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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쿠나마타타 Aug 10. 2022

금주 말고 절주 일기

마음 챙김으로 절주 하기 Day 1

나는 10대부터 로망이 있었다. 정말이지 남자보다 술을 더 잘 마시고 사회생활도 능숙하게 해내는 섹시한 미중년이 되고 싶다고. 어디 가서도 빼지 않고 잘 마시며 음식과 잘 페어링을 하며 인생을 즐기는... 여자 성시경이 되고 싶었다고 해야 하나?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나는 술을 아주 늦게 배워서 24살이나 직장에 들어가서야 술을 마시기 시작했고, 어디까지가 내 한계인지 모르는 판국이니 술을 취할 때까지 많이 마셨다. 그래도 다행인 건 아직 어린 간이여서 30살까지도 숙취가 없었다는 거..... 그래서 아마도 계속 들이부었는지도 모르겠다.


술로 인해서 즐거운 일들도 많이 있었고 전 남자 친구들과 썸도 술의 도움을 많이 받아서 진도(?)를 나갈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의 타고난 부끄러운 성격 때문이었다. 술을 마시면 겹겹이 쌓여있던 부끄러운 성격이 없어지고 진정한 내가 그 안에서 불쑥 나와서 하고 싶었던 말, 감춰왔던 흥이 마구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런저런 이유로 친구들은 내가 술을 마셨을 때를 좋아했고 나도 좋아했다. 왜냐면 나는 기억이 안 날 때까지 곧잘 마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끄러울 일도 없었다. 


다행히도 항상 친한 친구들이 내가 집에 갈 때까지 항상 잘 데려다주었고 의외로(?) 무섭거나 심각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렇게 친구들과 남자 친구를 담보 삼아 20대에 술을 항상 취할 때까지 마셨다.


그러다 30대 초반에 현타가 왔다. 여태까지 사귄 남자 친구와 항상 나는 술 문제로 다툼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여자 친구가 항상 술을 마시면 취할 때까지 마시니 누가 좋아하겠는가? (그래서 나는 직장에서는 절대로 술을 마시지 않았다) 내 과거를 뒤돌아 보니 누구도 이해 못 해줄 술버릇이었다. 그렇다고 매일 술고래처럼 마셨던 것도 아니었다. 일주일에 한 번 술을 마셨는데 그때마다 항상 취하게 마시고 있었다. 회사를 퇴사하고 회사 후배랑 편하게 술을 마셨다. 그렇다 나는 이미 퇴사했으니 취하게 마실 수 있었다. 그 후배는 나의 별명을 '코알라 선배' 일명 꽐라 선배라고 이름 붙어 주었다. 내가 그렇게 주정 뱅이었나?


그때까지도 나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알코올 중독자는 아니잖아? 일주일에 한 번 마시는데 단지 나의 한계를 몰라서 취하게 마시는 거뿐이라고.....


문제는 취하게 마시는 게 아니다. 기억이 안나는 횟수가 많아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어제 피자 먹었던 거 기억 안 나?'

'어제 맥주 마시고 와인까지 추가로 시켜먹은 거 기억 안 나?'

'너 어제 핸드폰 던지고 속상해서 울던 거 기억 안 나?'


듣기만 해선 진상 진상 이런 진상이 없다. 처음엔 어쩌다 기억이 안나는 횟수가 있었을 뿐인데 최근에는 너무 자주 일어난다. 취하게 먹지 않으려고 노력을 안 해본 건 아니다. 작년엔 취하게 먹는 횟수를 달력에 표시하며 '오오 선전했어'라고 자축도 했었다. 작년에 취하게 먹은 햇수는 4번이었다. 근데 올해는 고삐가 풀린 거 같다. 친구 집에서 기억 안 날정도로 취해서 토한 채 친구 집 침대에서 눈을 떴다. 아뿔싸. 그것도 친구의 남자 친구를 상징하는 거북이 인형에 토를 참 흥건히 도 했다. 미안해요 거북 씨 ㅠ


거북 씨 사건을 기점으로 요 근래는 매주 취하게 먹고 있고 매주 기억이 잘 안 나고 있다. 

그래. 이건 아니다. 술을 마실수는 있지만 기억이 안 나는 건 아니다. 이 자기혐오가 켜켜이 쌓여 이제는 진짜로 나를 위해 멈출 때가 왔다. 그렇지만 술을 끊고 싶지는 않다!ㅜ 몇천 가지의 맥주가 넘처나는 호주에서 단주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절주면 모를까... 


나는 나의 내면을 명상을 통해서 잘 치료하고 있는 과정 중에 있다. 그럼 어째서 나는 술을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술에 집착을 하며 취할 때까지 마시는 걸까? 명상을 통해 나를 알아보기로 결심했다. 혹시 나의 절주가 실패하지 않도록 매일 일기를 쓸 예정이다. 


그래. 나는 프랑스 할머니들처럼 60대가 돼서는 보라색으로 머리를 염색하고 어울리는 옷을 입고 우아하게 모닝 맥주나 와인을 한 모금 마시며 책을 가지고 바다로 산책을 가는 힙한 할머니가 되겠어. 하지만 금주는 아니야. 절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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