 있었다. 사람들이 비교적 다른 계절에 비해 겨울에 우울한 이유도 햇빛을 자주 보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도 기사로 이미 접한 지 오래였다. 그렇게 걷기 시작한 공원 산책 한 바퀴에는 나를 무겁게 많들던 무거운 추와 같은 생각을 조금 내려놓고, 또 한 바퀴에는 힘들고 상처 받은 마음을 내려놓으며 그렇게 계속 한참을 걸었다.

그렇게 걷다 우울한 마음보다 신체적 피로가 커졌을 무렵, 나무 한 그루가 눈에 띄었다. 핑계 삼아 그 나무 앞에 다가섰다. 가까이서 바라보니, 여름 내내 푸릇했던 이파리가 아주 조금,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누가 일부러 붓칠이라도 한 것 같은 생경한 장면이었다.

수치화할 수 있다면 잎의 한 1/10의 정도 물들었을까. 자연의 시간에 맞추어 온전한 단풍이 되려고 서서히 준비하는 모습이었던 것이다. 내가 보기에 신비롭고 예쁜 풍경이지만, 저 나뭇잎들은 조금씩 힘들이며 자신을 물들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나뭇잎들도 가을을 맞이하고 싶어서 하는 건 아닐 테니까.

가을 준비에 돌입한 그 예비 단풍잎들을 보면서 나의 인생에서도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기 위해 이렇게 힘들고 우울한 마음이 드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후로는 아주 티끌만 한 우울만 마음이 들어도 무작정 걷는다. 앞으로 가을마다 떠오를 저 때의 풍경처럼, 지칠 때쯤 보이는 풍경에서 작은 위로를 얻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나의 코로나 4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