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와 나 자신 사이
해외취업을 꿈꾸는 디자이너들 혹은 해외 디자인은 국내와 얼마나 다른가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고 있다면 나의 글이 조금은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브리즈번 어학원에서 나의 첫 호주식 영어 공부는 시작되었다.
혹시, 호주 발음을 한국 어디에선가 들어본 적 있는가? 아님 뉴질랜드 발음이라도?
한국에서 미국식 영어를 열심히 공부하고 나면 호주에서 멘붕이 제대로 온다. '도대체 무슨 소리 하는 거야?'
호주 영어는 오히려 영국 영어에 가깝다. 영국식 영어 단어를 사용하거나 표현도 많이 사용한다. 호주에 와서 리스닝은...... 정말 하나도 들리지 않는다. 나의 영어 선생님은 정말 오지(Aussie, 호주 토박이를 이르는 말)이었는데 한 달 동안 선생님이 하는 말을 알아들으려고 눈을 너무 크게 뜨고 열심히 듣는 바람에 항상 저녁이 되면 긴장이 풀려 녹초가 되고 말았다.
나의 한국에서의 성격을 표현하자면 좀 나대는 성격이었다.
사람들 모으는 걸 좋아하고 낯가림도 없고, 새로운 걸 배우는 게 너무 좋았다. 한국에서는 여자 노홍철이 별명이었으니 이 정도로 나의 성격을 전부 설명할 수 있겠다. 호주에 가기 전 나의 한국 영어 선생님과 잠깐 면담을 가질 기회가 있었는데 선생님께서는 " 외국에 가면 의외로 많이 위축되거나 아니면 한국으로 다시 돌아오는 경우가 정말 많아요. 언어가 사람을 위축되게 만들 겁니다. 그걸 극복하는 건 성격밖에 없어요. 앨리스(저의 영어 이름)라면 잘할 겁니다. 내가 10년 동안 본 제자 중에 이렇게 활달한 제자는 없었어요. "라는 독려 아닌 독려까지 받고 와서 나는 뭐든지 해보겠다는 자신감이 넘쳐있었다.
그런데 영어는 나를 한없이 작은 사람으로 만들었다.
자신감 하나로, 도라이(?) 같은 성격 하나로 부딪혀 보려고 했지만 상대방에게 돌아오는 "Sorry?(뭐라고?)"를 몇 번씩 듣고 나면 3번째 4번째쯤엔 내가 한없이 위축되어 있었다. 이런 경우가 한 번이면 모르겠지만 이런 경험이 켜켜이 쌓여 몇 년이 지나면 나의 진짜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작고 소심한 내가 되고 만다.
결론부터 말하면 들리는 것은 시간이 해결해 준다.
많이 듣고 많이 말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
그렇다고 여기산 다고 다 말 잘하고 다 들리는 건 아니다.
여기에 오래 사시는 한인 분들 중에 한국인만 만나고 한국 티브이만 보고 한국 회사에서만 일하는 사람도 있음으로 반드시 따로 공부하는 시간을 갖기를...
어학원이 좋은 이유는 비슷한 레벨로 학생들을 갈라놓아서 바디랭귀지를 쓰던 그림을 그리던 그 친구들끼리 어찌어찌 대화를 한다는 것이다. 눈치도 빨라지게 되고 쓰는 단어도 친구를 통해 알게 된다. 그러다 보니 동질감이 생겨 진짜 친구가 될 수 있다. 나랑 가장 친했던 친구인 타이완 친구 Bay는 6년이 지난 지금도 연락하며 지낸다. 그 레벨에도 생각해보면 하고 싶은 말은 전부 다 했던 것 같다. 레벨이 너무 높은 친구는 단어나 표현을 배울 수는 있지만 대화가 잘 안된다.(상대가 답답해한다) 비슷한 사람들을 찾아보기를 추천한다. 호주엔 랭귀지 익스체인지 무료 프로그램이 많다.
브리즈번 어학원에서 한 달 정도 열심히 공부하고 나서 디자인이 좋아서 어찌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고 하니 영어 선생님께서 그럼 멜버른으로 가라고 추천해 주셨다. 브리즈번은 작은 도시로 날씨가 쾌적하고 바쁘지 않은 도시지만 새로운 걸 받아들이거나 보거나 하기에는 너무나도 작은 도시긴 했다. 멜버른은 디자인과 아트의 도시로 내가 배울 것이 많을 것이라는 거다.
두 달의 브리즈번 생활을 마치고 멜버른으로 지역 이동을 했다.
