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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한량 Sep 03. 2022

너 때문이야 (3)

당신 생각으로 아무것도 쓸 수 없기 때문에 당신으로 써내려 가기로 했다.

끝내지 못한 생애를 이렇게 살아내고 있을 어느 무렵, 당신이 내게 찾아왔다. 마음 한편이 찢어진 채 온전치 못한 당신을 끌어안고 난 하염없이 울고 싶었나 보다. 나의 그 공허한 마음에 당신을 구겨 넣고 당신과 함께 춤추고 싶었다. 해가 지는 하늘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나는 당신 생각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리고는 이내 내가 애처로워 또 한 번 왈칵 울었다. 나의 주체 없이 무한히 솟아나는 샘물 같은 사랑이 있다면 어쩌면 목마른 당신을 살려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날들이 있었다. 그런 당신 '수'를 알게 된 건 매년 여름 기록적인 더위가 예고된다던 뉴스가 나오던 어느 날이었다. 


모든 것을 뜨겁게 태워버릴 기세로 작렬하는 햇빛마저도 나의 삶에 불을 붙이지는 못했다. 나는 그저 그 뜨거운 온기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그 계절의 한 복판에 우두커니 서있었다. 내 피부들이 검게 타고 있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취했던 어느 날 밤. 당신과 통화를 하고 싶었다. 취한 채로 거릴 걷고 싶었지만 아무것도 없는 이 적막한 거리에는 나를 위한 누군가가 필요했다. 적당히 친하지 않고 거리감이 있지만 단 한 번도 만나지 않았던, 현재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당신. 어쩌면 앞으로도 존재하지 않을 당신에게 난 취한 듯 전화를 걸었다. 무슨 대화를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렇게 한 시간을 통화하고 나서야, 이 동네에 이런 것이 있구나 하는 것들을 몇 곳 보고 나서야 우리의 첫 대화는 끝이 났다. 그리고 전화를 끊고 막연하게 내가 생각보다 말이 많은 사람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당신에게만큼은 아무것도 제어하지 않겠다고. 그 어떤 불순물도 없이 전달되는 나의 순도 높은 감정들로 하여금 당신에게 내가 지은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받는 것 같은 기분, 나의 삶에 갑작스레 다가온 낯선 이는 막연하게 느껴지는 편안함과 완벽한 타인이라는 점에서 고해성사를 이루기에 충분한 대상이었다. 난 그렇게 매일 당신에게 전화했다.


그녀는 매일 그림을 그렸다. 내가 이해할 수 없지만 이해하려 노력하던 그림들을 그렸다. 그녀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나는 매번 나의 불순한 상상들을 곁들어 나만의 방식으로 그림을 이해했고 난 그녀에게 나의 감상평을 말하곤 했다. 그녀는 나의 황당한 해석들에 놀라워하며 좋아했다. 나의 해석이 좋아서였는지, 아니면 자신의 그림을 그렇게나 봐주어서 감사해서인지는 모르지만, 그게 무엇인지는 내겐 중요하지 않았다. 난 그저 그런 일련의 과정 자체가 행복했다. 모든 것이 느낌표나 (!) 마침표 (.)로 일방적인 대화들이 가득 찬 나의 하루에서 유일하게 물음표 (?)를 던져주는 단 한 사람, 그 물음으로 하여금 계속해서 쉼표(,)로 그다음 문장은 뭘 써야 하는지 생각하게 만드는 사람. 그래서 온종일 생각해야 하는 그런 사람. '수'는 내게 그런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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