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 생활
절생활을 한지 조금 지난여름이었다. 대나무발이 내려진 처마가 있는 방 안에서 홀로 앉아 여름 태풍에 의해 비바람이 몰아쳐서 이리저리 흔들리는 바깥의 나무와 숲을 보며 흔들리는 건 나로구나 생각했다.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고 이곳의 생활에서도 맘이 편하지 않다면 난 도대체 어디로 가야 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행자생활은 군대 훈련병 때보다도 더 고되었다. 새벽 세시부터 시작된 하루의 일과는 저녁 아홉 시가 넘어 마무리가 되었다. 할 일은 너무 많은데 사람은 모자랐다. 서열은 들어온 머리 깎은 순서대로 정해 졌으며 이에 따라 배분되는 소임도 군대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힘들어 두어 번 기절도 했던 것 같다. 처음에 10초도 못 버티겠던 무릎 꿇고 앉아 있는 자세는 반복되니 점점 무감각해졌다. 규율을 어기면 자기 전 어김없이 절을 했다. 오백배, 천배, 오천배, 만배 등등. 1시간 가까이 넘게 걸렸던 108배가 10분이 채 걸리지 않게 되었다. 절에서 처음 느끼던 거의 모든 몸의 고통은 시간이 지나니 무감각 해지고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잠은 여전히 모 잘랐지만 술이 없음 잠을 못 자던 이전과 달리 누우면 잠이 드는데 10초가 걸리지 않았다. 육체의 고통이 익숙해지니 고개를 치미는 건 나는 누구고 여기는 어디인가였다. 군대와 마찬가지로 무차별하게 사람들이 섞이는 곳이니 당연히 나와 다른 세상을 살던 이들이 서열을 가지고 같이 부대 끼며 생활을 했다. 물론 각자 개개인의 사연을 가지고 말이다. 사연은 각각 다르겠지만 이들은 부처님과 그 가르침인 불법을 통해 자기와 세상을 구하겠다는 큰 서원을 가지고 온 이들이 대다수이었고 그래서인지 거의 모든 부분이 훈련병때와 비슷했지만 가장 크게 다른 건 명령을 통해 시키야 움직이는 수동적인 훈련병의 자세가 아니라 자기 스스로 들어온 만큼 능동적으로 자기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隨處作主 立處皆眞(수처작주 입처개진) 라는 말은 이들을 통해서 엿볼 수 있었다.
나는 그런 서원이 있는가? 몸이 편해 아니 익숙해질수록 그런 고민은 더해 갔다. 저들은 대략 1년 기간의 행자 시절을 사미승이 될 수 있다는 희망으로 환희심을 통해 일상을 보내고 있지만 나는 승려가 되겠다고 머리를 깎고 있었음에도 여전히 그런 목표와 희망은 없는 상태였다. 저들은 4년의 사미승을 마치고 비구가 되기 위해 오늘을 보내고 있는데 나는 하루하루가 의심스러웠다. 유일하게 그나마 열의를 가지고 있던 시간은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을 배울 때였다. 한자는 잼병이었지만 경전을 직접 학감 스님에게서 실전으로 배우는 재미는 제법 쏠쏠하였다. 그렇지만 그것도 어쩌면 같이 있는 행자들보다 내가 배움은 잘하지 않을까 하는 오만함이 깔려있던 혼자만의 재미였던 것 같다. 시험을 무려 2년 넘게 공부한 내가 적어도 학문으로서의 불교는 너희들보다 잘 배울 수 있을 거라는 혼자만의 천박한 인식이 그 시간을 즐기고 있었던 것 같다. 행자 기간 동안에 배우는 건 오로지 하심(下心)이라고 누군가 이야기를 해줬지만 그 기간에 난 내가 틀리지 않았음을, 내가 열등한 존재가 아님을, 내가 고작 시험에 떨어지고 여자친구와 헤어져 그 상황에서 도망치려고 출가한 게 아님을 내 스스로 나와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던 것 같다. 그에 대한 증명이 경전공부를 통해 내가 남들처럼 아니 남들보다 우월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받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고 있으니 그러한 욕심은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며 다른 행자들에게서 일부러 찾아보려고 했었다. 누구는 염불로서, 누구는 법고로, 누구는 절로써 등등. 사실 그것을 증명해 주는 존재는 세상 어디에도 없음에도 그리고 증명할 필요도 없음에도 적어도 나는 그렇게 하고 있었다. 견결한 수행자가 되고 싶었지만 그건 견결하다는 상태 일뿐이고 그렇게 되기 위한 불퇴전(不退轉)의 용기나 의지는 시간이 갈수록 의심스러웠다. 머리로는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下化衆生)이지만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고 싶지 않았고 그러려면 적어도 10년은 넘게 이렇게 대중생활을 해야 한다는 사실도 내가 견딜 수 있는 시간일지 나 스스로가 못 미더웠다. 어쩌면 난 세상이 각종 시험을 통해 정해지는 서열화 기준의 판을 뒤집으려 출가를 선택했던 것 같다. 애초에 그 정해진 서열에 들어서지 못할 것 같으니 그렇다면 그 판에서 아예 벗어나는 선택을 한 게 아닐까 싶다. 그렇게 판까지 뒤집고서 들어온 마당에 여기서 내가 더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하면 더욱더 암담했다.
