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이살메르에서의 일몰

신촌

by 코지

하은의 이야기


그와는 주로 고궁을 많이 갔다. 강남에서만 자랐던 하은은 강북의 학교도 처음이었는데 경복궁이나 덕수궁 그리고 특히 창덕궁과 비원을 그와 같이 손을 잡고 다니는 경험은 생경하거니와 참 특별하게 느껴졌었다. 사람 많은 곳을 좋아하지 않는 그의 취향 하고도 잘 어울렸고 하은 역시 비원의 절경을 좋아했다. 그는 창경궁 근처의 과학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동안 여자친구가 생기면 꼭 같이 고궁을 가고 싶었다고 이야기를 해줬다. 비 오던 어느 날 정말 아무 사람도 없던 창경궁에 그와 궁궐의 한 건물 마루에 앉아 처마 밑으로 떨어지는 낙수물을 보았다. 그는 어렸을 때 이런 비슷한 집에서 살았었다고 했고 비 올 때 낙숫물이 떨어지는 소리를 좋아한다고 했다. 우리는 아무도 없는 그 궁궐에서 처마밑으로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입을 맞췄다.

종종 그는 하은에게 편지를 보냈다. 글씨는 참 못났지만 그의 글은 그의 말보다 힘이 있었고 섬세했으며 그의 마음이 잘 전달되었다. 여전히 그는 만날 때마다 나를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어느 하루 종일 서울을 걸었던 날 그도 좀 피곤해 보였기에 오늘은 데려다주지 말고 중간에서 헤어지자고 이야기했다. 그는 무표정으로 나를 보다가 그냥 같이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지하철에 나란히 앉아 하은의 집으로 가며 그는 혼자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고 있었다. 말도 하지 않고 손만 잡은 채 혼자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는 그가 살짝 서운하며 이럴 거면 그냥 중간에서 헤어지지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한쪽 이어폰을 내 귀에 끼면서 이게 내 맘이야 라고 속삭였다. 더 클래식의 노래였다.

"나하나 없다 해도 변할 것 하나 없는 그런 세상이지만
너를 위한 나의 사랑 모든 세상을 바꿀 수 있어
나의 진실을 넌 알게 될 거야 언제나 어디서나 널 지킬 수 없는 지친 나를 용서해
너를 위한 나의 사랑 모든 세상을 바꿀 수 있어 너에겐 사랑이 필요해"

중간부터 들리던 노래의 가사는 정말 그의 마음 같았다. 옥수역을 지나며 한강 노을이 지하철 안으로 스며들었다. 하은은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주로 신촌에서 저녁과 술을 같이 먹었다. 그가 수업을 마치고 신촌까지 오면 조금 늦은 시간이었지만 오히려 신촌의 밤이 좋았다. 여전히 우리는 신촌 드럼통집의 목살에 소주를 마시기를 좋아했고 또 신촌 한 구석에 있는 이층 양옥집을 개조한 담쟁이넝쿨로 뒤 덮인 근사한 곳이었던 바람산이라는 선술집에서 생맥주를 마시기를 좋아했다. 바람산은 참 하은에게도 각별했다. 이곳에서 우리는 그의 집안 이야기와 하은의 아버지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용돈이 그리 넉넉하지 않아 보였음에도 하은 앞에서는 그의 집 가난을 들키지 않으려 노력했고 자기의 학교를 불안해했으며 자기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었음에도 항상 그는 애써 내 앞에서 자신 있어 보이려 했다. 그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다. 그의 불안한 젊음에 하은이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승환 콘서트도 같이 갔었다. 하은은 이전에 콘서트장을 가본 적이 없었는데 그가 얘매하여 같이 가게 되었다. 그가 내게 처음 준 선물도 이승환 라이브 CD였고 CD 플레이어가 없던 하은은 일부러 플레이어를 구입하여 한동안 내내 듣기도 하였기에 콘서트장에서 이승환이 부르는 노래는 다 익숙하였다. 그는 하은과 함께 그가 좋아하는 가수의 공연을 같이 본다는 것을 무척이나 기뻐했고 그 기뻐하는 모습에 하은 역시 자기의 존재가 그에게 기쁨이 된다는 느낌이 참 너무 좋았다.

