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꽃
결국 절에서 나왔다.
걸어 나오는데 강원에서 수학 중인 학인승이 사복을 입고 절문밖으로 걸어 나가는 나를 보더니 따라 나와 내게 물었다.
"어디 가시나요?"
"아직 모르겠습니다"
"왜 나가시는지요?"
"여기 생활을 못 견디겠습니다"
"묵묵히 잘 계시는 지 알았는데. 법문을 배우는 것도 적극적이라고 들었는데요"
"..."
"불법을 배우는 것에 환희심이 안 드시나요?"
"... 앞으로도 제가 있을 곳이 아닌 것 같습니다."
"..... 길을 구하다 보면 또 어디선가 만나겠지요. 아무쪼록 잘 찾으시길 "
나오고 보니 가지고 있던 돈은 거의 없었다. 정말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 체 무작정 터미널로 걸어갔고 근처 기차역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기차역 화장실 거울에는 삭발의 사복을 입은 누구인지 모르는 낯선 이가 열꽃이 핀 것처럼 상기된 얼굴로 세수를 하고 있었다. 티켓 없이 무작정 탄 기차는 서울역 행이었다. 열꽃이 핀 얼굴로 남은 빈 좌석을 앉아 이미 어두워진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승무원이 내 자리의 복도를 여러 번 왔다 갔다 하더니 티켓을 보여달라고 했고 사람이 없는 열차 연결 칸으로 데리고 갔다. 난 승려이고 서울에 올라가서 티켓값을 이체하겠다라고 말을 했다. 그는 내 눈을 한동안 지긋이 바라보더니 다음 정차역에서 내려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운임은 따로 청구하지 않겠다며. 어딘지도 모르는 중간에 내린 역에서 난 갈 곳을 잃었다. 이제 난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무엇을 하기 위해 출가를 했었고 어디로 가기 위해 그 출가한 절을 나왔을까. 아무도 없는 승강장 벤치에 앉아 고개를 숙인 얼굴에 두 손을 묻고 난 대답 없는 질문을 하고 있었다. 기차역에 정차하지 않는 열차가 나를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다.
가족들은 남해를 여행 중이었고 하필 내가 절에서 나온 그날 일부러 남해 보리암에 들려서 나를 위해 절을 올렸다고 했다. 그리고 여수 항일암의 근처 숙소로 가는 도중 나의 전화를 받았고 그 늦은 밤 쉬지 않고 차를 몰아 내가 있는 기차역으로 왔다고 했다. 그 밤 집으로 돌아가는 나를 태운 어두운 차 안은 다들 아무 말이 없이 빠른 속도로 집으로 가는 고속도로를 지나고 있었다.
내가 편지를 남기고 절로 떠난 이후 가족들은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충격을 받았던 듯했다. 아버지는 20년간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셨고 어머니는 가는 절마다 스님을 붙잡고 내 이야기를 물었다고 했다. 형제들은 마치 자기들이 나를 살피지 못해 일어난 일인 양 자책을 하며 잠을 못 이뤘다고 후에 형수들에게 들었다.
집안은 돌아온 나를 반겼지만 한편으로 또 무슨 일을 벌일까 싶어 불안한 분위기였다. 내 방은 청소가 된 채 그대로였다.
떠나고 내가 없는 가족은 시간이 지나 조금씩 안정을 찾고 있었는데 다시 내가 나타나니 안정은 쉽게 흔들렸다. 형제들과 선술집에서 그간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나도 그간의 사정을 이야기했다. 삭발한 머리를 감추고자 모자를 썼으나 형제들은 그냥 편하게 모자를 벗고 당당히 다니라고 이야기를 했다. 심지어 민머리를 한 체 예비군 훈련도 가야 했다. 그간 예비군 통지는 계속 집으로 오고 있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집에서도 난감하였다고 했다. 예비군에 가서 민머리를 하고 있으니 예비군 중대장이 살짝 내게 다가와서 혹시 무슨 사연이 있는지 물어봤고 난 승려라고 대답했다. 그러고는 쉬는 시간에 담배를 폈다. 이제는 나도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다.
여전히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절인가 싶었다. 내게 불교의 철학적 사유의 깊이를 조금이라도 알 수 있게 해 준 선우도량 책을 펴냈던 실상사로 다시 갈까 아님 강원도 상원사로 갈까 싶었다. 하지만 쉽게 다시 떠나지 못했다. 하릴없이 저녁이면 내 방에서 캔맥주를 먹으며 담배를 피웠다. 서쪽 방향으로 창이 나있는 내 방에서 저녁노을이 물들어 갈 즈음 맥주와 함께 오도카니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으며 빨갛게 물드는 적멸을 보고 있었다. 담배 연기는 무심히 나를 스쳐 창밖으로 빠져나갔다.
