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린 파파야 향기 Feb 18. 2021

뭘 가르치려 하지 마. 나를 유혹해 봐

-교육의 재미와 대상에 대한 再考

# 더 즐겁게, 더 신나게~


오랜 시간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면서 가장 행운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내가 존경할 수 있는 롤모델 같은 선생님을 만났다는 것과 교육 마인드가 나와 같은 곳에서 일했다는 것이다. 나의 선생님은 교재를 만들거나 행사를 진행하게 되면 항상 재미를 추구하셨다. 나도 마찬가지였지만 나의 사수격인 선생님은 정말 집착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예를 들어 가장 재미를 추구하느라 고생했던 것은 한국어 교재를 만들 때였다. 다른 학교에서는 단기간에 끝낼 것을 우리는 몇 년에 걸쳐 교재를 만들었다. 원고가 완성되면 동료 교사들에게 피드백을 받는다. 동료 교사들이 어느 정도 괜찮다는 반응을 보이면 가제본 교재로 학생들에게 직접 가르쳐 본다. 자유로운 분위기의 학교라서 그런지 많은 학생과 교사들의 피드백이 들어온다. 그러면 그 의견을 반영해 다시 수정하고 또 가르쳐 보고 수정하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학생들이 재미있어야 해요. 더 즐겁게, 더 신나게 배울 수 있는 콘텐츠는 없을까요?”
 “어떻게 하면 이 읽기를 재미있게 가르칠 수 있을까요? 이렇게 해 보면 어때요?”


나의 사수 선생님 덕분에 나도 후배 교사들에게 교과 내용을 전수할 때 재미있게, 신나게라는 단어를 입버릇처럼 달고 있다.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칠 때 힘든 점도 있지만 교실에 들어가서 학생들을 만나는 것이 즐겁고 행복했다. 마치 매일 세계 문화여행을 떠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어떤 때는 내가 수강료를 내고 들어야 할 정도로 다채로운 생각들과 문화를 접하게 된다. 어디 가서 이런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과 자기 생각이나 문화를 나눌 수 있겠는가. 행운이다. 학생들은 말할 준비가 되어 있고 교사들은 판을 깔아줄 준비가 되어 있는 곳에서 그렇게 13년을 보냈다.

 

# 이 수렁에서 누가 나를 좀 구해줘!

 

그런데 새롭게 도전한 KF 해외 파견 객원 교수로 베트남 달랏대학교에서 가르치면서 나는 난관에 부딪쳤다. 대면 수업을 해도 힘들 50명의 인원을 코로나19로 온라인 쌍방 수업을 해야 했다. 스마트 기기나 환경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학생들도 있고 나도 언제 베트남으로 파견될지 몰라 최소한의 기기로 수업하며 파견될 날만 기다렸다. 수업을 하면 할수록 점점 수렁으로 빠지는 기분이 들었다. 과목별로 온라인 화상 시스템에서 내 수업을 듣는 학생이 50명이다 보니 학습자의 집중도는 떨어지고 내가 처리해야 할 학생들의 과제 및 성적은 200개가 넘어 출석 관리하기도 벅찼다.

 

그렇다고 두 손 놓고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이 50 넘어 진정한 주도 학습을 실현했다. 아마 내 평생 이렇게 주도적으로 공부해 본 적이 있었나 싶다. 어떻게 해서든 재미있게 대면 수업 같은 느낌을 주고 싶었다. 그런데 익숙한 학습 프로그램이 아니라서 물리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그래도 더 재미있고 대규모 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는 수업을 만들기 위해 고민했다. 유튜브로 밤새 낯선 온라인 학습 프로그램들을 공부하고 수업에 적용했다.

다행히 유튜브에는 발빠르게 온라인 수업을 진행하신 분들의 좋은 콘텐츠와 영어교육에서 사용하고 있는 프로그램들이 있었다. 그것을 차용하여 나의 한국어 수업에도 적용해 봤다. 처음 시도하는 것이라 완벽하게 진행되지 못하고 실패할 때도 있었다. 어떤 것은 공부했지만 여전히 어려워 시도도 못한 것도 있다. 하지만 절반의 성공이라도 너무나 기쁘고 보람을 느꼈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나의 실패담을 바탕으로 온오프 상황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게임 학습 프로그램을 한국어 교사들에게 소개해 볼까 한다. 만약 내가 시도해 보지 않고 기존교육 방법으로만 가르쳤다면 전혀 몰랐을 재미있는 새로운 세상을 말이다.

