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오십 대라면 연륜이 묻어나는 시기라고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도 있지만 ‘쉰 세대’ 또는 ‘꼰대’가 연상되는 나이기도 하다. 그런데 정작 나는 내 나이를 의식하지 못하고 살 때가 많다. 직업상 젊은 사람들을 상대하다 보니 청량하고 밝은 에너지가 나이를 잊게 한다. 그러다 사진을 같이 찍게 되거나 서류에 나이를 적게 될 때 비로소 내가 50대라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그때의 씁쓸함과 부러움 그리고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한다.
올해도 나는 내 나이를 한참 계산해야 했다.
“글쎄요.. 제가 올해 몇이더라..”
잊고 있던 나이를 묻는 한국 특유의 인사법 때문에 정확한 올해 나이를 각인하게 되었다.
“아이고, 내 나이가 벌써 오십...” 혼잣말을 하게 된다.
50세가 되면 그럴듯한 위치에 올라가 있거나 부유하지는 않더라도 뭔가 번듯한 내 거라고 할 만한 것들이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살아 보니 뭐 별 거 없었다. 그냥 49세에 한 살 더해 50이 되고 50세에 한 살을 더해 51...52.. 이렇게 그냥 흘러가고 있다. 나는 뭔가 하고 싶었다. 이대로 주저앉고 싶지 않았다. 다시 열정을 불태울 수 있는 청춘으로 살고 싶었다. 30대에 청춘을 불태워 본 경험이 있어서인지 아니면 아무 생각이 없어서인지 대책없는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일을 저질렀다.
이 일로 주변의 만류와 질책이 난무했다.
"지금 그만두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지금 그 나이에 해외를 나간다고?" "결혼도 안 했는데 모아둔 돈은 있어?" "야, 너 정말 겁도 없고 대책도 없다."
#내 나이 50,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어느날 문득 이 직장에서 얼마동안 일할 수 있는지 계산을 해 봤다. 60살에 퇴직을 한다고 가정하면 앞으로 8년 남았다. 8년 이후 나의 모습을 생각해 봤는데 그냥 60대 할머니였다. 그후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잘 그려지지 않았다. 그냥 그렇게 살아도 될까? 나는 그렇게 나이 들고 싶지 않았다. 물론 60대에도 봉사하면서 열심히 살 수 있겠지만 백세 인생의 반환점을 돈 나는 좀 더 열정적으로 살고 싶었다. 꿈으로만 간직하고 있던 일들을 노트에 적으며 구체적으로 인생 설계를 해 봤다. 갑자기 의욕이 생겼다. 재미있을 것 같았다. 그냥 사는 게 아니라 그동안 쌓은 22년 경력을 보다 재미있게 전문적으로 사용하고 싶었다.
그래서 KF 해외 파견 객원교수 모집에 지원하였다. 정말 오랜만에 이력서를 쓰고 자기 소개서를 쓰는데 기분이 묘했다. 다시 청년이 된 기분이었다. 지원하면서 두렵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했지만 꿈을 꾸며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갔다. 내가 꿈꾸는 일과 현실이 달라서 실망도 하고 화도 났다. 하지만 새로운 도전이 설레고 짜릿했다.
작년 2020년 9월 생각하지 못한 제2의 인생이 시작됐다. 그 첫 시작은 베트남 달랏대학교다.
20년 전 나이 30살, 가장 빛나고 왕성한 시기에 베트남 호치민에 간 적이 있다. 베트남과 나의 제자들 덕분에 4년 반동안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었다. 그때의 나는 ‘피끓는 열정’이었다면 지금의 나는 ‘노련한 열정’으로 베트남에서 신나게 살고 싶다.(사실 코로나 때문에 현지 파견을 못 하고 온라인 수업으로 대체 근무중이지만...ㅠㅠ)
# 지천명(知天命), 하늘의 뜻은 잘 모르겠지만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터닝 포인트
공자는 50을 ‘지천명(知天命)’이라고 했다. 지천명의 사전적 의미는 하늘의 뜻을 안다는 것이다. ≪논어≫ <위정편>에서 공자가 쉰 살에 하늘의 뜻을 알았다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50에 하늘의 뜻을 아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있을까? 아마 그것은 공자니까 가능했던 건 아닐까?
나는 나이를 먹어 경험이 쌓이는 데도 늘 낯설고 서툴다. 잘 모르겠다. 어느 날은 알 것 같다가도 어느 날은 잘 모르겠고, 어느 날은 할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생기다가도 한없이 나약하게 무너진다. 하늘의 뜻은 잘 모르겠지만 나이 50이 내 인생 방향을 바꾸는 터닝포닝트가 된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그냥 내 마음이 가는 대로 해 보려고 한다.하늘의 뜻 보다 내 마음을 헤아려 아는 나이로 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