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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중지추 Dec 31. 2019

8년차 교사의 속마음

 36살. 어느덧 교직 8년차가 되었다. 이십대의 끝자락에 교직에 발을 들였는데 시간이 꽤 흘렀다. 첫해만 빼고 모두 담임을 했으니 올해가 벌써 담임만 7년째다. 시간이 꽤, 흘렀다. 지금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잠시 한발자국 떨어져서 나의 모습을 살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8시 40분쯤 학교에 도착한다. 3층에 있는 학년교무실 문을 열고 ‘안녕하세요’라고 외치며 내 자리로 직행한다. 다른 선생님들도 자리 자리에서 컴퓨터를 보며 ‘안녕하세요’라고 대답한다. 노트북을 열고 전원을 켠 후 부팅이 될 동안 정수기에 가서 물 한잔을 떠온다. 쿨 메시지를 몇 개 확인하고 조회사항을 정리하다 보면 종이 울린다. 종소리에 맞춰 교무수첩과 출석부를 들고 다시 문을 나선다.

 교실 앞문을 열고 ‘안녕하세요’라고 좀 더 크게 인사하며 교탁으로 직행한다. 학생들도 친구들과 장난을 하며 ‘안녕하세요’라고 대답한다. 지각생을 확인하고 조회사항을 전달한 후 ‘수업 준비하세요’라고 말한 후 문을 나선다.

 자리로 돌아와 그새 또 와 있는 쿨(학교에서 쓰는 업무용 메신저)을 확인하다 보면 1교시 시작종이 울린다. 이후 점심시간 전까진 내 자리에 있거나 교실에 있거나 둘 중 하나다. 점심시간 이후에도 내 자리에 있거나 교실에 있거나 둘 중 하나다. 내 자리에서 업무를 하거나 그게 아니면 교실에서 수업을 한다. 가끔 여유가 있을 땐 업무하는 척을 한다.  

 7교시 끝종이 울리면 곧장 종례를 하러 간다. 종례사항을 전달한 후 청소지도를 하고 나면 이제 퇴근을 해도 뭐라 할 사람이 없다. 5시 10분쯤. 급한 업무가 없으면 학교를 빠져나온다. 

 여기까지 읽은 사람들은 생각할 것이다. 뭐 이리 건조하고 재미가 없지? 그렇다. 그것이 바로 교직 8년차 교사의 속마음이다. 재미가 없다. 업무도, 수업도, 업무하는 척도. 


 솔직히 처음부터 열정이 뜨거웠던 건 아니었다. 페스탈로치 같은 대교육자가 될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지만 그래도 교직을 선택한 것은 그나마 보람이 있어보였기 때문이다. 고3이 되었을 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몇 개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회사원이 되기는 싫었다. 뭔가 보람 있는 일이 없을까, 뭔가 의미 있는 일은 없을까, 고민하다가 내 눈에 들어온 건 학교 선생님이었다.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비전을 보여주는 일. ‘그래 저건 그래도 보람 있겠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교직의 길이었고, 현재 나는 그 길을 걷고 있다. 

 세상 모든 것이 그렇듯, 교직 역시 밖에서 본 포장된 모습과 속에 들어가 실제로 본 세계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수업 열심히 하고 점심시간엔 학생들과 땀 흘리며 농구하고 방과 후엔 힘들어 하는 학생에게 저녁도 사주며 위로의 말을 건네는 교사의 모습은 현실에 없었다. 아니 물론 할 수는 있었다. 그런데 교사는 이미지를 먹고 사는 존재가 아니라 밥을 먹고 사는 존재다. 밥 먹고 살기 위해서 해야 하는 일들이 많았다. 그 일들을 다 하고 나면 퇴근 시간이었다. 그때부턴 밖에서 보던 포장된 모습의 교사를 보여줄 수 있었지만, 나에게 그 정도의 열정은 없었다. 


 한마디로 교직 밖에서 생각하는 이상적 교사의 모습을 구현하기 위해선법정 근로시간 외에 덤으로 자신의 시간을 희생해야 가능한 것이었다. 


 물론 재미가 있으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 어차피 돈만을 바라보고 온 직장은 아니니까. 보람도 좀 있겠다싶어서 잡은 직장이니까. 그런데 문제는 재미가 없다는 것이다. 왜일까?


 핵노잼의 이유 지긋지긋한 관료제와 공부의 도구화.


 먼저 관료제. 관료제의 역기능과 단점을 여기서 구구절절 읊을 생각은 없다. 그냥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는 말을 하고 싶을 뿐이다. 모든 것은 문서화된 공문으로 움직인다. 교사들은 교육과정 구성에 거의 참여를 할 수 없고 매해 2월에 교장, 교감과 부장교사들이 정한 교육과정에 따라 로봇처럼 움직일 뿐이다. 뭔가 좋은 생각이 떠올라도, 학생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고 싶어도 이미 판은 다 짜여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게 없다. 

 처음에는 버둥거린다. 왜 이렇게 밖에 못 하냐고, 이건 왜 안 되냐고, 이렇게 한번 바꿔보자고. 학년협의 때 의견도 내고, 교직원회의 때 용기 있게 발언도 해 본다. 하지만 한 사람이 내는 목소리는 사라져버리고 말 뿐이다. 한 번, 두 번. 바뀌는 건 없고 힘만 든다. 괜히 나서다가 트러블메이커가 되는 건 아닌가 걱정도 되고. 결국 조직문화에 순응하며, 회의가 끝난 후 삼삼오오 모여 그때서야 불평만 해대는 무리 속 일원이 되어 간다.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보람이 있을 리가 없다. 그리고 열심히 할 맘도 생기지 않는다. 그저 다른 이에게 피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주어진 것들만 적당히 처리하면 된다. 교사에서 근로자로 바뀌는 순간이다. 적당히 돈 받은 만큼만. 욕 안 먹을 정도만. 


 둘째, 공부의 도구화. 지금의 학교에서 이뤄지는 교육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더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한, 좋은 일자리를 얻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친구와의 경쟁에서 이겨서 한 등급이라도 높게 받기 위해, 공부의 이유도 알지 못한 채 주어진 수업내용을 암기하고 교과서를 본다. 

 교과수업 외의 비교과 활동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체험을 통해 전인적 성장을 도모한다는 그럴듯한 목적을 내세우지만 결국 본질은 생기부에 한 줄이라도 더 적기 위해서 아이들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왕성하게 교내활동에 참여한다. 그 자체가 즐거운 게 아니라, 무언가를 얻기 위해 학생들은 수업을 받고 활동을 한다. 돈을 얻기 위해 억지로 일하는 이 세상 모든 근로자와 비슷하지 않은가? 미래를 위한 현재의 희생. 희생당하는 현재가 존재하는 공간이 재미있을 리가 없다. 

 여기까지 읽은 독자들은 이런 말을 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뭐. 그럼 대안을 제시해봐. 불평만 하지 말고 대안을 제시해 보라고.’

 대안이라... 글쎄, 솔직히 모르겠다. 그걸 알면 내가 지금 일개 학교에서 로봇처럼 수업하고 있겠는가? 


 -귀찮고 재미없다그러니 아무 문제만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8년차 교사의 솔직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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