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와 여행은 몇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첫째, 새로워야 한다. 아무도 쓰지 않은 것에 대해 써야하고, 아무도 가보지 않은 곳에 가야한다. 두번째, 완전히 새로운 것은 불가능하다. 어쩌면 우리는 너무 늦게 태어났고 우리가 하고 싶었던 말들은 모두 이미 누군가가 책으로 냈으며, 아무리 '저런 곳은 관갱객이 없겠지'하는 마음으로 방문한 곳도 이미 누군가가 올린 구글리뷰가 있기 태반이다.
여행이 아직 '여행'이기 전, 그러니까 바다 끝으로 가면 지옥으로 가는 낭떠러지가 있다고 생각했고, 남미로 가고 있으면서 그곳이 인도라고 생각했던 시절. 인간들은 지구가 얼마나 넓은지, 나와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살고 있는지 아직 잘 몰랐다. 그 때에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곳들이 너무나 많았고, 모험가들은 자신이 그곳에 도착한 '첫' 유럽인임을 증명하는 것이 가장 큰 임무인 듯 여행기를 써댔다. 수세기가 지나고 과학기술의 발전과 중산층의 성장 등으로 여행이 보다 보편화되고, 또 여성인권의 향상으로 더이상 남자들만 여행하지 않고 여자들도 주체적인 여행자가 될 수 있었을 때 즈음엔, 이미 세상에 '가보지 않은 곳'은 거의 없어진 후였다. 소니아 세하누는 이렇게 여성이 여행을 시작했을 때 즈음부터 여행기도 '어디에 갔느냐'보다는 '그곳에 왜 갔느냐', '어떡하다 그곳에 갔느냐'가 여행문학의 더 중요한 테마가 되었다고 말한다.
여행문학에도 많은 종류가 있다. 여행의 종류가 변천해옴에 따라 이를 기록한 여행문학 혹은 넓게 여행글쓰기도 변화해왔다. 초기의 순례나 해외원정이 여행의 주된 형식이었을 때는 왕이나 동료 신부에게 쓰는 편지나 자신이 여행지에서 겪은 일을 쓴 일지가 여행문학의 초기 형태였다. 보이는 것을 최대한 그대로 전달하고 새로운 문화와 문명에 대한 가감없는 묘사가 중요했다.
그런데 문학이라는 것 자체가 사실을 전달하는게 아니라 인간의 강렬한 감정과 개성의 표현이라는 낭만주의 사조가 발전할 때부터, 여행문학도 단순한 정보전달이 아니라 작가가 여행지에서 어떤 개인정체성을 발견했는지, 어떤 감정들을 느꼈는지를 써내는 것이 더 중요해졌다. 그곳이 어디인지보다는 내가 그곳에서 무엇을 느꼈는지가 더 중요해졌다. 낭만주의 문학은 이런 점에서 개인주의(individualism)과 관련이 깊다. 개인으로서의 '자아'가 중요해진 것이다. 사실 사진의 발명도 한 몫한다. 더이상 글로 여행지를 생생하게 묘사할 이유가 없어졌다. 사진을 찍으면 훨씬 정확하니 말이다.
탈식민주의 이론이 나오기 시작하면서는 여행문학에서 어떻게 외국인들을 묘사하고 재현하였느냐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편견, 선입견, 스테레오타입 등이 해외여행에서 만난 현지인들을 묘사는데 영향을 주었을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기존에 과거에 적힌 묘사로부터 한 국가에 대해 여행자들이 어떤 선입견을 갖고 있는지도 역으로 추적할 수 있게 되었다.
정보 전달, 개인의 발견, 타자의 재현은 칼 톰슨이 제시하는 여행문학의 기본적인 세 기능이다. 아직도 많은 여행글쓰기가 이 세가지를 의식적으로, 또 무의식적으로 하고 있다. 여행한 나라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를 전달하면서(대략적인 면적, 날씨, 지리적 특성 등), 여행을 하면서 느끼는 나의 감정들을 표현하고,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이나 현지의 문화를 나름대로 해석한다.
어떤 형태이든, 어디에 초점을 맞추었든, 여행글쓰기는 여행을 체화시키고 두번 경험하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여행을 할 때 여행자로 느낄 때는 순간적이고 즉각적으로 받아들여야만 했던 것들을 글쓰기를 통해 반추하면서 내 삶의 문맥과 연관지어 의미를 설정하고 사회적인 시사점들에 비추어 재해석하는 것이다. 물론 글쓰는 꼭 여행 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습관을 들이면 유익한 것이다. 그렇지만 일상에서는 생각보다 글쓰기 동기를 얻기가 마땅찮다. 매일 반복되는 하루, 별다를 것 없는 일상에서 글쓰기 소재를 끄집어 내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행에서는 매순간 새로운 자극을 마주하기 때문에 글쓰기에 도전하기에 최적의 환경이라 할 수 있다. 어쩌면 나는 여행 자체는 별로 안 좋아하지만 여행 이후의 글쓰기를 좋아했던 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