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없이 호주 오기
해외취업을 꿈꾸는 디자이너들 혹은 해외 디자인은 국내와 얼마나 다른가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고 있다면 나의 글이 조금은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선택지가 아예 없었던 것이 아니었다. 한국 나이 30살이었던 나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1. 대학원에 진학해서 직급과 연봉을 올리고 인맥을 넓힌다.
2. 해외에서 혹은 글로벌 회사에서 경험을 쌓는다.
1번의 경우는 학력이 중요한 대한민국에서 연봉과 직급을 올리고 특히 인맥을 넓힐 수 있는 중요한 방법이라고 했다. 실제로 대학원에 가면 정말 쟁쟁한 몇십 년 된 디자이너, 대기업 출신 디자이너들이 나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는 곳이고 실제로 교수님들은 학생들보다 경력이 없고 학점을 줄 수밖에(?) 없는 위치라고 한다. 대학원에 가는 주목적은 정말 메인 목적은 인. 맥. 을. 넓. 히. 기. 위. 해. 서.
1번의 이유는 정말 대한민국 다웠다. 인맥을 넓히기 위해서 그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해서 학력이라는 이름표를 따가야 한다니 참으로 부조리하고 웃기지 아니한가? 저번에도 언급한 '지방대 출신의..'으로 시작하는 나의 이력은 이미 자격지심이 한껏 들어가 있는데 대학원이라는 이름표로 덮어두는 느낌이었다.
사실 나는 그 '지방대 출신'이라는 꼬리표 때문에 남들보다 열심히 살았다. 대학교 3, 4학년 때는 하루에 두 시간씩 자거나 이틀에 한 번씩 잤다. 과제랑 공모전을 동시에 준비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국제공모전을 포함해 10개 정도 수상경력을 가지고 졸업했다. 사회인이 돼서도 정말 열심히 살았다. 새로운 외식 브랜드가 론칭하면 부리나케 달려가서 매장을 확인하고 디자인을 체크하고 맛도 보고..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도 너무 많이 가서 모든 디자인 책을 달달 외우고 있을 정도였다. 20대 때 나는 정말 징그럽게 열심히 살았다. 회사 후배들도 그랬다. 나보다 밑의 직급으로 들어오는 디자이너들이나 새로운 신입들은 모두 명문대 출신이거나 대학원 출신이었다. 그러다 보니 '내가 부족해서 이름 따려고 대학원에 들어가지?'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나는 2번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겉에 보이는 거 말고 진짜 내실을 쌓고 싶었다. 만약에 실패하고 내 경력이 단절돼도 어쩔 수 없었다. 가슴이 터질 거 같이 쿵쿵 뛰고 설레는 일을 너무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이 아니면 할 수가 없어
라고 가슴이 나한테 말하는 듯했다. 여자 나이 30살이면 어리지 않지만 그렇다고 아주 많은 나이도 아니었다. 실패해도 1-2년이면 다시 일어날 수 있는 나이었다.(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처럼 미쳐서 가슴이 터질 거 같을 때 꼭 해야 발을 쉽게 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몇 년이고 시간이 지나서 평생 후회하는 거보다 지금의 결정이 나아 보였다.
나의 본래 목적은 해외생활을 1년을 통해 언어감각을 익혀서 한국으로 돌아온 다음 해외취업을 알아보거나 외국계 회사에 입사하는 것이었다. 이런 나의 결심을 주변에 물어보면 10명 중에 9명이 반대를 했다. 왜 이런 안정된 직업과 위치를 버리고 무모한 짓을 하냐는 것이었다. 동료 디자이너 친구들마저 실리를 추구하라고 말했다. 돈이란 것은 참으로 무시할 수 없는 것임으로..
나한테 그때 당시 두 가지 바이블 같은 책이 있었는데 김수영 님의 '멈추지 마, 다시 꿈부터 써봐' 다카하시 아유무의 '어드벤처 라이프'라는 책이었다. 이 두 책이 아마 내 등을 시원하게 밀어서 호주까지 오게 만들었다. 만약 누군가 시원하게 등좀 밀어줬으면 하면 참고해 보시길!
어찌 됐던 모든 것은 날짜를 박아야 뭐든 것이 돌아가는 것임으로 7월 초로 비행기표를 예약했고, 호주 이민성에서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신청해서 비자를 2주 만에 승인받았다 (2014년 6월 당시) 영어는 사실 세 번째 회사로 이직하면서 회사생활이 불안정한 탓에 다시 공부가 어려웠고 10개월의 긴 공백기가 영어 감각을 무디게 만들었다. 나의 첫 번째 계획은 호주 어학원에 들아가서 단기로 영어를 조금 배우고 생활하면서 부딪히는 게 목표였음으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기로 했다.
정말로 준비 없이 호주에 오게 된 것이다.
7월 8일, 나는 호주 브리즈번에서 첫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