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떠날 수 밖에 없었던 이유
해외취업을 꿈꾸는 디자이너들 혹은 해외 디자인은 국내와 얼마나 다른가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고 있다면 나의 글이 조금은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취업이 어려운 대한민국에서 지방대 출신의 나는 그나마 남보다 운이 좋게 이름만 대만 알 수 있는 프랜차이즈 회사에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취업을 했다. 그 회사에서 작은 인턴경험이 적용되어 어찌어찌 입사하게 된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공부 꾀나 괜찮게 하던 친구들도 재수하는 경우가 많았고, 공무원 준비를 한다고 오랫동안 공부한 탓에 마음에 구멍이 크게 뚫려버린 친구들도 많았으니 정말 나는 운이 좋았다고 말할 수 있다.
큰 회사의 문제는 내부 정치에 따른 의사결정의 휘둘림이었다. 힘이 없는 막내 디자이너인 데다가 보호해줄 수 있는 선배 디자이너는 아무도 없었고, 큰 그림은 보지 않고 말도 안 되는 자잘한 수정이 10번 정도 핑퐁이 친 후에야 디자인이 나갈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항상 나는 10시에 퇴근을 했고 주말도 없이 1년 동안을 그 회사에서 충성을 해야 했다. 사람들의 수군거림을 1년 동안 들을 수 있었는데, "잰 언제 퇴사할까?" 혹은 "잰 언제 쓰러질까?(너무 오랜 야근 때문에 몰골이 장난이 아니었다)" 등등의 말이었고, 아무것도 배울 수 없고 버티기만 하는 이 직장에 남아 있을 수 없어서 교수님께 전화도 해봤지만 '버티는 것도 배우는 것이니 1년만 버텨보고 그다음에 네가 하고 싶은 말대로 해봐라'는 답변이었다. 1년 후에 거짓말처럼 사장님께서 "쟤는 뭐하는 앤 데 매일 마지막에 퇴근하냐"며 내 컴퓨터를 업그레이드해주셨고, 디자인팀에 좋은 리더와 선배 디자이너를 새로 뽑게 되었다.
좋은 부장님께 디자인 리더십을 배웠다. 진정한 존경심이 우러나 우는 리더십이었고 우리를 가족처럼 안아주셨다. 그분은 아직도 내 인생의 멘토 같은 분이다.
나의 디자인 스타일은 그때 당시 과장님께 배웠는데 그분은 뉴욕에서 오랫동안 디자인하신 분으로 지금 생각하면 나의 모든 디자인 스타일은 그분에게 전부 배웠다. 군더더기 없이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법에 대해, 균형을 맞추는 방법에 대해, 그리고 조화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버틴 1년의 눈물이 헛되지 않았구나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분들에게서 1년을 더 배웠고 처음으로 의사결정권자와 협상하는 법, 코어 디자인에 대해 처음으로 생각해보았다. 그 당시 정말로 의사결정권자들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협력업체의 말 놀림은 가히 경희로웠다. 회사의 코어 디자인, 아이덴티티 혹은 철학은 다 필요가 없었다. 그들의 쇼맨쉽과 교묘한 혀놀림에 의해 어이없는 의사결정이 되어 디자인이 나갔고, 가끔은 우리보다 협력업체가 더 큰 힘을 가지고 있었다.
의사결정권자들의 비위를 맞추는 게 나쁘다는 소리가 아니다. 그것도 능력이고 절대 과소평과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은 올바른 방향과 소신이어야 했다.
코어 디자인은 2008년부터 읽었던 유니타스 브랜드라는 책에서 알게 된 개념들이었다. 진정한 아이덴티티가 무엇인지, 어떤 디자인을 해야 하는 것인지.. 트렌드를 어느 정도 반영해야 하는지 등등 디자이너로서 철학과 중심을 잡을 수 있게 해 줬다.
그런 책들을 읽으니 더더욱
왜 나는 진짜 디자인을 할 수가 없을까?
학교에서 배운 것은 헛것인가?
무엇이 브랜드인가?
왜 CEO나 의사결정권자들은 브랜드의 개념을 모르는 것인가?
그저 화려하고 눈에 띄면 괜찮은 것인가? 등등의 의구심이 생겼다.
그때부터 내 속을 곯아가고 있었다. 디자인에 대한 갈증이 너무 심해서 주말마다 서울로 (당시 경기도 오산에 거주했다) 핫 플레이스와 멘토들을 만날 수 있으면 매주 보러 갔었다. 정말이지 한주도 안 빼고.
그러다 나는 두 번째 회사로 이직했다. 그 멘토 부장님이 이직하시면서 나를 채용해주셨다.
