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칸고원
뭄바이를 떠나기 전부터 물갈이가 시작되었다. 기차표는 매진이 되었고 뭄바이를 어서 벗어나고픈 생각에 아우랑가바드 가는 버스를 예매했는데 10시간가량의 버스 이동시간이 걱정되었다. 저녁 8시 너머 출발하는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는 주구장창 인도 음악이 시끄럽게 흘러나왔다. 버스는 중간에 잠시 간이 휴게소 같은 곳에 잠시 정차했다. 사람들이 내려 어두운 곳으로 사라졌다가 다시 돌아왔다. 화장실을 가기보다 어두운 곳에서 알아서 해결하는 방식이었다. 버스 타기 시작하자마자 내내 배를 움켜쥐고는 전전 긍긍했었다. 배설의 욕구는 백팔번뇌를 압도한다. 번뇌는 배부르고 등따신 자들의 몫인가 싶게 배설의 욕구는 모든 걱정, 근심, 고민, 망상을 태풍이 몰아친 것처럼 한꺼번에 다 사라지게 하고 오로지 언제 난 화장실을 갈 수 있나 내 배설의 문제를 풀 수 있나 하는 삼매에 빠져 들게 한다. 어두운 곳으로 사라진 자들이 하나둘씩 버스로 다시 모여든다. 배설의 욕망이 해결되니 허기가 몰려온다. 손을 씻고 짜이와 바나나를 사들고 버스에 다시 올라타서 먹었다. 그러고 나니 그나마 잠에 들 수 있었다. 사나운 꿈도 꾼 거 같았다. 시끄러운 인도 음악소리는 계속 흘러나왔다. 사물을 가늠할 수 있는 시간이 되니 자연스레 눈이 떠졌다. 창밖에는 황토 색 땅이 새벽노을에 더욱 붉게 빛나고 있었고 그 굵은 땅에 확연히 대비되는 초록색 나무와 풀이 조화롭게 어울리고 있었다. 황량하다고 들었던 데칸고원이었는데 우기여서 그랬는지 초록의 색감이 생명력을 느끼게 해 주었다. 그러고 보니 인도에 오고 나서 처음 허기를 느꼈던 것 같다. 바나나는 싸고 맛있었고 짜이는 분명 마음을 차분히 진정시키는 무언가가 있는 듯했다.
아우랑가바드는 뭄바이와 달리 그나마 내가 인도를 상상했던 시골 같았다. 가이드북에 있던 게스트하우스를 정해 짐을 풀은 후 근처 식당으로 가 후라이드 라이스를 먹었다. 먹다가 이물질이 나와 주인을 불러 이야기했더니 그 이물질을 손으로 집어내서 버리더니 해결되었다며 다시 먹으라고 한다. 문제를 해결해 줬으니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상을 뒤집고 화를 냈겠지만 여기서는 그러려니 한다. 릭샤를 타고 엘로라로 갔다. 석굴의 규모는 대단했다. 불교, 자이나교, 힌두교 등이 한 지역에서 각각의 석굴을 차지하고 있었다. 동세기에 지어진 거라면 더 대단했겠지만. 세기가 다르게 불교에서 자이나교 그러다 힌두교로 세월에 걸쳐 지어진 것 같았고 세 종교가 조화롭게 공존한 것은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무엇보다 이 시기에 이것을 파고 지었던 이들이 노동자가 아닌 수행자들이 한 게 맞다면 무엇 때문에 수세기에 걸쳐서 이것을 만들었을까 싶었다. 아잔타라는 또 다른 곳의 석굴에서도 비슷한 생각이었다. 이들은 이것을 파고 짓고 그림을 그렸던 것들이 견결한 수행자의 삶이라고 생각했기에, 그리고 후대에 자기가 믿는 종교의 위대함을 남기기 위해 자기가 소비되는 삶을 기꺼이 할 수 있었을까 싶었다. 만약 나라면 예전과 같이 또 도망을 갔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대학교 들어간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전노 체포결사대로 신촌 굴다리에서 시위하다 머리 위로 터지는 최루탄과 달려오는 백골단이 무서워 넘어진 여학우를 밟으면서까지 해서 도망갔던 것처럼. 후배에게 통일 선봉대를 다녀와야 진정한 투사가 된다며 떠벌리고는 정작 그 후배가 그 연대사태에서 잡혀가 집행유예 실형을 받고 풀려 나오고 그리고는 후에 같이 먹던 술자리에서 그 후배가 눈물을 흘리며 연대에 갇혀 있었을 때 구호를 외치던 그를 뒤로 하고 도망갔던 것처럼. 아니 대단한 뜻을 품은 것도 아닌 그저 나 혼자 잘살고 잘 먹기 위해 준비한 시험에 떨어지고 거기에 사귀던 여자친구와 헤어지니 깨달음이란 미명하에 절집으로 피신했다가 그마저도 못 견디고 도망쳐서 지금 인도에 있는 것처럼. 인도로 까지 도망 왔으니 이제 난 여기서 어디로 갈 것 인가. 어디로 갈 수 있을 것 인가. 아니 내가 갈 수 있는 곳이 있기는 한가 싶었다. 숙소 근처로 돌아와 식당에서 차오멘과 맥주를 먹었다.
