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이살메르에서의 일몰

피안(彼岸)의 너머로-1

by 코지

타고 온 기차는 보팔역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도착한 카주라호에는 한국인과 일본인들만 오는 지역이었나 보다. 가는 곳곳마다 일본글씨의 간판과 그 밑에는 한글로 김치찌개, 김치볶음밥 등을 파는 음식점들이 즐비했고 지나가는 관광객들도 주로 동양인들만 보였다. 한적한 동네였지만 성적인 표현으로 가득한 석조 사원으로 유명했던 곳이고 그 표현이 너무나도 노골적이고 적나라한 부조가 신기해서 나조차도 민머리를 하고 있는 것조차 잊어 먹은 채 사원의 부조를 하나하나 찾아보게 만들었다.

성적인 호기심으로 오는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호객하는 인도인들도 젊은 남자들이 많았다. 그들은 지나가는 동양인들을 보며 일본말로 인사하다가 대답이 없으면 한국말로 인사하였고 대부분의 동양 관광객들은 무시하였지만 그럼에도 낯선 나라에서 들려오는 일본말이나 한국말로 건네오는 그들에게 반가움으로 대하는 관광객도 제법 많았다. 나 역시 그 호객하는 인도인들과 한국말로 농담을 하며 그 지역을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지난 기차에서 본 두 한국 여자분들도 카주라호를 목적지로 하였나 보다. 우연히 마주친 그들은 내게 지난번 도와줘서 고맙다며 반갑게 인사를 했다. 이야기를 길게 이어가고 싶었지만 그 여자분들에게 달라붙으며 호객하는 인도인들이 너무 많았기에 좋은 여행 하시라고 서로 안부를 건네고 난 후 나는 근처 자전거 대여점에 들러 자전거를 빌려 그 지역을 돌아다녔다. 호객하는 인도인들에 시달리는 그들이 조금 걱정되었지만 지난 기차에서도 단호하게 자기주장을 하는 모습을 생각하면 내 걱정을 하는 게 더 나아 보였다.

카주라호는 자전거를 타기에 참 좋은 지역이었다. 지역을 조금만 벗어나도 또 다른 사원들이 있었었고 인도 시골의 모습도 우리네 예전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아 비포장도로를 달리며 그간의 긴장을 조금이나마 풀 수 있었다. 인도인들은 처음 봤음에도 가령 "You are my best friend in the world"이라며 내게 이야기하면서 100루피(한화로 약 삼천 원)에 살 수 있는 물건을 100달러(한화로 약 십삼만 원)라고 하며 가격을 제시하는 일등 그들 특유의 사기꾼 같은 호객행위에 처음에는 진절머리가 났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베스트 프렌즈라고 하면서 어떻게 내게 이런 가격에 팔 수 있냐 베스트 프렌드니 50 루피만 주겠다고 대응하면서 그들의 반응을 보는 것도 나름 재미가 있었다. 인도에서 주요 이동수단인 삼륜 오토바이를 모는 릭샤왈라꾼들과의 실랑이는 여전히 곤역스러웠지만.

이곳 사원중에는 자이나교의 사원이 있었다. 사원에는 자이나교의 수행자도 있었고 이들은 언듯 보면 불교와 비슷해 보이지만 자이나교에 대해 좀 더 알게 되면 불교의 극단적인 모습이 아닐까 싶다. 윤회를 중시하고 그렇기에 윤회에 수반되는 까르마(업, 業) 중 나쁜 까르마를 최대한 쌓지 않기 위해 불살생을 가장 중요시하는 종교라고 알려져 있고 실제로 이들은 입으로 들어와 죽는 벌레등을 막기 위한 천을 입에 두르고 다니고 혹여 걸으며 벌레등을 밟지 않기 위해 빗자루로 쓸으며 이동하고 있었다. 의도를 가지고 살생을 하는 건 당연히 가장 나쁜 까르마가 쌓이는것이고 거기에 의도 없이 죽이는 것 심지어 음식에 들어 있는 미생물을 먹는 것조차도 살생으로 분류되어 나쁜 까르마가 먼지처럼 쌓여서 나쁜 윤회를 거듭한다고 믿고 있는 종교라고 한다.

나 역시 모든 생명은 근본적으로 살아남으려는 것이 존재의 본질이고 그렇기에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 고통이 주어져서 그 고통을 피하려 최대한 죽음을 회피하도록 하는 것이 생명의 본성이라고 생각한다. 광합성등을 통해 에너지를 얻는 식물과 달리 동물의 우리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음식을 먹는 방법등으로 얻어야하는 에너지가 필요하고 그 에너지 구성에는 식물 곡물 탄수화물뿐 아니라 동물의 단백질을 필수로 하고 있어 필연적으로 유희로 살생을 하는 것을 제외하더라도 다른 생명의 삶을 섭취할 수밖에 없다. 온 생명중 인간만이 타 생명의 존재를 위한 먹이가 되지 않고 있고 인간은 인간끼리의 살생만 아니라면 타 존재의 영양을 위해 죽임을 당할 일은 거의 없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특히 인간의 욕망과 죽음이 결부 되면.