종강을 하고 여름 방학이 되자 그와 같이 에버랜드에서 주말 아르바이트를 했다. 에버랜드는 아르바이트도 시험을 보았고 집체 예절 교육도 했다. 그가 교육 중 베스트 스마일을 상을 받아 창피해했지만 그의 웃음은 나만 느끼는 게 아니구나 생각했다. 관리 담당자가 아르바이트 근무 기록도 나중에 삼성에 입사할 때 참조되니 열심히 하라고 하은을 보며 따로 이야기했고 그 모습을 그는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에버랜드에서 하은은 독수리 요새를 담당했고 그는 꼬마 기차의 건널목 안전을 맡았다. 독수리요새는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시운전으로 매번 하은을 타게 해 줬고 그도 꼬마기차를 타고 다녔는데 서로 바꾸자고 하며 깔깔거렸다. 에버랜드는 가족과 같은 분위기였고 개그맨 이상으로 재미있는 분들이 많이 있었다. 직원들이 즐거워야 오는 손님들도 즐거워진다는 생각으로 서로를 아끼고 위해주려고 하는 분위기였다. 심지어 하은과 그가 퇴근 시 손을 잡고 통근버스로 가는 길에 어느 관리자 분이 오셔서 가족끼리 이러는 거 아니라며 웃으면서 민망하지 않게 손사이를 때 놓기도 했었다. 에버랜드에서 아르바이트로 받는 돈이 많지는 않았지만 그와 같이 함께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 든든하고 내 힘으로 돈을 벌었다는 사실도 뿌듯했다.

첫 아르바이트 월급으로 피자를 주문해서 엄마와 언니등과 같이 먹었다. 엄마는 하은에게 과외를 하지 왜 힘든 아르바이트를 굳이 하냐 그리고 슬슬 공부를 시작해야 하지 않냐고 이야기를 했다. 언니가 하은이에게 남자친구가 생겼다고 고자질했다. 언니는 그와 동갑이었다. 엄마는 그가 어디 사는지 어느 학교를 다니는지 물었고 오래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지방대를 나온 언니도 옆에서 하은의 학교 애들과 비슷하게 만나고 다니라며 한소리를 보태어서 기어코 언니와 싸우게 만들었다. 교회는 그와의 만남에 조금 뜸해졌고 남진 역시 그와의 만남 이후 연락이 드물었다. 학과 애들은 남진을 언제 학교 정문에서 다시 볼 수 있냐고 물었었다. 하은은 학과 친구들에게는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었다.

여름이 지나자 그는 자격증 시험을 준비할 거라고 했다. 학교 고시원에 들어갈 계획이라며. 그가 나와 달리 목표가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으며 부러웠고 앞으로 자주 만나지는 못할것라고 이야기한 것에 서운했지만 나도 그 처럼 미래를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마음이 올라온 건 처음이었던 것 같다. 학과 친구들은 이미 행시며 대기업이나 공기업이든 다들 준비 중에 있었다.

그가 고시원에 들어가니 그전처럼 긴 시간을 자주 보기는 어려웠지만 통화는 그래도 매일같이 하여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그가 들려주는 같은 고시원 사람들의 이야기는 재밌었다. 그가 통화하는 곳은 학교 고시원 옆 공중전화였기에 점차 날이 추워지니 오래 통화하기가 미안했다. 그는 주말이 되면 학원을 갔었고 주중에는 학교 고시원에서 생활하였기에 보는 빈도가 점점 적어졌고 그럴수록 짬을 내어 만날 때마다 그가 더욱 애틋했다. 가끔 하은이 그의 학교를 찾아가려고 했지만 그럴 때마다 그는 그러지 말라고 반대를 했었다. 하은도 알고 있었다. 그가 왜 쉽지 않은 시험에 도전했는지를. 하은도 그가 합격하여 그가 행복할 수 있기를 교회에서 기도하였다.

