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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 파파야 향기 Feb 18. 2021

인생이 허무하다고 느껴질 때  

–‘나’라는 위대함을 믿어 주기

요즘 페이스북에 내가 올린 [과거의 오늘]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추억도 꺼내보지 않으면 잊히기 마련인데 잊지 않고 나의 과거를 알려 주니 어느 면에서는 고맙기까지 하다. 오늘 올라온 2년 전 나는 안쓰러우면서도 귀엽다. 그날 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구구절절 써 놓지 않았지만 그날의 기분과 결심은 생생하게 느껴진다.

     

# 이해할 수 없는 여우들     


나는 앞과 뒤가 다른 사람이 싫다. 뒤에서는 아무리 교양 있게 말해도 결국은 욕인 말들을 늘어놓다가도 그 사람이 나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생글생글 웃으며 비위를 잘 맞추는 사람들을 보면 신기하다. 어떻게 저런 행동이 자연스럽게 나오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하지만 곰처럼 우직하기만 한 나에게 동료들은 직장 생활을 잘하려면 여우가 되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내가 봐도 예쁜 여우들은 사랑을 받는 것 같다. 그래서 나도 여우가 되어 보려고 해 봤지만 여우의 탈을 쓴 곰탱이일 뿐 나와는 잘 맞지 않아 오히려 부자연스럽다.      


그날 학교 일로 회의를 하다가 한 여우에게 한 방을 맞았다. 회의 전에 커피 한 잔 하면서 오늘 있을 안건에 대해 이 얘기 저 얘기를 했다. 그런데 그때까지 아무 준비도 하지 않았던 여우가 회의가 시작되니 메모지를 꺼내 자기가 준비해 온 거라면서 우리들이 이야기했던 내용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말하는 게 아닌가.


여우의 이야기를 들은 상사는 흡족해하면서 그 내용들에 맞춰 보고서를 쓰라고 했다. 얼마나 어이가 없고 황당한지 멍청하게 앉아 있는데 나에게는 다른 의견이 없냐고 물으셨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결국 여우는 가로챈 아이디어로 칭찬을 받았고 곰탱이들은 보고서를 작성해서 제출해야 했다.  어떻게 저렇게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을까? 상사는 그 여우짓을 모르는 건가? 아니면 알면서도 예쁜 건가? 도무지 내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 당당한 박나래, 너라는 위대함   


인생을 헛살았나 싶은 헛헛함을 안고 친구와 만나기로 한 명동에 도착했다. 그런데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서 오늘 만날 수 없다고... 정말 미안하다고 사과하면서 약속을 취소했다. 사실 오늘은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았지만 만나야 할 것 같아 나온 터라 별로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좋았다. 혼자만의 시간을 더 가지고 싶었는데 잘 됐다 싶었다. 그래서 오늘은 나를 위해 시간을 쓰기로 했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오랜만에 명동 씨네 라이브러리에서 영화 한 편을 보기로 했다.      


그때 한쪽 벽면에 붙어 있는 대문짝만 한 광고 사진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개그우먼 박나래 씨의 광고 사진이었다. 박나래 씨에 대한 나의 이미지는 작고 통통하고 뭔가 열심히 하는 연예인 정도였다. 그래서 예쁘다는 느낌보다 친근하고 성실한 연예인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는데 이 사진 속의 박나래 씨는 전혀 다른 박나래 씨였다. 뜻밖이었다.


광고 사진 왼쪽에는 몸에 딱 붙는 레깅스를 입고 가볍게 뛰어오르는 그녀의 모습이 담겨 있다. 그녀의 자세와 표정은 보고 있는 나에게 자신의 당당함을 자랑이라도 하는 것처럼 자연스러웠고 아름다웠다. 그리고 오른쪽에는 그녀의 캐릭터 이미지처럼 호탕하게 웃는 모습이 담겨 있다. 웃는 얼굴 위에 크게 '너라는 위대함을 믿어'라고 쓰여 있었다.    

왠지 박나래 씨가 나에게 말을 거는 것처럼 느껴졌다.  “인생 뭐 있어? 자신 있게 살아. 나는 나야! 너라는 위대함을 믿어 봐.” 나는 작은 목소리로 주문을 걸듯 3번을 읊조렸다.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났다. '나'라는 위대함을 믿어 보기로 마음먹자 뭔지 모를 긍정의 힘이 온몸 구석구석 전해졌다.     


# 무궁무진한 나의 50대     


50세가 되면서 늙었다는 생각, 뒤로 밀려나는 느낌으로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생길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해도 다 될 것 같은 자신감과 여유로움을 지닌 것도 50대인 것 같다. 지금도 괜찮고 앞으로도 모두 잘 될 거라는 느낌이 든다. 왜냐하면 지금껏 잘 살아왔으니까. 누구도 50대를 피할 수 없다. 그렇다면 자신감 가지고 신나게 살자.


잊지 말자. 아직 우리 인생에서 해 볼 수 있는 일들은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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