출가 전에는 그래도 승려라는 길이 있었었다. 여법하고 견결한 수행자로서 살겠다는 다짐도 있었다. 절에 가서는 이러려고 내가 여기에 왔나로 시작해서 이럴 거면 내 왜 여기에 있어야 하나 라는 생각으로 나왔지만 이렇기에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고 어디로 가야 할지는 전보다 더 막막했다. 그럼에도 이전과 다른 점은 더 이상 나 스스로에게 자책을 하지 않게 된 것 같다. 이전에는 내가 한 선택에 대해 몸서리치게 후회하고 되돌리고 싶어 했지만 자책을 한다고 해서 있었던 일이 되돌아가는 것도 아닌 이상 자기를 망가뜨려서 후회를 하는 바보 같은 일은 더 이상 자연스레 하지 않게 되었다. 제일의 화살은 언제든 맞을 수 있지만 하나의 화살을 맞았다고 연속적으로 제 이의 화살이나 제 삼의 화살을 일부러 맞을 필요가 없음에도 두 번째 나 세 번째의 화살은 자기 스스로 자신에게 쏘고 있는 어리섞은 일을 하곤 했던 것이다.
내가 시험에 떨어진 것은 첫 번째의 화살을 맞은 것이고 다시 시험에 도전하거나 아님 시험을 포기하고 다른 일을 찾는 것을 통해 맞은 화살을 뽑고 상처를 치료하는 일인 것이다. 시험에 떨어졌다고 술을 마시고 주사를 부리며 심지어 주위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며 자신을 망가뜨리는 일은 자기 스스로 두 번째, 세 번째의 화살을 자신에게 쏘아 됐던 것과 다름이 없었으나 그나마 출가를 통해, 수천수만 배의 참회의 절을 통해, 그리고 불교의 법을 통해 그것이 얼마나 어리섞은 일인지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어쩌면 아니 사실은 여자친구와 헤어진 일도, 시험에 떨어진 경험도, 심지어 출가 역시 인생에 있어 많은 여러 일들 중 하나일 뿐 그 일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여 좋고 나쁨은 분별하게 되면 스스로 좋고 나쁨의 구덩이에 빠져 허덕이고 시달리게 되게 된다는 사실도 조금은 알 수 있게 되었다.
괴로워서 출가를 했었고 행복하려고 출가한 절에서 나왔다. 내가 느끼는 행복과 괴로움은 어디에서 오는가, 행복 와 괴로움의 차이는 무엇이고 그 행복과 괴로움은 실체가 있는 것 인가라는 건 앞으로도 계속 화두처럼 참구하겠지만 적어도 앞으로는 첫 번째 화살을 맞았을지라도 스스로 두 번째, 세 번째 화살을 일부러 맞지는 않으려고 끊임없이 지금 현재의 실체와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려고 했다.
절에 있는 동안 가족들이 일단 학교 휴학계를 내줬으니 당장은 학교에 다시 갈 수는 없었다. 가족들의 안심을 위해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해 시험을 다시 도전해 본다고 이야기를 할까 고민했지만 내가 앞으로 길게는 3~4년을 더 오로지 시험에만 전념을 할 의지는 쉽게 생기질 않았다. 다시 가족 품으로 돌아온 것만으로도 가족은 안심을 하였지만 내가 앞으로 다시 무엇을 어떻게 할지 여전히 불안해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집에 돌아오고 나서 그녀가 생각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내가 없는 동안 몇 번 그냥 끊기는 전화가 왔었다는 말에 자연스레 그녀가 떠올랐지만 이전과 달리 담담했다. 출가하기 전 정말 다행히 내가 절에 들어간다는 이야기는 그녀에게 전달하지 않았었다. 전달할 기회도 없었지만. 절에서 기도 했던 것처럼 그녀의 행복을 빌어주는 마음만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연민, 후회, 미련, 미안함, 그리움 등등의 여러 감정들이 끊임없이 떠올라와 나를 괴롭히던 이전과 달리 그런 감정들의 마음조차 올라오면 그냥 그저 담담하게 그런 내 모습을 바라볼 수 있었다.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었다. 한밤중에 옥상에 올라가 앉아 밤하늘을 보곤 했다. 지금 내 앞에서 반짝이는 저 별빛은 이미 수억광년 전의 과거의 빛나던 빛이 내게 현재 보이는 것이라면 지금의 내가 별에게 안녕이라며 손짓을 한 인사는 저 별에게 수억광년 후에 다다를 것이다. 옥상에서 난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함께 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시간의 화살은 단방향의 흐름으로 흘러가겠지만 인과의 화살은 과거와 미래가 모두 현재에 존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저 별이 지금 빛나는 것은 과거에 빛을 발한 것이 지금 현재 내게 보이는 것이고 미래에 그 별에 다다를 내가 안녕이라며 손을 흔드는 것 역시 둘 다 마찬가지로 지금 현재이다. 오로지 현재가 있기에 과거와 미래가 존재했다. 원인은 결과에 선행하고 있고 결과는 지금 현재의 원인에 후행한다. 현재는 원인도 결과도 모두 포괄하고 있다. 그렇기에 과거에 집착할 필요도 없었고 미래에 대해 걱정할 이유도 없게 된다. 현재가 과거와 미래를 결정하고 있기에 오로지 현재 만을 살면 되는 것이고 현재는 언제나 과거와 미래를 함께 하고 있었다.