깨보니 다음날 오전이었고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가져간 침낭은 배낭에서 채 꺼내지도 않은 채 있었고 어제 옷 입은 채로 침대에서 그대로 깨어났다. 어제 맥주를 마신 것만 기억나고 어떻게 식당에 나왔는지 어떻게 숙소에 돌아왔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다행히 복대는 차고 있는 상태 그대로였고 복대 안의 여권과 비행기표도 그대로 다 있었다. 없어진 건 외출 시 들고 다니던 조그만 가방 안의 카메라였다. 맥주가 생각보다 도수가 높구나 하며 두병째 시킨 것은 기억이 나는데 이후 이렇게까지 기억이 안나는 건 아무래도 이상했다. 게스트하우스 주인에게 내게 어떻게 들어왔는지 봤는지 물어보니 자기는 못 봤단다. 어제 갔었던 식당에 다시 가니 마치 오랜 친구 만난 듯 반갑게 나를 맞이한다. 솔직히 내가 기억이 안 난다라고 이야기하니 다 먹고 계산해서 게스트하우스에 잘 갔다고 그 동그란 맑은 눈으로 인도인 특유의 고개를 흔들거리며 내게 이야기했다. 카메라가 없어졌다는 이야기는 차마 꺼내지도 못했다. 그간 나만 나 스스로를 못 믿었는데 이제는 남도 못 믿게 되었다. 인도에 오니 더더욱 세상엔 못 믿는 사람들만 있었다. 못 믿을 사람만 있는 세상에 나만 오도카니 있었다. 그리고 기억조차 나를 소외시키기 시작했다.
밤에 정전이 되었다. 관광 시즌이 아니라 그렇게 사람들이 많지 않은 시기였고 동네도 한산한 시골스러운 곳이었다. 담배도 필 겸 숙소에 나왔다. 오래된 아스팔트 거리에는 지나가던 차도 사람도 없었다. 아스팔트에 발라당 누워 담배를 폈다. 가로수 위에는 별들이 가득했다. 정전이니 더욱 많이 별들이 가득했다. 이러다 잠이 들고 그러다 내가 깨어나지 못한 채로 아니 애초에 내가 없던 채로 마무리가 되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나가던 들개가 나를 못 봤다가 본 듯 갑자기 컹 거리며 놀래했고 그 소리에 나 역시 놀라 일어나 그 놀란 개를 뒤로 한채 숙소에 들어갔다. 그러고 보니 인도에 와서 매일같이 늘어져 있던 소와 그 옆에 더 축 늘어져 있던 개만 보다가 처음으로 짖는 소리를 내는 개를 본 것 같다. 맨날 축 늘어져 있는 여기 개도 나를 보니 짖는구나 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목적 없는 인도 여행이었다. 리턴 티켓은 발권했지만 정작 내가 한국에 돌아갈 수 있을지 긴가 민가 했다. 일단 온 이상 남들이 가는 코스 그대로 가보자 싶었다. 인도 여행이 한참 붐이라 어딜 가나 한국사람은 쉽게 만날 수 있었다. 게다가 내 코스는 대걔 누구나 보는 가이드 북의 코스인지라 가는 교통편이며 가는 숙소며 가는 식당 까지도 겨의 전 세계 여행자들이 비슷한 것 같았다. 그럼에도 되도록 한국사람과 엮일 수 있는 일은 꺼리고 있던 상태였다. 정말 그럼에도 인도에서의 기차 여행은 특히 그 안에서는 벌어지는 일들은 정말 매번 주사위를 던지는 거 같았다. 주사위를 던질 때마다 어떤 숫자가 나올지 예측할 수 없는 것처럼 인도 기차여행은 소문처럼 정말 삶에서 경험할 수 있는 기분의 끝에서 끝까지의 느낌을 한 번에 압축하여 제공하는 것 같았다.
