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와 여행자 사이

by 헤나따

외국에서 이민자로 살면서 나는 여행자라는 신분을 동경하게 되었다. 여행자들은 대게 식당에서 친절로 환영받으며, 여행지의 장점을 최대로 누리며, 조금 불쾌한 일이 있어도 일시적인 일로 치부하면 될 일이고, 사실 여행의 순간적 분위기에 도치되어 마치 허니문 시기를 즐기듯 여행지의 단점을 잘 발견하지 못하게 된다.


물론 이런 것들은 여행자에 대한 나의 편견이다. 유독 자기와 맞지 않는 여행지에서 불운만 계속 되고 말은 안 통하고 풀리는 일은 없는 답답함 속에 시간과 돈만 낭비했다는 짜증으로 가득찬 여행을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게 이렇게 여행자의 신분이 부러운 존재가 된 것은, 이민자라는 상대적인 나의 신분이 너무나 힘들게 느껴졌기 때문일지 모른다. 내게는 매일 싸워야하는 인종차별, 캣콜링, 언어장벽, 그 사회에 완전히 섞이기 등등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는 생활의 불편함들이 있었다. 내겐 그런 장소가 누군가에게는 인생 최고의 여행지이기도 해서, "그곳에 사신다니 너무 부러워요" 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괜히 속이 쓰라렸다. 나도 여행으로 이곳에 왔으면 여기를 좋아했을 것 같다는 피해의식만 가득했다.


종교를 떠나서 나는 성경을 참 좋아한다. 한 서사(narrative)로써 좋아한다. 특히 구약에는 이방인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온다. 원래 살던 곳을 기꺼이 떠나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감으로 낯선 땅을 향해 떠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출애굽이고, 그부터 시작해서 주변인으로도 여러 이방인들이 많이 나온다. 그리고 그 이방인들을 향한 성경의 메세지는 줄곧 '환대하라'이다. 외국인들을 향한 편견 없는 환대는 신약에서 각 계층의 사회소수자들을 향한 포용으로 확장된다. 매춘부, 나병환자, 가장 세속적인 직업을 가진 세리, 집에서 살림만 하는 마르타 등을 향한 예수의 편견 없고 차별 없는 환대는 읽는 이들에게 분명한 메세지를 준다.


환대. 내가 받고는 싶지만 막상 주기는 쉽지 않은 것. 김현경의 <사람, 장소, 환대>라는 책을 매우 재미있게 읽었는데, 아직도 생각나는 책 속 구절에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 사람들이 더럽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떤 물건이 원래 있어야하는 자리에 없을 때인데, 예를 들어 신발장에 신발이 있으면 괜찮지만 식탁 위에 신발이 올라가 있으면 더럽다고 생각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어떤 사람이 원래 있어야 마땅한/마땅하다고 여겨지는 자리를 이탈하면 사회적 지탄을 받게 되는데, '집에서 밥이나 차려야 할' 여성이 도로 위에서 차를 몰고 있으면 욕을 들어도 싸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자기 나라에서 돈 벌 것이지 왜 남에 나라에 와서 난리야'라고 생각하는 것도 비슷한 예시이다.


대학교 1학년, 처음 유럽 여행을 와서 파리에 갔다. 그때 한 3박 4일 있었는데, 마지막 날 아침이 되니까 거리에 앉아있는 구걸하는 노숙자들이 보였다. 분명 매일 지나던 숙소였는데 첫날이나 둘째날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었다. 그런식으로 유럽의 세 도시를 여행하고 보니, 여행자가 여행 초반에 어떤 콩깍지 같은 것이 씌여 여행지의 안 좋은 점들을 못 보게 된다는 나만의 이론을 만들게 되었다. 처음에는 여행의 낭만에 젖어 아름다운 풍경과 건축물만 보이게 된다. 사람들도 어쩐지 다 이쁘고 다 잘생겨보인다. 별 거 아닌 가로등도 너무 이국적이게만 보인다. 그런 콩깍지 시기가 지나게 되면 그제서야 '아, 이곳도 사람 사는 곳이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거리에 쓰레기도 보이고, 횡단보도 시스템이 매우 이상하는 것도 보이기 시작한다.


여행자가 되면 뜨내기처럼 보이기 보다는 그곳에 사는 현지인처럼 누리고 싶어하는 심리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 문화의 정수를 온전히 느끼고 싶은 욕구. 그렇지만 나의 경우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갔을 때나 외국으로 이사를 갔을 때, 여행자들만 누릴 수 있는 "여행자모드"를 일부러 활용했다. 내가 이곳에 와서 아등바등 적응하며 어떻게든 부대끼며 살아가는 하는 사람이다 ㅡ 라고 생각하면 그렇게 서글프고 쓸쓸하던 일들도, 나는 여기 잠깐 놀러온 여행자다ㅡ라고 생각하면 그냥 웃어넘길 수 있게 되었다. (난 사실 공주고 이건 취미다 마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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