  

# 너희들은 누구니?

우연히 유튜브에서 지금 잘 팔리는 것들의 비밀이라는 책소개를 보고 바로 주문해서 읽었다.

이 책은 저자 최명화·김보라가 지금 시장에서 성공하는 마케팅과 실패하는 마케팅의 차이에 대해 구체적인 실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마켓팅 관련 책이지만 나는 이 책에 나오는 MZ세대를 나의 교육 서비스 대상자인 베트남 대학생들에 접목시키며 흥미롭게 읽었다.


베트남 현지에서 직접 느끼는 변화가 아니라서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내가 다르다고 느끼는 2가지가 있다. 확실히 달랐다. 20년 전 내가 가르쳤던 호치민 인문사회대학교 학생들과 지금 가르치고 있는 달랏대학교 학생들의 생활 패턴이나 생각이 다르다는 게 느껴진다.

 

첫째는 무시간성의 예측 불가의 소비자들이라는 것이다. 베트남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인터넷과 스마트폰으로 24기간 연결된 막강한 네트워킹이 깔린 삶을 살고 있다.

24시간 개방된 네트워크 속에서 살아온 MZ세대의 라이프 스타일은 ‘무시간성’이 특징이다. 하루, 일주일, 월 단위로 계획을 쪼개 살던 기성세대의 눈에 이들은 마치 ‘계획 없이 사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24시간 연결되길 휘망하는 MZ세대는 끊임없이 정보를 새로 업데이트하기 위해 ‘셀프 불면’을 택하기도 한다. (85-86p)


둘째는 고양이를 닮은 소비세대라는 것이다. 뭔가 새로운 것을 시도하면 경계를 하고 민감하게 반응하다가도 자기가 좋다고 생각하면 톡톡 건드리며 즐긴다. 그리고 쉽사리 마음을 움직여 주지 않는다.

지금의 핵심 소비 계층은 전대미문의 까다로움과 파괴적 소통력을 지녔다.

그들은 끊임없이 속삭인다. "나에게 당신의 제품을 팔고 싶어? 그럼 당신이 멋진 사람이 되어야지. 뭘 가르치려 하지 마. 나를 유혹해 봐." (p.197)


# 언텍트한 세상에서 또 다시 재미있게~ 신나게~

 

현재 우리는, 아니 전세계는 코로나19 팬데믹 시대로 그 누구도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모든 것이 빠르게 달라지고 변해 버렸다. 내가 소속된 교육 환경도 언텍트(비대면) 교육이 일상화됐다. 이 변화에 나는 교사로서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그런 고민을 하는 가운데 이 책을 만났고 읽다가 내 교육 현장에서 바로 적용할 아이디를 얻었다. 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3가지 수업 구성 목표를 설정했다.

 

첫째, 콧대는 낮추되 콘텐츠는 파격적으로!

그동안의 교사는 교단에 섰다는 이유만으로 아니, 앞에 서 있다는 이유만으로 권위가 세워졌다. 하지만 이제는 다 똑같이 온라인 시스템안에서 작은 네모칸 한 칸을 차지하고 있는 한 구성원일 뿐이다. 이제 옆에서 수평적으로 학습자를 돕는 역할로 내려와야 한다. 그리고 교과서로 내용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학습자들이 교과서 내용으로 신나게 놀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


둘째, 힘빼고 자연스럽게!

사실 한번도 해 보지 않은 새로운 도전을 하다 보니 실수도 많았고 실패한 적도 있었다. 완벽주의자 성향이 있는 나에게는 정말 속상한 일이다. 하지만 오히려 학생들이 괜찮다고 위로해주고 도와주기도 했다. 뭔가 시도했다는 것만으로도 나를 인정해 주었다. 고맙게도...


셋째, 그거 해 봤어? 나서지 말고 판 깔기!

이제 내가 준비한 교육 내용이라도 전달에 목적을 두지 않고 호기심을 자극하고 판을 깔아줘야 한다.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는 방향을 설정해 주고 끊임없이 재생산할 수 있는 판을 깔아주자. 그 판 위에서 신나게 놀 수 있게.


   

이젠 대학 교육도 서비스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
나의 콘텐츠를 소비하는 학생들이 어떤 것을 매력적으로 느끼는지,
어떻게 하면 내 콘텐츠를 즐기면서 놀 수 있게 할지 교사로서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50, 인생 후반전이 시작됐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