멜버른은 정말로 예술의 도시였다. 많은 그라피티와 아트 트램들, 길거리 예술가들은 '저렇게 뛰어난 사람들이 왜 성공을 못했지?'라고 의심이 들 정도로 정말로 뛰어나다.
그리고 내가 시작한 첫 번째 일은 한인식당 웨이트리스였다.
하참.. 한국에 살 때도 알바 한번 안 해본 나였는데 30살 되어서 하려니 참.. 나를 받아줄까 싶었지만(보통 워킹홀리데이 친구들은 나이가 20대 초중반) 그래도 여기까지 온 이유를 잊으면 안 된다. 좀 뻔뻔해졌다. 웨이트리스 일을 선택한 것은 손님들과 많이 듣고 대화하려는 목적이었다. 한인식당에서 일하면 내가 한국인이라는 익스큐즈가 이미 깔려 있는터, 내가 뭔가 못 알아듣고 실수를 해도 호주인들은 친절하게 나를 이해시켜줬다. 참 신기하게도 1개월이 넘으니까 그들이 하는 사담까지도 다 들릴 수 있었다.
그러지만 내가 아쉬운 점은 한인이 한인을 상대로 하는 캐시 잡(입금이 아닌 현금으로 지급하는 세금을 떼지 않는 잡)이다 보니 최저임금보다 더더(더더더더) 최저임금을 주니 정말로 저절로 다이어트가 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없는 돈을 모아서 일주일에 한 번씩은 하우스 룸메이트랑 펍(생맥주를 메인으로 파는 술집이자 레스토랑)에 가서 맥주 한잔씩은 꼭 먹었다. 난 사실 아주 예쁜 룸메이트의 덕을 많이 봤다. 그 친구 덕에 항상 사람들이 우리랑 대화하고 싶어 했었다. 그렇다 보니 주말에는 긴 대화를 많이 할 수 있었다. 호주 여자아이들은 사교성이 너무 좋은데 굳이 남자가 아니어도 성격 좋은 여자아이들도 많이 만날 수 있다. 또 호주인이 아닌 다양한 배경을 가진 다양한 친구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이방인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대화를 쭈욱 있어나갈 수 있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었지만, 누군가 지금 멜버른에 오고 싶다면 몇 가지 조언을 해주고 싶다.
1. 영어는 최소한 문법은 떼고 올 것
호주에서 일하고 도서관 가서 다시 문법을 떼고 시작하느라 나는 먼길을 걸어왔다. 나처럼 와서 부딪히는 것도 있지만 최소한 문법은 떼고 와도 훨씬 인생이 수월해질 것이다.
2. 유망직종을 공부해 올 것
최소한 입에 풀칠은 해야 호주 생활이 윤택해지는 법. 아무리 좋고 명소가 있고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뭐하나.. 물가가 엄청 비싸다. 아무것도 누리지 못하면 호주에서 고생만 할지도 모른다. 호주에서 인기 있는 유망직종은..
- 바리스타
- 매니큐어 패디큐어 아티스트
- 헤어드레서
- 요리사 혹은 요리 경험이 있는 어떠한 직종
- 요가나 운동 관련 퍼스널 트레이너 (자격증이 있으면 더 좋다)
한국에서 어느 정도 공부를 하거나 스킬을 알고 오면 최소한 나처럼 저절로 다이어트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디자인을 하는 것이 꿈이었지만 일을 찾을 때까지 이런 일들을 했었더라면 조금은 안정되게 살았을 것을 하는 생각이 든다. 위의 직업들은 호주 가게에 취업하기 좋고 혹은 한인 가게에서 모시는 직업이기도 하며 시급도 괜찮은 편이니 한 번쯤 생각해 볼 것.
6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잘하는 편에 속하지 못한다.
클라이언트 이메일을 몇 번이나 다시 읽고 혹시 내가 실수하거나 이해 못한 것이 있는지 항상 긴장하며 읽는 편이다. 답장도 어떻게 하면 세련되게 잘할 수 있을까.. 심지어 날짜를 표기하는 것도 가끔 검색을 통해 더 정확한 표현을 알아보려고 한다. 여기서 태어나고 자란 게 아닌 이상 그들처럼 완벽한 영어는 할 수 없다. 나는 심지어 한국인 악센트도 있다. 그래도 좌절하지 말고 계속 노력해야 한다. 안 그러면 나는 10년이 지나도 영어를 못할 수 있다. 여기에 산다고 영어가 저절로 느는 게 절대 아님을 알려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