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을 여행하러 오는 지인들이 자주들 내게 로컬 맛집을 물어보았는데, 나도 나름 여기 '로컬'로서 정말 대답하기가 힘들었다. 왜냐면 가난한 유학생인 내가 먹는 음식은 80퍼센트가 마트에서 싸게 장 봐서 집에서 해 먹는 한국음식 이미테이션. 그리고 종종 학교 학식. 또 외식하는 날이면 고국의 그리움을 싼 값에 달래줄 중국음식이나 진짜 일식과는 거리가 먼 일식점이기 때문이다. 내 리스본 최애 맛집은 쌀국수집, 불법 중국식당 마파두부, 학교 옆 가성비 좋은 스시뷔페(망고를 단무지로 착각만 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점심 6유로 특선 태국음식점이다. 리스본에 놀러 온 친구들에게 이런 식당을 추천해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나도 현지에서 발간하는 맛집 정보 잡지들을 인터넷으로 정독하며 새로운 식당들을 탐험해보는데, 대부분은 그냥 시내(=관광지)에 위치한 맛집들이다. 직원들도 포르투갈어 보다는 영어로 주문을 받는, 관광객들이 자주 가는 식당들이 대부분이다. 로컬 식당 추천해달라고 하면 참 면이 안 선다.
한번은 프라이빗 가이드를 맡았는데, 중년의 한국남성 두 분과 프랑스 남성 한 분이었다. 처음엔 예상도 못한 외국인 손님에 영어 가이드라니, 당장 가이드피를 올려받아야겠어!! 라고 이를 부득부득 갈았지만 하다보니 꽤 재밌어서 (사실 알고 보니 나름 유명한 프랑스 그래피티 아티스트여서, 그 유명세 때문에 그냥 넘어 간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이것저것 맛있는 것도 많이 사주셔서 즐겁게 일하기로 했다. 그분들이 일정에 없던 저녁 식당을 추천해 달라셔서 급하게 근사한 식당에 갔더니 예약이 꽉 차 있었다. 주위를 배회하다가 우연히 한 식당에 들어갔는데, 식당 주인이 프랑스인이었다. 나는 속으로 '포르투갈까지 놀러온 분들인데, 심지어 한명은 프랑스 사람인데, 프랑스인이 하는 식당에 오게 되다니 망했다.'라고 생각하면서 울상을 짓고 있었는데, 오히려 그분들을 즐거워하셨다. 그 식당은 포르투갈 음식을 프랑스 식으로 재해석한 퓨전 요리였고, 주류도 프랑스의 피노누아를 포르투갈의 한 농장에서 재배하여 만든 레드 와인, 포르투갈 식 꼬냑 등을 맛볼 수 있었다.
문득 오리지널리티(Originality)란 무엇인가, 하는 본질적 질문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한국에서 사람들이 추천하는 맛집에는 한정식 식당만 있지 않다. 점심에는 일본 식당보다 맛있는 일본식 돈가스를 먹고, 저녁으로 제대로 맛있게 하는 파스타를 먹으러 갔다가, 주말에 화교가 하는 중식당에 가기로 약속을 잡는다. 포르투갈에서는 무조건 포르투갈 음식만 먹어야한다고 생각했던 게 편협한 태도가 아니었나 하는 깨달음을 얻었다.
많은 여행객들이 전통 포르투갈 음식을 맛보려고 로컬 식당을 추천해달라고 하는 이유는 포르투갈 음식의 오리지널을 맛보려함일 것이다. 그러나 그 오리지널 포르투갈 요리라는 것도 16세기 대항해 시대를 거쳐 아시아와 아프리카, 아메리카 등지에서 가져온 향신료와 식문화가 뒤섞여 만들어진 것일 것이고, 21세기인 지금, 그때 보다 훨씬 세계 여행이 자유로운 시대에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다국적 다민족적 각색과 차용이 없을리가 없지 않은가. 그때 먹은 포르투갈 알렌떼쥬 지방에서 만든 꼬냑과 프랑스 식으로 푸아그라를 곁들인 포르투갈 해산물 요리는, '정통 포르투갈 식당' 간판을 달고 아줄레주 타일을 붙여 리모델링한 그 어느 식당보다도 훨씬 진정성(authenticity) 있게 느껴졌다. 오리지널이라는 단어가 독창적이라는 뜻과 진품이라는 뜻을 동시에 갖고 있는 것이 문득 이해가 됐다.
모든 현실은 가공된 현실이다. 여행의 경우 더 하다. 여행자들은 도착지 문화의 정수를 제한된 시간과 경제적 능력 안에서 최대한으로 누리고 느끼고 싶다는 목표를 가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여행자들을 위한 세상은 온갖 '오리지널리티'로 "가공"되어 있다. 당신이 코메르시우 광장에서 옆 테이블의 현지인과 다정하게 맥주를 마셨다면 현지인들과 현지인처럼 맥주를 마셨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그 외국인은 휴가 온 독일인일 가능성이 크고, 그 비싼 코메르시우 광장 맥주집에서 대낮에 일 안하고 맥주나 마시고 앉아 있을 현지인들은 굉장히 적다.
그러나 산통 깨려고 하는 말이 아니다. 아무렴 어떤가. 때론 사실보다 느낌이 중요할 때도 있다. (사실과 진리만을 추구하던 모더니즘이 무너진 지 얼마나 오래되었던가!) 또 우리는 사실관계 파악에 열을 올리며 구두점 하나에도 진실을 담고 세금 납부를 꼬박꼬박하던 '현실'에서 잠깐 벗어나, 합법적으로 가공된 세상, 여행지로 떠나온 여행객이 아니던가. 난 꼬메르시우 광장의 비싼 맥주집(Museu de Cerveja) 을 좋아한다. 자주 가지는 못하지만, 그 집의 맥주잔이 아주 예쁘다. 그 광장을 바라보고 있는 'O Martinho da Arcada'라는 식당도 페소아가 자주 갔다고 해서 유명한 관광지가 되어버렸지만, 많은 사람이 찾을 만한 가치가 있다. 관광객이 바글바글한 호시우 광장에는 역사와 문화가 깃들어진 유서 깊은 식당이 많다. 나도 가끔 외국생활이 지치면, 시내로 나간다. 관광객이 바글바글한 시내에서 관광객으로 완벽하게 위장하여 반나절 즐기다 온다. 요즘은 포르투갈 전통 가게라는 곳에 가도 포르투갈어를 못하는 외국인 직원들이 서빙을 보는 곳이 많아져 한편으론 속았다, 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기도 한다. 그렇지만 여행자가 가장 관광지 한복판에서 느낄 수 있는 들뜸과 도취되는 기분도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