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로 돌아가서 나를 보호해줬던 일
나는 호주에 살고 있다. 내 남자 친구는 외국인이다. 남아공에서 자랐지만 남아공 내에 독일마을에서 3대째 살았다. 그래서 친구들과는 영어와 아프리칸을 쓰고 집에서는 독일어를 쓴다. 나와는 만난 지 몇 달 안 되는 풋풋한 커플이다. 이렇게 국적이 다른 커플은 상대방 나라의 언어를 배우려고 처음엔(?) 노력을 한다. 나는 한국어를 가르쳐주고 그는 독일어를 가르쳐준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호기심으로 시작한 것이었는데 대화를 하다가 '그럼 한국어로 성기를 나타내는 말은 뭔데?'라고 물어본 것이다.
영어는 은유적인 표현이 많고 심지어 단어의 강도도 각각 다른데 한국어는... 나는 한국어로 그 단어를 한 번도 입 밖으로 내어본 적이 없다. 왜냐하면 나는 엄청나게 부끄러움이 많은 성격이기 때문이다.
술에 대한 글에도 적어놨지만 부끄러움을 낮추기 위해 술을 마시기도 했다. 이성 앞에 가면 긴장도가 너무도 높아졌기 때문이다. 하물며 그 직접적인 단어인 '그 단어'를 내가 어떻게 가르치겠는가?
영어는 내 모국어가 아니라서 욕을 해도 혹은 나쁜 표현을 써도 마음 깊숙한 곳까지 닿지 않았지만 한국어는 다르다. 한국어는 마음 깊숙이 들어올 뿐만 아니라 심장을 인두로 지지는 기분이 든다.
나는 귀까지 시뻘게져서 그 단어는 가르쳐 줄 수 없다고 말했다. 호기심이 엄청 많은 남자 친구는 인터넷에 찾아봤지만 '고양이'라는 단어를 들이대며 이게 맞냐고...(영어식 표현을 번역한 것이다) 끝끝내 그는 그 단어를 호기심에 알고 싶은 것이지 다른 뜻은 없다고 졸라대는 바람에 할 수 없이 그 단어를 적. 어. 서. 알려줬다.(역시나 나는 말할 수 없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역시나 장난기 많은 남자 친구가 길거리를 가다가 느닷없이 '그 단어'를 말하는 것이다. 나는 적잖아 놀랬다. 몸이 얼어붙은 것처럼 꼼짝 할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경고를 줬지만 내 반응이 재밌다는 듯 또 한 번 그 단어를 꺼냈다. 나는 순간적으로 눈물이 왈칵 나왔다. 그리고 정색하며 그날 집에 가버렸다.
나는 이 정도로 민감한 일이었을까. 라며 생각하기 시작했다. 집에 오자마자 코트를 벗고 명상을 시작했다.
나: 내가 부끄러움이 많은 건 알지만 이렇게 화내고 울 일까지는 아니라고 생각이 들어.. 내가 잘못한 걸까?
내면의 나: 아니. 너는 태생이 섬세하고 부끄러움이 많은 사람이야. 그걸 연습한다고 너의 성격이 달라지지 않아. 그리고 이미 양해를 구했잖아. 부끄러움이 많고 알려주기 싫다고... 누가 잘못한 걸까?
나: 그럼 내 성격은 고칠 수 없는 거지?
내면의 나: (단호하게) 응.
나: 나에겐 아픈 기억이 있어. 20대 중반에 고등학교 친구들과 술을 마실 일이 있었는데 그 친구들은 자신의 성경험을 모험담처럼 꺼내는 것이었어. 그런데 나는 입술조차 뗄 수 없었어. 20대 중반의 나는 너무너무 부끄러웠거든. 경험이 없었다는 게 아니라 그때의 나는 그럼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할 수조차 없었어. 귓까지 빨개졌는데 친구들은 내가 내숭을 떤다며 놀리기 시작했지.
내면의 나: 그럼 그 기억으로 돌아가 볼까?
나와 내면의 나는 그 시절의 나로 돌아가 내 친구들에게 내가 내숭을 떤 것이 아니라 내성적이고 타고난 부끄러운 성격 때문에 이야기하기가 너무 어려운 것이라고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명상을 끝내고 현생으로 돌아온 나는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처음엔 남자 친구가 원망스러웠는데 덕분에 내 내면의 상처를 바라보고 치료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매일매일 배운다. 그리고 나를 치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