나를 불교로 이끈 건 적멸(寂滅)의 장엄함이었다. 사과가 농후하게 익어가는 계절 소백산 자락의 부석사에서 해가 지는 노을과 더불어 본 저녁 예불은 적멸 그 자체였다. 치열한 긴장감의 법고 소리와 이내 목어와 운판을 거쳐 범종으로 이어가는 저녁예불은 스님들의 굵은 중저음 염불소리 조차 적멸을 장엄하게 칭송하는 것 같았다. 대학에 들어간 지 얼마 안돼서 띄엄띄엄 활동하던 불교동우회 모임에 우연히 참석하여 봤던 광경이었고 이는 강렬하게 내게 자리 잡았었다. 그런 장엄한 적멸이 거기에서는 매일 같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 생생하게 밝고 빛나던 것들이 어둠으로 변하고 소멸하는 것에 대한 사유를, 모든 것이 변한다는 변하지 않는 진리에 대해 어렴풋이 궁금함을 느끼게 되었고 그건 불교 철학에 대한 매력으로 다가오게 되었다. 태양이 뜨면 날이 밝고 해 가지면 어두워진다. 밝고 어두움에는 어떠한 차이가 없다. 스위치를 켜면 전등이 켜지고 스위치를 내리면 전등이 꺼진다. 마찬가지로 이 둘 사이에도 의미가 없을 뿐 아니라 설사 있다 해도 어떠한 의미의 차이가 없다.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는 건 오로지 내가 어떻게 인식하는지에 의존한다. 바람이 부나 비가 내리는 날이나 태양이 짱짱하게 비추는 날 등등등 모든 날씨는 무차(無遮) 하다. 자연뿐 아니라 사람과 사람사이에도 마찬가지이다. 내 기준에 오른쪽에 있는 사물은 마주 보고 있는 상대방 입장에서는 왼쪽에 있다. 사물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지만 나와 상대방에 따라 오른쪽이냐 왼쪽이냐가 달라지는 것이다. 여기서 내가 오른쪽이 맞다고 우기고 비가 오니 나쁘다고 여기고 어두우니 안 좋은 것이라고 느끼고 있던 것이 그간의 내 삶이었다. 느끼고 인식하는 건 나다. 그렇다면 나는 누구인가. 왼쪽이 맞다고 이야기하는 남과 그사이의 나는 서로 틀리고 맞고의 문제인가. 나는 왜 남이 되지 못하는 가. 나라고 하는 나는 누구인가. 이런 갈증으로 불교가 궁금했었다.
하지만 이 갈증은 머릿속에서만 목마를 뿐 현실은 하루에 허덕였다. 모자란 잠에 허덕였고 주체적이니 못하니 이해하지 못할 지시와 관행에 허덕였고 앞으로의 미래에 허덕였다. 출가전이나 출가 후나 허덕이는 건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나는 평생을 허덕이며 살 팔자 인가 싶었다. 배우던 불법은 샘물 같았지만 그때뿐이었고 뒤돌아서면 온갖 분별심으로 허덕였다. 가장 크게 버거웠던 것은 스님들의 세계는 적어도 일반인들보다는 더 도덕적이고 더 바르며 무언가 다른 더 나은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 당위라고 생각했었던 것이다. 그래야 하는 곳이 승가 집단이고 그러지 않으면 속세의 사람들과 뭐가 다를 거며 그렇다면 뭐 하러 이런 생활을 해야 하는 가라는 의심을 결국은 하게 되었다. 스님네 세계도 결국 사람 사는 곳이란 것을 미처 알지 못했었고 그곳에는 마치 이상향의 세계가 있는 것 같은 환상이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아니 나를 정당화하려면 승가집단이 이상한 집단이 되어야만 했다.