그 회사는 그 당시 업계에 최고에 회사였고, 서울로 근무하게 되어서 자연스럽게 서울에 거주하게 되었다. 디자인팀은 인테리어 공사팀을 포함하여 30명 정도 근무했고 디자인 사장님이 있을 정도니 꽤 큰 편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최고의 어벤저스 같은 디자인팀을 거기서 만나게 됐고 내 개인적인 역량이 많이 향상되었다. 내부 디자이너들끼리 건강한 경쟁을 하고 서로를 격려하고 칭찬하고.. 일이 많으면 서로서로 배분하고, 야근도 함께 해주는 정말이지 대단한 팀에 훌륭한 팀장님이 계셨다.
물론 이 회사에 이직을 했지만 나의 의구심은 쉽사리 해결되지 않았다. '삼성' CEO를 존경한다는 이 회사 CEO는 삼성처럼 디자인에 꾀 관심이 많았는데 그만큼 많은 디자인을 해볼 수 있는 경험을 쌓았지만 첫 번째 회사와 같은 문제가 있었다. 내부의 정치에 따른 의견 붙임은 불필요한 수정을 핑퐁 치듯 했다. 어떤 디자이너는 40번 수정 경력이 있으니 혀를 내두를 정도다.
한 에피소드로 이때 당시 자신이 한 디자인은 자신이 PT 할 수 있는 권한(?) 같은 게 있었는데 내가 CEO앞에서 디자인을 설명하자 A디자인과 B 디자인을 반반 섞어 달라는 것이었다. 차량 래핑 디자인이었는데 차량 얼굴 앞쪽에서 반은 디자인 A, 절반은 디자인 B를 디자인하라는 지시였다. 그 이유는 이 회사의 코어 디자인 때문이 아니라 '눈에 잘 보이니까' '주목받고 싶어서'라는 한결같이 답변이었다. 지금도 죄책감으로 남겨진 디자인의 의사결정이 잊히지 않는다. 회장님을 설득을 못했다는 나 스스로를 자책하며 그 당시 물류차량 30대는 그렇게 디자인되었고 소심한 복수로 그 파일 이름을 '아수라백작. ai'파일로 저장했던 기억이 난다.
이런 일로 내가 속상함을 토로하면 팀장님께서는 눈을 감으라고 하셨다. 아직도 어리구나 아직도 피가 끓는구나 하시면서... 그러면서 해외에서 디자인해보고 싶다고 다른 나라가 궁금하다고 했더니 '그렇게 불평불만만 하면서 지금 넌 무엇을 하고 있니?'라는 말이 머릿속을 꽝 때렸다.
그 길로 영어학원을 등록했고 매일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매일매일 8개월 동안 영어학원을 다녔다. 오전에는 해드 뱅이를 하며 매일 조는 것이 일수였는데 맘씨 좋은 팀장님은 이런 모든 것들을 눈감아 주셨다. 참 감사한 팀장님이었다.
완벽할 것 같았던 이 조직생활도 영원하지 못했다. 2년 8개월 만에 팀이 해체되었고 나는 매번 유니타스브랜드에서 소개되었던 ' 청렴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고객만을 생각하는 회사'에 입사 지원을 했고 운이 좋게 또 채용이 되었다. 내가 꿈꾸는 '브랜드를 디자인할 수 있는 회사야! 아마 해외로 나가지 않아도 될 것 같아!.. '라는 나의 생각에 뒤통수를 제대로 맞았다. CEO만 이 회사에서 고객에게 진심을 다하고 싶을 뿐, 회사 시스템은 정말 올드했다. 내가 '이게 브랜드 목소리니까 이렇게 디자인하는 게 맞습니다.'라고 하면 임원진까지 팔짝 뛰면서 '우리는 이렇게 오래 했기 때문에 갑자기 바꾸면 놀랄 수 있어.'라는 방식으로 답변이 왔다. 정말 사진 한 장 찍는 것도 임원진들한테 확인을 받아야 하는 그만큼 바뀌는 게 너무 두려운 회사였고 많은 디자이너들이 입사와 퇴사를 할 수밖에 없는, 계란으로 바위 치기를 하는 느낌이 드는 회사였다.
왜 이렇게 대한민국에서는 제대로 된 디자인을 할 수가 없는 거지?
왜 이렇게 디자이너는 힘이 없는 걸까?
왜 이 많은 CEO들은 브랜드의 개념을 1도 모르는 걸까?
내가 클라이언트를 바꿔보면 답이 나오지 않을까? 한국인이 아닌 외국인을 상대로 말이야....
나는 정말이지 내가 정말 사랑하는 이 일을 정말 제대로 잘 해내고 싶었다.
너무나 사랑하는 이 일에 타협하고 싶지 않았다.
마지막 회사를 1년도 채우지 못하고 나는 퇴사를 했고 내 목마름을 채워줄 경험을 하기 위해 30살에 모든 것을 정리하고 비행기표를 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