겨울이 되고 하은과 그는 정독 도서관에서 같이 공부를 하였다. 하은은 그의 공부처럼 오랫동안 붙잡고 할 거리가 없었는데 마침 정독 도서관 구내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모집을 하여 지원을 했고 그래서 점심에는 구내식당에서 일을 했다. 뽑은 사람도, 같이 일하던 음식을 만들던 여사님들도 좋은 학교 다니는 여대생이 왜 여기서 일을 하는지 궁금해했으며 또 기특해했다. 여사님들이 자기를 기특해하는 건 좋았지만 일은 힘들고 덥고 냄새나고 손도 거칠어졌다. 학기 중에 같이 못했던 그와 그래도 함께 한 공간에 있다는 것이 그리고 내가 어려운 일을 할 수 있음과 또 매일 같이 함께 있는 것이 좋았지만 하은은 왜 스스로 자기가 해본 적 한번 없는 식당에서까지 일을 하고 있을까라는 후회도 종종 하고 있었다. 그는 시험공부의 스트레스에 조금 시달리고 있었다. 예민했던 성격에 더욱 얼굴을 찌푸리는 일도 많았는데 그럴 때는 같이 안국역 헌혈집에 가서 피를 뽑곤 했다. 그가 원해서 같이 가곤 했는데 주로 그 혼자만 헌혈을 했고 하고 나면 그나마 자기의 존재 이유가 나아지는 것 같다고 했고 그래서 어느 정도 스트레스도 풀어진다고 했다. 참 여전히 이상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내가 식당에서 일을 하고 있으면서 까지 같이 있었음에도 그에게 보탬이 되지 않았음이, 이유를 그 조차도 알 수 없는 헌혈을 해서 그의 스트레스가 풀린다고 하니 내색을 할 수 없었지만 상처가 되었다.

주말에는 정독도서관에서 저녁 전에 같이 나와 인사동을 갔다. 인사동은 서울에서도 가장 독특했었고 그와 그 거리를 같이 거닐다 파전에 막걸리를 마시곤 했다. 눈이 내리던 어느 겨울 인사동에서 그는 자기의 불안한 미래를 애써 지우며 우리의 일주년을 축하했다. 하은은 그와 함께 있다면 평생 누룽지를 먹고살아도 좋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웃으며 누룽지를 먹으려면 일단 쌀이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미래는 안개처럼 불투명했지만 나의 현재는 그와 함께 있음으로 선명했다. 오랜만에 그가 집까지 바래다주었다. 나는 현재를 살고 있었지만 그는 미래를 위해 다시 있지 않을 현재를 흘려보내고 있었다. 그가 안쓰러웠으며 동시에 원망스러웠다. 나오기 전 눈 내린 정독 도서관은 아무 말이 없었다.

개강이 되고 우리는 다시 자주 만나기는 어려웠다. 매일 같이 전화하던 그도 이제는 조금 뜸을 두고 전화를 하였고 막상 전화를 해도 우리는 서로 같이 공유하며 이야기할 거리가 그리 많지 않았다. 서로 공유할 것이 없을수록 하은 역시 그에게 여유를 두려고 했지만 그 여유를 그도 느낄수록 그는 더 애달파했다. 하지만 애달프게 생각하고 있음에도 그는 하은에게 해줄 것이 별로 없었다. 그가 하은을 애달프게 생각하고 있는 것을 하은도 느끼고 있었고 하은은 그럼에도 자신은 달라진 게 없다고 생각했다. 그저 온전히 기다리면 그는 다시 제자리를 찾아 다시 우리가 예전 그 충만했던 그때로 다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하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러면 자신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음을 그도 그제야 알아차릴 것이라고 하은은 기대했다.

그해 여름 그와 걷던 강남 뱅뱅사거리에서 그는 계속 짜증을 냈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짜증을 냈고 더운 날씨에 짜증을 토했다. 하은에게는 직접 짜증을 부리지는 않았지만 감정은 쉽게 전이되니 그 짜증스러운 마음은 하은에게도 같이 일어났다. 그는 배가 아프다고 했다. 같이 병원을 가니 의사는 스트레스에 의한 급성 위염이라고 했다.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던 아버지가 생각났다.

다시 겨울이 오고 우린 크리스마스이브날 그의 친구 커플과 같이 만나기로 했다. 경기도 부천 어디였는데 그 친구 커플은 이전에도 두어 번 같이 봤던 커플이었다. 조용히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싶었던 하은은 내키지는 않았지만 오랜만에 그가 친구 커플을 만나는 자리이기에 내색을 하지 않고 참석하였다. 그의 친구는 술은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아 하였고 하은 역시 어서 자리를 마무리하고 싶었으나 친구 여자분은 술기운에 계속 흥을 즐기고 싶어 했고 그도 평소 답지 않게 계속 더 술을 마시자 하며 자리를 이어나가려 했다. 하은과 그의 친구의 기분이 이미 긁혔음에도 눈치를 채지 못한 채 그와 그 여자분은 이차를 거쳐 삼차를 가자고 하였고 그의 친구가 정색을 해서야 마무리가 되었다.

같이 갈 기분이 아니었음에도 하은의 집에 데려다주겠다 하며 비틀거리는 그와 같이 추운 거리에서 잡히지 않는 택시를 기다리던 하은은 이게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다.
크리스마스이브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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