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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나따 Jul 19. 2022

플로리다 산 오렌지를 까먹으며 리스본의 겨울을 생각하다

포르투갈을 기억하는 방법 1 - 오렌지 나무

12월의 리스본은 사실 겨울로 기억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라고 배웠고, 사계절까진 아니더라도 극도로 더운 여름과 극도로 추운 겨울이 분명하게 나뉘어진다. 그러나 포르투갈은 말하자면 사계절이 애매모호한 나라랄까? 그냥 볕드는 길을 따라 걷다보면 지금이 3월인지, 9월인지 자주 헷갈린다. 겨울도 마찬가지다. 추워봐야 7도. (영하 아니고 영상 7도입니다) 오히려 난방시설이 잘 안 갖춰진 실내가 춥고 바깥으로 나오면 햇볕이 워낙 따뜻해 지낼만 하다. 비만 안 온다면 말이다.


기후가 그렇다보니 특히 사진만 봐서는 겨울인지 봄인지 분간하기 어렵기도 하다. 봄, 가을이 짧은 우리나라에서는 트렌치코트가 가죽자켓을 사면 일년에 몇 번 못입지만 포르투갈인들은 가죽자켓을 거의 가을부터 겨울, 초봄까지 입고 뽕을 뽑는다. 방수기능이 되는 트렌치코트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와는 반대로 겨울이 습하고 비가 자주 오는 기후 때문에 나역시 트렌치코트를 사서 비가 오면 깃을 세우고 거리를 활보했다. 왜 유럽에서 그런 패션이 유행했는지 알 법도 하다.


그러나 포르투같의 겨울을 떠올리게 하는 것은 트렌치코트도, 가죽자켓도, 생각보다 따뜻한 겨울날도 아니다. 바로 오렌지다. 리스본에서 처음 겨울을 맞이 했을 때 내가 가장 놀란 것은 바로 길가에 가로수로 심어진 오렌지 나무였다. 생각해보니 우리나라에서도 감귤은 겨울 제철 과일인데, 왜 그렇게도 낯선 나라에서 한겨울에 주렁주렁 매달린 오렌지가 신기해보였을까. 플로리다를 가본 적은 없지만 오렌지는 늘 뜨거운 여름 같은 플로리다에서나 나는 건줄 알았다. 겨울 과일인 것도 신기했지만, 오렌지 나무가 가로수도 심긴 것도 내겐 신기한 풍경이었다.


리스본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 중 한 곳인 알파마 지구의 리스본 대성당(Sé de Lisboa) 오른편 골목에는 성당 외벽을 따라 오렌지 나무가 심기어 있다. 리스본의 명물인 노란 트램은 이 대성당을 기점으로 왼쪽으로 지나간다. 그 반대편 길은 전차 소리와 붐비는 관광객, 기념품을 파는 상점들의 호객 행위가 없어 상대적으로 한적이다. 오렌지 나무 길에는 맛있고 팬시한 호주식 브런치 가게가 있어 가끔 친구들과 주말 회동을 갖기도 했다.


성벽을 따라 쭉 올라가면 화요일과 토요일마다 열리는 도둑 시장(Feira de Ladra) 있다. 구전으로 내려오는 지명이 으레 그렇듯, 이 이름에도 여러 설이 있는데 우선 “Ladra”가 포르투갈어로 도둑의 여성형, 여자도둑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도둑들이 장물을 파는 시장이라는 것이다. 실제로도 빈티지 제품들을 팔고 사는, 한국의 동묘앞 같은 곳이다. 또 다른 설은 포르투갈어 고어로 ‘강가’라는 뜻의 “lada”가 전해지며 “ladra”로 변이되었다는 이론인데, 이 시장은 테쥬 강을 끼고 강변에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어떤 학자들은 원래 이 시장은 강변이 아닌 호시우 광장에서 시작되었다고 반박하기도 한다. 이외에도 아주 가난한 사람을 뜻하는 “lázraro”에서 유래되었다, 실제로 시장에 자주 출몰하는 사면발니 벌레를 뜻하는 “ladro”에서 유래되었다 등등 많은 이론과 반박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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