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마다 옷 정리를 하지만, 올해는 유독 정리에 대한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항상 꿈꾸던 미니멀리스트에 다가가기 위한 실천이 시작된 것이다. 내 옷장은 일명 패스트패션이라고 불리는 스파 패션의 온상지였다. 스파 브랜드들이 세일을 시작한다는 소식만 접하면 장바구니에 가득 담아 구매 버튼을 누르기 일쑤였다. 세일마다 내 옷장은 가득 채워져 갔다. 그렇게 명확한 기준 없이 값이 저렴하다는 이유로, 세일의 폭이 크다는 이유로 구매했던 옷은 막상 자주 입지 않거나 금방 망가지기 일쑤였다. 또 그 해는 이렇게 저렇게 잘 입었다고 하더라도 내년까지 기약할 만큼의 애정이 없는 옷이 많았다. 또, 내년에 열어 보면 정작 입을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다 보니 옷장은 정리되지 않은 채 찾는 옷도 보이지 않는 형국에 이르렀다. 이렇게 지낼 수는 없었다.
2020년 봄, 여름을 지나고 이제 가을, 세 계절을 정비하며 '내년에도 입을 옷', '내가 좋아하는 옷', '누군가 잘 어울린다고 했던 옷'이라는 체크리스트를 마련했다. 그러고 보니 버리기는 아깝지만, 정리해야 할 옷이 조금은 선명해졌다. 이제 체크리스트에서 걸러진 옷을 어떻게 정리하면 좋을지, 고민하던 순간 눈앞에 형형색색의 꽃 블라우스가 눈에 보였다. 기념일이나 친구와 만날 때 내가 꽤 즐겨 입던 옷이었다. 즐겁고 좋은 기억이 담긴 옷이기에 지금까지 쉽사리 정리하지 못했던 듯했다.
그러다 스무 살이 된 여자 사촌 동생이 떠올랐다. 자고로 스무 살은 학생이기에 예쁜 옷을 잔뜩 사기엔 경제적 어려움이 따른다. 라떼도 그러했다. 냉큼 유진이에게 카톡을 보냈다. "유진아 혹시 언니가 옷 정리 중인데, 멀쩡한데 잘 안 입게 된 옷들이야. 혹시 입을래?" 두근두근. 막상 왜 자신에게 옷을 버리려고 하지, 라며 기분 나빠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떨리는 마음으로 회신을 기다렸다. 10분 후쯤 알림이 울렸다. "나야 너무 좋지. (하트눈)"
수신인을 정하고 나니 옷 정리는 더욱 수월해졌다. 아까운 마음이 들어서 정리하지 못했던 옷도 아름다운 20살을 보내는 중인 사촌 동생에게 가닿는다면, 그래서 좋은 순간을 함께하는 옷이 된다면 이보다 좋은 선순환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정리 리스트에는 꽃 블라우스가 아주 많았다. 이 꽃 블라우스들은 올해 코로나로 동기들도 못 보게 된 유진이에게 작은 위로가 될 수 있으리라. 또, 나는 이번 정리로 조금 더 뾰족한 취향의 깔끔한 옷장을 가질 수 있으리라. 이런 생각을 하며 꽃 블라우스를 고이 접어 쇼핑백에 넣었다. 수신인이 이 옷이 잔뜩 담긴 쇼핑백을 받고 만족도 별 다섯 개를 누르기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