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고자탈출기 6 - 레이저제모는 아담 탓이야
수능을 마치고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겨울, 엄마가 물어봤다.
"쌍꺼풀 수술 시키주까?"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그때는 졸업 선물로 쌍꺼풀 수술이 막 유행하기 시작할 때였고, 우리 엄마도 유행이라면 빠지지 않는 분이었다. 그런데 나는 쌍꺼풀 수술보다 더 하고 싶은 게 있었다.
"쌍꺼풀 수술 말고 레이저 제모시키도!"
그런데 돌아온 엄마의 대답은 단호했다. "레이저 제모는 무슨, 쌍꺼풀 수술이나 해라! 털은 나중에 나이 들면 저절로 다 빠진다." 고등학교 3년 내내 공부해라 잔소리 한 번 없었던 엄마가 수능 다 친 딸에게 쌍꺼풀 수술하라고 그렇게 잔소리를 하다니... 뭔가 굉장히 이상하게 느껴졌지만 나 역시 한 고집했다. 나는 레이저 제모가 너무 하고 싶었다.
그런데 왜 못했냐고? 레이저 제모를 하려면 한 오백만 원 필요한 줄 알았다. 그래서 '나중에 취업하면 제일 먼저 난 레이저 영구제모할 거야'라는 다짐을 하며 청소년기를 보냈다. 키가 작은 것도, 피부가 까무잡잡한 것도 친구들이 아무리 놀려도 전혀 부끄러운 적 없었는데 털보라는 건 달랐다. 수북한 털을 감추기 위해 면도기로 밀어도 보고 왁싱도 해봤는데 제대로 된 사용법을 몰라 피부만 상처투성이였다.
그러던 어느 날, 대학생이 된 여동생이 겨드랑이 제모를 하고 왔다고 했다. 엥? 레이저 영구 제모 그거 비싼 거 아니었어? 돈이 어딨어서 제모를 했어? 물어보니 전혀 비싸지 않았다. 5회에 10만 원이면 한다고 했다. 오백만 원씩이나 없어도 충분히 할 수 있는 거였다니... 어머니 그럼 왜 진작 시켜주지 않으셨어요 흑흑 원망이 살짝 스쳐 지나갔지만, 그 당시엔 석사 논문이다 유학 준비다 정신이 없었다.
그렇게 바쁘게 살며 유학을 다녀왔고 한국에 돌아와 백수가 된 어느 겨울, 인스타에서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었는데, 내가 분명 팔로우를 한 적은 없지만 "sponsosred"라고 아래에 작게 적힌 광고가 떴다. 제모 광고였다. 종아리+겨드랑이+인중 포함해서 5회에 20만 원대였다. 이쯤 되면 내가 굳게 믿었던 '오백만 원'이라는 가격은 대체 출처가 어디지? 의심이 되는 상황이었다. 시간도 여유롭겠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바로 예약을 했다.
친구에게 말했더니 경험자인 친구는 너~~ 무 아파서 5회 끊어놓고 한번밖에 못 갔다고 했다. 여동생은 생각보다 그렇게 아프지는 않았다고 했다. 각자 아픈 정도는 다 다른 듯 했다. 공통적으로 추려보니 일단 털이 길면 더 아프다고 했다. 최대한 바짝 깎고 갔다. 그리고 드디어 받은 첫 시술은 생각보다 아프지 않았다. 오 꽤 할 만 한데?
그런데 두 번째 시술부터 정말 아팠다. 눈물이 핑 돌았다. 너무 아파서 꼭 악마가 의사에 빙의해서 내 살갗을 갈가리 찢어 놓는 것 같았다. 꼼꼼히 모근에 레이저를 쏘느라 다리를 갈지자로 왔다갔다 할때마다 나는 속으로 "저 악마 새끼 악마 새끼!!! 저건 의사의 탈을 쓴 악마가 분명해!” 염불을 외우며 그 시간을 견뎠다. 얼마나 악을 쓰고 참았으면 손에선 땀이 나고 눈엔 눈물이 고였더. 그렇게 악마 새끼 서른 번쯤 속으로 외치다 보면 "수고하셨습니다" 하는 선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제야 제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 침대에서 저 침대로, 이 겨드랑이 저 종아리로 쳇바퀴 돌 듯 레이저로 모근을 지지는 저 의사에게 내가 악마라고 하다니, 내가 잠시 정신이 나갔었나? 악마는 저 의사 안에 들어있었던 게 아니라 내 안에 들어있었던 건 아닐까?
탈코르셋, 꾸밈 비용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많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는 딸에게 성형을 권하는 사회가 바람직한 사회라고는 개인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평범한 대학생들도 파운데이션은 에스티로더를 쓰는 학생들이 많아 내심 놀란 적이 많다. 경제적 위화감이라기보다는 미용에 이렇게나 많은 돈을 쓴다고? 하는 생각에 든 놀라움이었다. 한 때는 화장이나 치장이 허영과 사치로 삿대질을 받았다. 그런데 또 화장 안 하고 회사 한번 가면 아프냐, 예의가 없냐, 자기 관리 안 하냐며 난리 나는 이곳은 자랑스런 K-뷰티의 산실. 그래서 최근엔 자발적으로 꾸미지 않겠다고 선언한 여성들이 늘어났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탈코르셋이라는 말이 조어되기 전부터 비판의식을 가지던 사람이다. "그럴 돈으로 책을 더 사보고 말지"하며 혼자 도도한 척, 잘난 척을 다 하고 살았다.(정작 그돈으로 책 안 사봄) 그런데 이런 나도 제모만은 포기할 수 없었다. 아담이시여, 왜 선악과를 처잡수셔서 후손들에게 이리도 외모로부터의 수치심을 알게 하셨나이까...
p.s. 지금은 과로와 노화로 인해 천연 후천 쌍꺼풀이 생겼습니다. 돈 굳었습니다, 어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