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쨋든 우리는 만났고 여행은 시작되었다
J는 한국에서 히드로 공항으로, 나는 영국 북서부의 랑카스터(Lancaster)라는 도시에서 런던 유스턴 기차역으로 가서 만나기로 했다. 런던을 배경으로 한 대표적인 영국영화 <러브 액츄얼리>는 영화의 시작과 끝이 히드로 공항이다.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만나고 헤어지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 로맨틱 코메디를 떠올리며 나도 우리의 9개월 만의 재회가 로맨틱하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한적한 영국 소도시에 살던 나에게 런던은 너무나 큰 도시였다. 사람들은 너무 많았고, 지하철 노선은 너무 복잡했고, 초행이었던 J는 하염없이 기다리고, 하필 비는 오고. 만나기로 한곳은 구글지도에 표시된 패딩턴 지하철역 입구였지만, 정작 나는 완전 반대편 입구로 나와서 둘은 한참만에야 만났다. 일부러 그런건 아니었지만 오래 기다리게해 미안한 마음에 내딴엔 잔뜩 눈치를 보고, 또 J입장에선 기다리며 걱정되고 다소 격양된 마음을 애써 드러내지 않으려 노력하는게 느껴졌다.
런던에는 수많은 기차역이 있었다. <해리포터>에도 나와서 유명해진 킹스 크로스, 서부로 가는 패딩턴, 남부로 가는 워털루, 북서부로 가는 유스턴. 내 경우에는 유스턴으로 도착해서 패딩턴으로 가야했다. 도착 후 엄청나게 복잡한 대도시의 기운에 시골쥐는 완전 기가 죽어버렷다. 그래서 연달아 실수를 저질렀다.
첫번째 실수 - 유스턴 지하철 역과 유스턴 스퀘어 역을 헷갈려 버렸다.
두번째 실수 - 오이스터 카드를 구매해서 충전해서 쓰는 방식이 훨씬 저렴하다는 걸 사전조사로 알고 있었는데, 너무 사람이 많은 유스턴 역에서 조급한 마음에 차근차근히 보지 못하고 그냥 싱글티켓(4.9파운드 ->오이스터 카드로는 2.4파운드 정도면 갈 수 있다)을 구매해버렸다. 차라리 몰랐으면 덜 억울한데 다 알아보고 가서도 그렇게 실수를 하니 더 마음이 착찹했다.
세번째 실수 - 겨우 유스턴 스퀘어 역으로 갔으나 지하철 시스템이 매우 생소했다. 3개의 라인이 한 플랫폼에서 타는 방식이었다. 노란색 Circle 라인이나 분홍색 Hammersmith라인을 타야하는데 그냥 오는 지하철을 탔더니 그게 Metropolitan 라인이었다. 다행히 갈아타는 건 어렵지 않았지만 이미 시간이 많이 지체되어 버린 것이다.
런던에 도착한지 한시간만에 인터넷에 사람들이 올려놓은 여행정보가 얼마나 유용한지 그제서야 실감했다. 자신의 실수담을 기꺼이 공개하며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런 실수를 미연에 방지하게 하는 위대한 한국 네티즌들의 정보공유 정신. 그걸 미리 꼼꼼하게 숙지하고 더 준비하지 못한 내가, 심지어 찾아본 정보도 제대로 활용해먹지 못한 내가 너무나 한탄스러웠다.
그러고보니 9년전 런던에 갔을 땐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이었다. 그냥 여행책자와 호스텔에서 나눠주는 지도 한장으로 용감하게 도시를 누비던 그 "깡"은 어디서 나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