좋아하는 불교 단어 중에 인드라망이란 게 있다. 인드라는 불교를 지키는 신중 하나인 제석천을 말하는 것이고 그의 궁전에는 투명한 구슬 그물이 있다고 하며 그물의 그물코 에는 투명 구슬이 있어 그 구슬은 서로가 서로를 투영하여 하나가 어두워 지면 모든 투명 구슬이 어두워지고 하나가 밝으면 모두가 환해지어 사유의 구슬은 물질의 구슬에 전이되고 유명의 구슬은 무명의 구슬에 옮겨 가는 그물망을 인드라망이라고 한다. 온 우주가 이 인드라망처럼 연결되어 있어 하나의 구슬이 무수히 많은 구슬과 다르지 않고 무수히 많은 구슬은 하나의 구슬과 동일하여 서로를 원만하게 통하고 있고 서로를 서로가 켜켜이 비추어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는 연기의 세계가 지금 내가 사는 세상의 본질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짧은 다짐으로는 나 하나 밝아서 온 존재에 투영되고 그런 원인으로 온 세계가 밝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함께 할 수 있으며 좀 더 생각을 확장하면 밝고 어두움에는 무차함이 있고 세상은 오로지 연기법에 의해 인(因)과 연(緣)의 작용으로 작동하고 있기에 원인을 알면 결과를 피하지 않게 되고 결과는 원인의 상호 관계이기에 원인과 결과는 마찬가지로 모두 과거나 미래에 있지 않고 오로지 현재에 있음을 다시금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었다. 이것이 있기에 저것이 있고 저것이 일어나기 때문에 이것이 일어난다 라는 세상의 법계는 그 안에 어떠한 주체도 없고 오로지 서로의 존재를 관계하고 있으며 바람에 흔들리는 거나 고요하게 잠잠한 것이거나 거기에는 오로지 서로 상호작용의 관계하고 있는 법칙만이 있다는 것을. 그러한 생각은 막막한 현실에 대한 인식을 달리 보게 만들었다. 그러니 담담히 지금을 살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가족과 집에서 저녁을 먹으며 반주를 하는 자리에서 형이 내게 이렇게 시간을 흘려보내지 말고 100만 원을 줄 테니 짧게라도 해외여행을 다녀보는 건 어떠냐고 제안을 했다. 그간 공부 하느라 다른 대학생들처럼 여행을 해보지도 못했으니 이참에 편하게 다른 세계를 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좋을 것이라며.
100만 원은 적지도 않았지만 해외여행을 하기에는 넉넉한 돈도 아니었다. 해외 여행지를 찾다 보니 대부분 신혼여행지의 정보들만이 나왔고 유럽 배낭여행은 턱없이 예산이 모잘랐다. 그러다 우연히 인도 여행을 다녀온 후기를 보게 되었고 왕복 티켓값이 직항이 아닌 경유 하는 비행기를 이용하면 대략 30만 원가량인 데다가 물가는 한국에 비해 많이 낮으므로 한 달 넘게는 배낭여행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가족에게 인도 배낭여행을 다녀오는 것으로 정했다고 알리니 하필이면 인도라는 반응이었지만 그것이 나다운 선택지라는 것도 금세 인정했다.
항공권을 예매하고 배낭과 침낭 그리고 복대를 사서 배낭여행준비를 했다.
난 인도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