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에, 쓰는 구월과 시월의 일기. 아니 나의 고해성사
난 부끄럽다. 시월에 쓰는 구월의 일기라니. 사실 기억도 나질 않아서 그냥 시월까지 뭉뚱 거려 쓰고 넘기자했다. 이렇게 대충 사는 내가 부끄럽다. 온 세상천지에 광고를 할 것도 아니고 내가 지나가면 수군수군거리면서 '저 사람이 구월일기를 시월에 쓰는 사람이래..'라고 말할 것도 아니지만... 누가볼지도 모르지만 이렇게 작게 읊조리는 것마저도 나의 나태함을 고백하기에 나 자신에게 부끄럽다. 머릿속에서 둥둥 떠다니며 사념으로 존재하는 것과 이렇게 어딘가에 기록하는 것은 전혀 다른 죄악이다.
난 여기에 뭔가를 계속 써 내려가지 않아도 내 삶은 크게 바뀌는 것 없이 잘 지낼 수 있다. 아니 사실 너무나 다른 재미있는 것들이 많아 한 달에 한번 쓰는 일기마저도 쓰기 귀찮다. 매일 저녁 같이 게임을 하는 친구들이 있고, 소정의 목표들을 달성하며 재미있게 보낼 수 있다. 그게 아니더라도 보고 싶은 영화는 언제나 쌓였고, 들어야지라면서 빼놓은 앨범도 산더미 같다. 살도 빼야 하고 공부도 해야 한다. 하지만 난 그런 것들을 하지 않고 오늘도 죄를 짓는다. 또 게임만 했고 치킨에 맥주를 마셨다. 문득 이러한 상념들이 계속 떠다녔고, 잠에 들기 전 세수를 하려다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을 보았다. 흐리멍덩한 눈, 그 밑엔 짙게 드리운 다크서클 퉁퉁부은 양 볼은 사실 살이 쪄서 터질듯한 얼굴이었다. 이런 나태함이 부끄러워 시월의 마지막밤인 오늘은 그냥 잠들 수 없었다. 그래서 써 내려가는 나의 고해성사가 되어버린 일기.
구월엔 명절이 있었다. 이번 명절에 처음으로 엄마에게만 선물을 드렸다. 아니 명절뿐만이 아니라 그냥 생신이 아닌 날에 선물을 드린 것이 처음인 것 같다. 명품 브랜드의 립스틱을 사드렸다. 어머니는 당연히 너무나도 좋아하셨다. 이게 말로만 듣던 며느리의 픽 그런 거냐면서 궁금해하셨지만, 절대 그런 것이 아니라고. 아는 동생이 싸게 살 수 있다 해서 지금은 있지도 않은, 언젠가 생길 여자친구를 위해서 미리 사놓을까?라고 생각을 했다가 현타가 와서 그냥 엄마 것으로 하나 사봤다고 차마 말을 할 수 없어서 그냥 세일하길래 샀다고 그랬다. 어머니는 그 브랜드 이름이 뭐냐면서 며칠 동안 몇 번을 물어보셨다. 자신은 처음 듣는 브랜드라면서 어린아이처럼 명절기간 집에 있는 내내 립스틱을 바르고 계셨다. 특별히 어딜 나가지도 않았는데.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얼마나 울었는지를 모른다. 난 엄마를 항상 그냥 엄마라고 생각했는데, 엄마도 나의 엄마이기 이전엔 여자이지 않았나. 그리고 지금도 여자이지 않나... 다음에는 좀 더 작고 쓸모없는 것을 가져다 드려봐야겠다. 예컨대 꽃이라던지 그런 걸 말이다.
요 근래엔 주말마다 학원을 다니고 있어서 나의 주말이 없다. 기능사 실기를 대비한 학원을 등록하였는데 주말아침에도 평일과 같은 시간에 일어나 지하철을 타고 학원을 갔다가 저녁 늦게야 집에 돌아온다. 그래서 그런지 시월 한 달도 금방 휙 지나가버렸다. 주말마다 이동에만 3시간씩 이틀을 쓰다 보니 요 근래 나온 새로운 앨범이나 듣고 싶은 것들을 듣고 있다. 문득 스무 살의 날들이 생각났다. 그때에도 하루 3시간씩 통학을 했었는데, 당시엔 스마트폰이 아니어서 음악을 듣기 위해선 mp3파일로 일일이 폰에 넣었어야 했다. 주말이면 다음 주에 들을 앨범들을 매주 선정해서 갈아 넣었던 때. 몸은 피곤하지만 심적여유는 좀 더 있는듯하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영화를 봤다. 영화에 대한 다른 코멘트는 하지 않겠지만 제목 그대로 어떻게 살건가? 란 질문을 받았기에 요즘은 한창 그에 대한 답변을 생각하고 있다. 가볍게 흘릴 수 없는 질문이고 꽤나 신중하게 곱씹어야 하는 질문이니까. 그래서 오늘 평소에 잠드는 시간에 잠들지 않고 계속 써내려 가고 있다. 이 일기들은 내 나름 최소한의 약속이었지만 난 지키지 않았다. 까먹은 게 아니라 알고 있었다. 9월의 후반기에도, 마지막날에도 그리고 그다음 날에도 다음 주에도 다다음주에도. 오늘도 넘어갈 수 있었다. 단지 이따금씩 쉽게 잠들지 못하는 몇 가지 원인 중 하나가 되었겠지만.. 아니면 내일 썼을 수도 있다. 원래 평소에도 다음 달 초에 쓴 적이 있으니까. 하지만 거울에 비친 나를 보고선 차마 그럴 수 없었다. 이 글을 다 쓰고 잠이 들고 십일월의 아침을 맞이하는 첫날부터 무너질 수 있겠지만 그럼 십일월의 일기에서 나의 죄를 고백하는 걸로 하자. 그렇게 난 상습고백범이 되어버렸다.
어느새 가을인가 싶었는데 요즘 기세를 보면 벌써 겨울이 오고 있나 싶다. 저녁엔 장판을 켜고 잔다. 주위엔 하나둘씩 감기 걸렸다는 말이 들린다. 아침에 집에서 나설 때 외투의 지퍼를 끝까지 채우곤 히터를 틀기 바쁘다. 그래놓곤 점심쯤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훌훌 벗어던지곤 한다. 적당히 일하기 좋은 나날이다. 너무 아름다운 날이고 뭘 하든 밖에서 하고 싶은 날이다. 달이 밝다. 시월이 갔다. 나의 마지막 이 해(2023)의 시월애(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