아우랑가바드를 지나 흔히들 가는 카주라호라는 곳으로 가는 기차였다. 세컨드 슬리퍼라는 칸을 타고 가져간 배낭을 줄 자물쇠로 단단히 동여 메고 구매한 티켓 좌석 번호를 찾아 이층 칸의 자리에 올라 나름 나대로의 휴식을 취하려고 하는데 멀지 않은 곳에서 앙칼진 젊은 여자 목소리가 귀에 정을 때리는 듯 한국말이 똑똑히 박혔다.
" 어후 씨발 여기 우리 자리라고 "
이층 침대칸에 누워 잘락 말락 하다 정말 오래간만에 똑똑히 꽂히는, 게다가 한국말의 짜증 가득한 뉘앙스에 나도 모르게 정신이 퍼뜩 들어 그 상황을 보러 가게 되었다. 앳돼 보이는 젊은 두 여자가 배낭도 채 못 내려놓지도 못한 채 앞의 좌석을 차지하고 있는 인도인과 싸우고 있는 모습이었다. 둘은 이미 한참을 실랑이 하다 한 여자가 소리를 지른 거였고 출발한 기차 내에는 그 소리가 다 울려 퍼져 나가 나뿐이 아니라 기차의 모든 이들이 이 모습을 보러 몰려든 상태였다.
살면서 어떤 일에 내가 먼저 나섰던 일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언제나 멀지 감치 뒤에서 상황을 파악하고 흘러가는 상태를 예측하곤 했지 되도록이면 앞에서 나서는 걸 정말 싫어하는 성격이었음에도 그날은 나도 모르게 자연스레 그 두 여자와 상관없이 나서게 되었다. 모자도 없이 삭발한 민머리로 말이다.
나설 생각이 없던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어들고서는 실랑이를 하던 인도인에게 " 니 티켓 보여 줘 봐"라고 했다. 군말 없이 내게 티켓을 보여 줬고 살펴보았으나 그들의 티켓에서는 달리 이상한 것이 없어 보였다. 이어 그 둘의 여자에게도 티켓을 보여 달라고 했는데 안타깝게도 날짜가 다른 티켓이었다. 목적지도 나와 같은 그리고 앞으로도 15시간은 넘게 가야 하는 목적지였다. 나중에 들어 보니 시차가 다르니 벌어진 예매의 실수였던 것이다.
악다구니를 하다 지친 두 여자에게 차분히 설명을 했다. 날짜가 다른 기차를 탔다고. 어떻게든 싸우려고 하던 그녀 들의 눈빛은 한순간에 당황과 앞으로의 불안함이 뒤섞인 채로 현실을 인식하고 있었다. 그 두 여자에게 악다구니를 들었던 인도인에게 이야기 헸다. 이 둘은 인도를 여행하는 '여자'라고. 이 '여자' 둘에게 여기 복도에 앉힐 거냐고. 조금은 망설이다가 인도인 특유의 고개를 까닥이며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여기를 앉으라고 했다. 두 자리 중 하나는 양보한다고 했다. 구경온 다른 인도인들이 박수와 환호를 했다. 인도 여기를 왜 왔나 하는 심경은 여자분들이나 나도 마찬가지였지만 갈등이 해결되니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구나 싶었고 환호를 하는 인도인들을 보니 마치 코미디 영화 같았다. 그 둘 중의 한 여자가 유창한 발음으로 고맙다고 그 인도인에게 영어로 이야기를 했다. 순간 뻘쭘했다. 이 두 분은 언어가 안되어서 자리 문제를 겪은 것도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나에게도 도와줘서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나 역시 인도 기차는 처음 인지라 뜬금없이 나섰던 것이 문득 부끄러워졌다. 돌아온 내 좌석에 돌아와 혹은 없어진 건 없는지 살펴보다가 그런 나를 보는 다른 좌석의 온 인도인들의 시선을 보니 창피함을 느끼며 가지고 온 침낭 안으로 스며들어갔다.
그 난리까지 친 기차였기에 더욱 그랬겠지만 인도에서의 처음 기차 여행은 내가 하는 행동마다 온 인도인들의 시선을 집중받는 스타였다. 일어나고 있으나 누워 있으나 뒤척이나 아님 침낭을 뒤집어쓰고 있어도 이들은 왠지 모르게 나만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마치 처음 본 외계 생물체처럼 말이다. 물론 가이드북이나 인도여행 후기에서처럼 대략 그들이 그렇더라고는 알고 있었지만 막상 겪어보니 과장이 아니었음을 몸서리치게 알 수 있었다. 남자인 나도 그런데 저 하얀 여자 둘은 안 봐도 얼마나 불편했을지 알 것 같았다. 기차는 계속 흘러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