언젠가 스님이 내게 물었다.
" 절을 할 때 무슨 생각을 하나? '
" 처음에는 내 잘못을 빌었고 그러다 내 가족의 안녕을 빌다가 언젠가부터 내가 아는 분들의 행복을 발원하며 관세음보살님에게 기도합니다. "
" 관세음보살을 코카콜라라고 염불하면 뭐가 달라질 거 같나?"
"....... "
" 소원을 비는데 관세음보살이 아닌 코카콜라 코카콜라라고 염불을 하고 있으면 소원이 이루어 질까? 안 이루어 질까? "
"....... "
대체 무슨 말인가 했다. 염불(念佛)은 부처나 부처님이나 관세음보살등을 떠올리고 의지하는 불교 기도의 방법인데 코카콜라로 염하다니. 이것이 말로만 듣던 선문답인 건가 싶어 다른 기발한 대답을 하려고 했지만 그러면 왠지 싹수없다고 혼날 거 같아 그러지 못하고 꿀 먹은 벙어리로 그 의미를 생각해 보았다.
나중에 알았지만 염불 수행도 깨달음으로 가는 하나의 수행방법이라고 한다. 염불을 통해 생각이 사라지고 생각이 사라진 자리가 바로 깨달음의 자리 라고 하고 말길이 끊어지고 마음 갈 곳이 사라진 텅 빈자리가 변함없이 지속되는 그 상태가 여여(如如) 하다고 표현한다. 그렇기에 염불은 깨달음에 이르기 위한 중요한 수행 수단이고 그 수행수단의 방편을 내게 물은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더 나아가 불교는 자력(自力)과 타력( 他力) 이 결합된 종교라고 한다. 자력은 내 스스로의 힘으로 깨달음에 이르는 것이고 타력은 부처 등 불보살등의 가피등으로 성불을 하는 것이다. 코카콜라라고 염을 하면 과연 어떨까. 코카콜라라고 염을 하면서 소원을 빌었는데 소원이 이루어졌다면 그건 코카콜라의 가피일까 아닐까. 아니 원래대로 부처님이나 관세음보살님을 염불 하여 소원을 빌었는데 소원이 이루어지거나 혹은 그렇지 않으면 염불을 통해 기도 하는 것이 영향을 주었을까 아니 주었을까. 그렇다면 이뤄지지 않은 소원은 간절하지 못해서 그런 걸까. 부처님이나 관세음보살님의 가피가 모자라서 그런 걸까.
여전히 그 스님의 의도는 잘 모르겠지만 그러한 생각은 불교는 단순한 기복신앙이 아닐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했다. 불교가 단순한 기복신앙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매일 같이 기도를 하는 스님에게서 직접 이야기를 들은 건 처음이었다. 절에 들어와서는 정말 매일 같이 절을 했다. 스님에게 이야기 한대로 처음에는 나 자신의 참회로 기도를 하다가 내 가족의 안녕을 빌다가 점차 가족이 아닌 지인 그리고 점점점점 온 세상의 평화 까지도 염원하며 기도를 하게 되었다. 요즘도 절에서는 많은 스님들이 많은 기도를 한다. 매일 같이 아침예불, 사시예불, 저녁 예불을 하는 것을 시작으로 정초 기도, 방생기도, 입춘기도, 백중기도, 성도재일기도 등등 등등. 기복신앙이 아닐 수 있는 불교는 그 많은 기도를 통해 무엇을 얻는 걸까. 그 많은 염원은 어떻게 되고 있을까. 나도 사미를 거쳐서 비구가 되고 매일 같이, 매년 반복적으로 그러한 기도를 하며 살 수 있을까 싶었다. 나 아닌 남을 위해 기도를 한다는 것은 무척 근사한 일이지만. 그것으로 여전히 내속에서 온갖 들끓고 있는 욕망을 다스릴 수 있을까 의심스러웠다. 견결한 수행자가 아니 된다면 이 속에서 나는 무엇이 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은 계속 발전하고 고민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내 가족과 그녀에 대한 기도는 매일 같이 이어가고 있었다. 그래야 내 존재의 이유가 그럼에도 내가 이곳에 있는 이유를 내 스스로 설명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