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여행이 워낙 보편화되고 또 자기 개성이 많이 반영되기도 해서, ‘ㅇㅇ국에서 반드시 해봐야 하는 것’, 혹은 ‘반드시 가봐야 하는 곳’ 등은 큰 의미가 없는 것 같다. 어떤 분은 어디를 여행하든 도서관을 가보신다는 분도 보았고, 식물원을 꼭 가본다는 분도 보았다. 여행지마다 한식당을 꼭 찾는 분도 있고, 맥도널드마다 가서 사 먹어 보는 친구도 있었다. 남들에겐 좀 의아한 장소여도 내 관심사가 그렇다면, 또 언젠가부터 그것이 자신만의 특별한 여행 의식처럼 자리 잡았다면 어딘들 어떻겠는가.
'여행'이라는 하나의 카테고리 안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호텔만큼은 좋은 데서 자야 하는 사람도 있고, 먹는 것만큼은 유명 맛집을 가야 좋은 여행이었다고 만족할 수도 있다. 그림을 좋아한다면 외진 곳에 덜렁 미술관만 있는 곳이라도 돈을 모아 달려갈 것이고, 어떤 작가의 열렬한 팬이라면 그곳이 제아무리 너무 유명해 관광객이 바글대는 곳이라도 기꺼이 갈 것이다. 사실 이런 예들은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분명히 알고, 오랫동안 자신의 취향을 발견하고 만들어가기 위해 공을 세운 사람들의 이야기일 것이다. 때로는 지난한 일상에 치여 내가 누구인지 잘 모르게 되어서 여행을 문득 떠나기도 하고, 여행을 통해 경험을 쌓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나가기 위해 여행을 선택하기도 한다.
딱히 그렇다 할 취미도 없고, 별다른 관심사도 없는 사람들은 ㅡ 특히 나이가 어리고 여행 경험이 적을수록 그럴 가능성이 많겠지만, 그렇다고 그게 전혀 나쁘거나 잘 못된 것이 아니다ㅡ 다른 사람들의 여행기를 참고하고, 여행서적을 읽으면서 여행작가가 추천하는 '꼭 가봐야 할 곳'같은 리스트들을 목록에 넣을 것이다. 다른 사람의 여행을 모방한다고 무조건 나쁘다고 할 순 없다. 잘 모르는 사람들이 참고하라고 책도 만들고 자기가 아는 정보를 인터넷이 공유하기도 하니까. 이런 발품마저 팔기에 시간이 없고 외국어에 자신이 없거나 유독 신중하고 겁이 많은 성격의 사람들은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패키지여행을 선택하기도 한다. 여행을 많이 다니고 취미생활을 오랫동안 갈고닦아온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보다 자신을 우위에 두며 은근히 조롱할지도 모른다. 패키지 여행자들은 무례하고 어리석다며 편견을 가지거나, 다른 사람의 여행기를 보고 무작정 따라 하는 사람들을 자기 주관이 없는 사람이라고 속으로 은근히 깍아내릴지도 모른다.
칼 톰슨(Carl Thompson)은 <여행문학(Travel Writing)>이라는 책에서 여행자(traveller)와 관광객(tourist) 중 사람들은 대게 여행자가 되고 싶어 하며, 여행자들은 은근이 관광객들을 무시한다고 꼬집어 말한다. 자유여행자가 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지식, 경제적 능력, 시간적 여유가 뒷받침 되어야 하는데, 이게 당사자 입장에서는 별 것 아니고 아주 기본적인 것이어도 그걸 가지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꽤나 큰 능력으로 보여질 수 있는 것들이다. 계급적으로 표현하자면 부르주아 계급에 가까우며, 엘리트층이라 볼 수 있다. (현대사회로 와서 부르주아와 엘리트의 장벽이 아무리 낮아졌다고 해도 말이다.) 그래서 관광객들과 여행자를 차별화시킴으로써 자신들의 엘리트주의를 공고화시키고, '진정한' 여행을 독점하고자 하는 욕망을 은연중에 표출한다고 말한다.
단체여행이나 여행대행업체가 탄생한 시기가 프로레타리아 계급의 발흥 시기와 겹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폴 퍼셀(Paul Fussel)은 <해외로(Abroad)>라는 책에서 여행의 형태가 르네상스 시기에는 해외 원정, 부르주아 계급 출현 시기에는 견문을 넓히는 그랑 투어(Grand Tour), 19세기 후반 및 20세기에 노동자 계급의 위상이 오르면서 여행이 대중화되고 관광이 탄생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여행사를 제일 먼저 만들고 관광이라는 것을 보편화시킨 인물이 영국의 토마스 쿡인데, 그가 세운 토마스쿡 여행사는 항공, 호텔 등 관광업 전반으로 사업을 넓혀 꽤 큰 규모의 회사가 되었다. (얼마 전에 망했다는 기사가 나긴 했지만..) 그가 처음 여행사를 세웠을 때 내세운 광고 문구가 "Don't Book It. Thomas Cook It."이었다고 한다.
여행가이드를 하면서 호화로운 프라이빗 가이드도 해보았고, 홈쇼핑에서 주문해서 오신 단체패키지도 해보았지만, 무례하고 교양없는 사람들은 여행의 유형과는 크게 상관이 없었다. 정보가 적은 상태에서 여행을 준비한다면, 이렇게 여행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여행에이전시든 여행책이든 도움을 안 받을 이유가 없다. 그런 식으로 남들은 적극 추천했지만 나는 크게 감흥이 없는 곳도 가보고, 심드렁한 마음으로 가보면 좋다니 가보긴 했는데 막상 도착하니 너무 예상외로 좋은 곳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새로운 것에 열린 마음으로 취향을 발견해가면 여행 이후의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나를 더 조금 더 잘 아는 사람이 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남들보다 몇군데 더 여행을 많이 갔다고 해서 타인의 여행을 무시하거나 비난할 자격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