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여행 준비라는 스트레스

가이드도 다른나라에 가면 초짜 여행자

by 헤나따

P국에서 여행가이드 생활로 생활비를 벌던 내가 영국으로 10일간의 자유여행을 준비하면서 새삼 깨달았다. 자유여행이 이렇게 힘든거였다니!





P국에서는 왠만한 관광지 스팟도 다 알고 있고, 친구들이 여행루트를 추천해달라고 하면 1박 2일, 2박 3일, 3박 4일 날짜별로 코스를 눈감고도(?) 추천할 수 있었다. 껌이었다. 그런데 내가 모르는 곳으로 간다는 것에 대한 긴장감, 철저하게 대비를 해야 낭패를 면한다는 강박감이 만만치 않은 스트레스가 되었다. 그곳의 평균 물가를 모르니 괜히 덤탱이를 쓰지 않기 위해 여기저기 발품을 팔아야했고, 그곳의 지리를 모르니 거리감각이 없어서 구글지도로 시뮬레이션을 몇번이나 돌려봐야했다. 여행 정보가 자세하게 나와있는 론리플래닛이나 저스트고 시리즈를 보면 보고 싶고 가고 싶은 곳은 많기만 한데 한정된 시간에 구겨넣으려니 그 조율 과정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았다. 또 나혼자 가는 여행이 아니라 일행이 있고, 그 일행과 가고 싶은 곳이 조금 다르다면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아무리 파트너와 서로 배려해준다고 해도 말이다.




파트너의 여행취향은 꽤 확고한 편이라서 차라리 맞추기 좋았다. 그는 '자연주의' 여행가였다. 산과 바다, 강이 있는 시골을 좋아했고, 도시에 머무르더라고 공원이나 가로수길이 가까운 곳에 숙소를 정하면 아주 만족해했다. 그래서 영국하면 '런던'만 생각해고 있던 파트너는 사실 영국여행을 별로 기대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사전조사를 조금만 해보니 '진정한 영국은 시골에서 만날 수 있다'라든지 '도시는 독일, 시골은 영국'라는 말들을 자주 마주칠 수 있었고 하일랜드와 레이크 스트릭트라는 곳을 여행루트에 포함하게 되었다.



한편 나는 영국하면 영문학을 좋아하는 팬으로서 영국문학기행을 해보고 싶었다. 예를 들면 더블린에서 제임스 조이스를 읽고, 런던 시내에서 버지니아 울프를 읽고, 바스에서 제인오스틴 읽기 등등 나중에 여유가 된다면 그런 기획으로 여행코스를 짜도 좋을 것 같았지만, 사실 좀 마이너한 취미라 동행과 공유하기는 어려웠다. 최대한 합점을 찾은 것이 바스 당일치기였지만, 결과적으로 영국 여행은 굳이 '문학기행'이라는 컨셉을 잡지 않아도 어느 곳을 가나 문학이 녹아있는 곳이었다. 자연을 좋아하는 파트너를 위해 간 하일랜드에서 <맥베스>를, 레이크 디스트릭트에서 <피터 래빗>과 워즈워스를 만날 수 있었다.


여행을 준비하는 것은 분명 스트레스였다. 숙소 예약, 기차표 예매, 일정 짜기, 방문지 추려내기 등등 만만치 않은 과정이었다. 그러나 그만큼 실제 여행과정에서 성취감을 느꼈을때. 예를 들면 런던에서 오이스터 카드를 무사히 구매하고 무사히 디포짓까지 환불을 받았을 때의 성취감이란! 어쩌다 날씨가 좋은 날이 있으면 좋은대로, 흐린 날이 있으면 흐린대로 기대 이상의 풍경과 마주했을 때의 감동과 여운. 이래서 다들 여행을 가는 구나, 서비스 제공자로 살 때는 잠시 잊고 지냈던 오랜만에 느껴보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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