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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사면 그게 단 줄 알았지

쇼핑고자탈출기 7 - 사는 것만큼 관리도 중요하다

by 헤나따

1. "야들아 지금 ㅇㅇ홈쇼핑 틀어봐라"


다급한 엄마의 전화. 오늘은 또 뭘까? 경량 패딩? 트렌치코트? 속옷 세트? 반신반의하며 틀어본 홈쇼핑에는 보급용 스타일러가 나오고 있었다. 기존 스타일러보다 가격은 1/10, 스팀 앤 드라이 기능에 부피도 많이 차지하지 않고 특히 요즘 같은 세균에 민감한 시기에 필요해 보였다. 마침 여동생도 막 인턴을 시작한 차라 매일 입는 재킷이나 정장 관리로도 좋을 것 같다며 엄마가 하나 선물해주신다고 했다.


저렴한 가격만큼 사용법은 은근 수동이었다. 물을 채워 넣어야 하고, 다 쓴 후에도 사용한 물을 빼줘야 한다. 수급과 배수 시스템이 수동인 셈. 그러나 효과는 만족스러웠다. 가벼운 생활 주름이 펴지고 냄새도 꽤 잘 빠졌다. 무엇보다 내가 좋았던 건 청바지류였는데 매번 세탁할 수 없는 이런 바지나 니트류를 깔끔하게 관리할 수 있어서 좋았다. 특히 망고나 자라 같은 데서 싸게 산다고 산 옷인데 막상 세탁법을 보니 드라이를 맡겨야 하는 까다로운 옷들은 자주 빨 수가 없으니 이런 옷 관리에 꽤 유용하다.



(요 제품을 샀습니다)



2. "물건보다 내가 더 소중해"


엄청 비싼 옷은 없기도 하지만 꽤 큰 맘먹고 산 옷들이 몇 벌 생기고 나니 이건 내가 옷을 입은 건지, 옷이 나를 입은 건지 싶은 순간이 있었다. 큰 맘먹고 괜찮은 트렌치코트를 샀을 때. 졸업 선물로 부모님이 사주신 원피스 등등. 이렇게 옷과 사람이 주객전도가 되는 건 싫은데. 워낙 칠칠맞은 성격이라 턱에 구멍 난 사람처럼 흘리고 먹거나 아무 데나 철퍼덕 잘 앉는다. 그러니 때가 잘 타는 흰 옷은 잘 안 사 입게 되고 물건을 함부로 다루기 일쑤였다. 그러다 보니 큰 맘먹고 산 옷들은 큰 맘먹었을 때나 입게 되고, 평소에 막 입을 한 철 옷만 돌려 입었다. 핑계는 '물건에 지배당하고 싶지 않다!', '물건보다 내가 더 소중하다!' 였으나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그 물건의 굴레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금방 더러워지고 해진 옷들을 버리고 새 옷들을 계절마다 찾아야 했으니 다른 방식으로 물건에 돈과 시간을 낭비하고 있었다.


내가 옷을 함부로 다루고 있다는 걸 인지하기 시작했을 즈음, 나의 빨래 방식이 새롭게 보였다. 나는 그동안 (부끄럽지만) 옷을 사서 택을 자세하게 읽어보고 어떻게 세탁해야 하는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냥 입다가 더러워지면 빨래통에 풍덩 넣고 세탁기로 마구 돌렸다. 어떤 옷은 줄어들기도 했고, 물이 빠지기도 했다. 그럴 때면 으레 "싼 게 비지떡이지 뭐~"하고 넘어가 버렸다. 싼 가격이 문제가 아니라, 내 세탁법이 잘못됐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려 하지 않았다. 그때 내게는 빨래보다 더 중요한 생업과 일생일대의 원대한 목표가 있었고, 거기에서 오는 엄청난 스트레스에 빨래라는 작고 소소한 스트레스까지 더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태했던 것이다. 무지를 방관했던 것이다. (그러나 과거의 나로 돌아가서 왜 그렇게 물건을 함부로 다루고 게을렸냐고 질책하고 싶지는 않다. 그때 내가 고스란히 짊어진 스트레스와 삶의 무게와 그로 인한 내 선택을 존중한다.)



3. 밑 빠진 독에 물 붓지 말자


이제라도 깨달은 것은 잘 사는(buy) 것은 잘 관리하기와 병행되지 않으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수 있다는 것. 조금 귀찮아도 처음 산 옷은 드라이를 하거나 울샴푸로 빨 것, 땀이나 냄새는 최대한 그때그때 건조하여 베지 않게 할 것. 꼭 옷만 그런 것은 아니다. 프라이팬도 처음 사면 세척법이 있었다. 기계도 처음 사면 첫 작동법이 있었다. 그 처음만 잘 지켜도 꽤 더 오래 쓸 수 있는 물건들이 있다. "잘 사는 것 = 오래 쓸 물건을 사는 것 = 덜 사는 것 = 소비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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