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바스에 도착했을 때 캐서린의 가슴은 기쁨으로 터질 것만 같았다. 여기저기 눈부시게 아름다운 사방을 둘러보느라 정신이 없었고 마차는 곧 여러 거리를 지나 호텔로 그들을 데리고 갔다. 이곳에서 그녀는 행복을 느끼고 싶었다.
아니, 벌써 행복했다. 그들은 곧 풀트니 가(Street)의 괜찮은 숙소에 짐을 풀었다.
- 제인 오스틴, <노생거 사원> 2장에서
바스(Bath)는 내게는 늘 방문해보고 싶은 꿈의 도시였다. 제인오스틴을 고등학교 영어수업시간에 접한 이후로 그녀의 팬이 되었고, 마침 이번학기 '로맨스와 리얼리즘'이라는 영국 19세기 문학을 다루는 수업에서 가장 처음 다룬 작품이 바스를 배경으로 한 제인 오스틴의 <노생거 사원>이기도 했다. 바스는 당대 사교활동의 중심이었던 휴양지였고, 젊은 남녀들이 이곳에 와 결혼상대를 찾았다. 그 시대의 결혼을 글감으로 삼은 대표적인 작가가 제인 오스틴이고, 그녀의 작품 속에는 마치 아직도 그 때 사람들이 살아있는 듯 생생한 목소리로 19세기 영국 젊은이들의 경제관념, 결혼과 연애감정에 대한 생각들을 전달하고 있다.
크지 않은 마을이지만 주말이라 현지인들도 많이 나들이를 온듯 했다. 골프클럽을 들고 기차를 탄 사람, 유모차를 끌고 나온 가족, 두 손을 꼭 잡은 노부부 등등 많은 사람들로 북젹였다. 맨처음 들른 곳은 제인오스틴 박물관이었다. 박물관 내 티룸에서 애프터눈티 셋트로 점심을 해결할 생각이었다. 기차역에서 내려 가는 길에 영화 <레 미제라블>에서 자베르가 자살할 때 배경으로 나왔다는 풀트니 다리가 있다길래 잠시 들러 사진을 찎었다.
제인 오스틴 박물관은 1층과 2층은 박물관, 티룸은 3층으로 되어있다. 박물관 입장료를 제시하면 티룸에서 할인을 받을 수 있다. 티룸은 6명 이상만 예약이 가능하다 해서 예약을 못하고 갔더니 혹시나 사람이 붐빌까하여 걱정했지만 다행히 자리가 많았다. 우리가 자리를 잡은지 30분쯤 지나자 곧 사람들이 꽉 차기 시작했다. 벽면 한 가운데는 BBC드라마에서 다아시 역으로 분한 젊은 날의 콜린 퍼스가 그려진 액자가 걸려있었다. 삼단 트레이에 나온 애프터눈 티의 메뉴 이름은 'Tea With Mr. Darcy'. 블렌딩 차 이름도 'Jane Austen'이라는 차를 골랐다. 아래층 샌드위치부터 먹기 시작해 가운데 칸의 스콘까지는 매우 감동적인 맛이었다. 특히 스콘이 고소해서 정말 맛있었다. 맨 윗칸까지 먹으려니 이미 위장이 밀가루 포화상태가 되기도 했고 또 당수치가 너무 높아져 몸에서 구조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예배가 끝나자마자 소프 가(Family)와 알렌 가(Family)는 함께 움직였다. 광천수 홀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고, 이맘때의 일요일이면 언제나 그렇듯이 볼 만한 상류 계층들도 별로 없고 해서 그들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분위기를 전환하려고 크레센트로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 제인 오스틴, <노생거 사원> 5장에서
산책 겸 로얄 크레센트에도 들렀다. 초승달 모양 건축물이라 해서 크레센트라는 이름이 붙여진 곳. 제인 오스틴의 소설에서도 볼 수 있듯, 이곳 잔디밭은 사람들과 만나는 만남의 장이 되었던 모양이다. 지금은 고급 호텔로 쓰이고 있다. 제인 오스틴 박물관에서 로열 크레센트로 가는 길에는 '여기가 로열 크레센트인가?'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비슷한 곡선 모양의 건물이 있다. 큰 로터리 가운데 거대한 가로수들이 심겨져 있고, 로터리를 둘러싼 건물 세개가 초승달 모양으로 들어서 있다. 서커스가 불리는 이 건축물 역시 로열 크레센트를 지은 건축가와 그의 아버지가 지은 건물이라고 한다. 지금도 그 건물들 속 집은 니콜라스 케이지 등 배우나 유명인들의 별장으로 쓰인다고.
아침이면 매일 똑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여기저기 상점에 들렀고 아직 둘러보지 못한 곳이 있으며 구경하러 갔다. 게다가 온천장에 있는 광천수 홀로 가서 약 한 시간 동안 물도 마시고 걸어다니기도 했다.
- 제인 오스틴, <노생거 사원> 4장에서
바스는 말그대로 '목욕'이라는 이름에서 왔다. 로마인들이 브리타니아(옛 영국의 이름)를 발견하고 이곳에 현재까지도 영국에서 유일한 온천을 발견하게 되는데, 옛 로마인들은 그 온천을 신성한 힘이 있는 물이라 여겨 멀리서 성지순례오듯 방문했다고 한다. 예전의 천장은 다 무너졌지만 그 터와 온천은 그대로여서 어느정도 복원을 하여 개방하고 있다. <노생거 사원>의 저 대목에서 나오는 '온천장'이 그 온천이고 광천수 홀이라는 곳은 그 온천 옆에 있는 'Pump Room'이라는 이름의 홀을 의미한다. 제인 오스틴 시대 사람들에게 사교의 장이 되었던 곳이다. 지금은 레스토랑으로 이용되고 있다. <프랑켄슈타인>을 쓴 메리 셜리 역시 이 '펌프룸'에서 작품 활동을 하였다고 한다.
전세계에서 이곳 로만바스를 찾는 사람들이 많았다. 옛 로마제국 시절 인기 못지 않았다. 한국어로 된 오디오 가이드도 있어서 설명도 들을 수 있고 관람이 더 즐거웠다. 박물관 내부가 넓진 않지만 로마시대 사람들의 생활 모습과 그들이 온천을 즐기던 모습을 자세하게 설명 들을 수 있고, 지금은 어떻게 복원되어 공개되는지도 상세하고 재밌게 알려주어서 꽤 알찼다. 우리가 기대한 것은 해가 지고 난 후에 횃불을 켠 로만 바스의 모습이었다. 11월이면 벌써 해가 빨리 지기 시작하기 때문에 4시반부터 퇴장 시간인 6시까지 횃불 켠 야경의 로만 바스를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