인도에 와서 가장 많이 사유하는 것이 죽음에 대한 생각 이었던 것 같다. 윤회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윤회가 없다면 현재의 삶에서 끄달리는 온갖 욕망을 제어할 근거는 무엇일까 생각하게 된다. 쾌락이라고 굳이 표현하지 않아도 우리는 고통을 피하고 즐거움이나 행복을 위해 살아간다. 즐거움이나 행복을 위한 육체적인 욕망이나 또는 정신적인 욕구등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한다면 그리고 내가 어디서 행복을 느끼고 있나에 대한 질문이 육체에 대한 것이라면 너무나 명확하다. 먹는 즐거움, 성행위, 배설, 수면 등등. 하지만 여기에 정신적, 사회적 행복이 추가되면 내 욕망은 복잡 다단해지고 욕망을 성취하여 행복이나 즐거움을 누리기는 그 복잡다단한 만큼 어려워진다. 욕구나 욕망을 성취하여 행복을 느낀더라고 해도 그것이 끝이 아니고 계속적으로 욕망은 반복되고 그 욕구에 대한 즐거움이나 행복을 성취하기가 어려워지면 어려워지는 만큼 반대의 감정인 괴로움등이 올라온다. 성적 욕망도 그렇고 시험에 떨어지는 일도 그렇고 내가 이루고 싶은 것을 이루지 못하면 그 욕망의 크기만큼 괴로움이 커지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목적에 대한 성취가 어려워지는 만큼 사회로부터 강제되어온 사회적 양심 도덕과 별개로 욕망을 스스로 제어해야 즉 스스로 행복에 대한 갈증을 제어해야 괴로움이나 고통을 피하게 되고 결국에는 고통을 피하려 즐거움을 자제하는 역순환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다. 이러한 삶을 이어가는 것은 윤회와 별개로 죽음에 이르면 욕구, 즐거움, 욕망, 좌절, 고통 등 이러한 반복이 종래에는 없게 되고 죽음이 어쩌면 오히려 깨달음은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다. 자이나교는 윤회가 있다고 생각하기에 극단적인 살생과 금욕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윤회가 있는 것일까? 난 없다고 생각한다.

인도에 조금은 적응된 마음으로 보드가야에 갔다. 부처가 깨달은 곳이고 불교의 가장 중요한 성지중 하나임에도 예상과 달리 다녀본 인도 내에서도 가장 개발이 안되어 있었고 무척이나 열악했다. 또한 인도 내에서도 가장 못 사는 지역 중 하나라고 하며 강도 같은 일도 빈번히 일어나는 등 치안이 불안한 지역이라고 하여 다시 긴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불교의 성지인만큼 다양한 나라의 순례자들을 볼 수 있었다. 그중 티베트의 승려들은 오체투지의 절을 하는 행위는 보는 것만으로도 경외심이 나왔다. 부처가 깨달은 장소는 마하보디대탑으로 꾸며져있고 각 나라의 수행자와 신자들이 와 자리를 잡고 각 나라의 언어와 절로 수행을 하고 있었다. 대탑에서 간단히 예를 올리고 네란자라나강을 지나 전정각산으로 오토릭샤를 타고 갔다. 여러 릭샤꾼은 그곳을 가는 것을 꺼려했는데 이유는 불가촉천민이 주거하는 곳이기 때문이라고 들었다. 둥게스와리의 전정각산(前正覺山)은 단어처럼 부처가 깨닫기 전 올라 굴에서 수행했던 산으로 알려져 있고 그곳에는 정토회라는 한국의 불교단체가 들어와 수자타 아카데미라는 학교를 만들어 그 불가촉천민(不可觸賤民, untouchable)의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었다. 릭샤에 내리자마자 수많은 벌거벗은 아이들이 달려와 먹을 것을 달라고 했다. 전정각산은 그렇게 높지 않았고 부처가 수행했다는 유영굴은 뼈가 드러나며 깨닫기 전 극단의 수행을 하고 있었던 형상을 한 부처의 불상이 초라하게 놓여 있었다. 내려와 수자타 아카데미에 들렸고 불가촉천민들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불가촉천민이라는 것은 카스트라는 계급에도 속하지 않는 존재로 그들의 몸에 닿기만 해도 불경해진다고 취급받는 사람들이었고 그들이 모여사는 곳이 전정각산이 있는 둥게스와리라는 곳이었다. 그렇기에 몇몇 릭샤꾼들이 이곳에 가기를 꺼려했고 이곳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수자타 아카데미의 상주하고 계시는 한국인분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여전히 강도 강간 살인이 빈번히 일어나고 있는 지역이고 부모들이 아이들은 학교에 보내는 거보다 거리에 내보내 구걸을 하는 것이 그들의 생계에 도움이 되기에 이들을 설득하는 일 역시 쉽지 않다고 이야기를 해주었다. 심지어 수세기 혹은 수십 세기를 걸쳐서 교육을 받지 않았기에 이들의 지능이 조금은 퇴화되었다는 과학적 증거도 나오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처음 인도에 와서 내게 먹을것을 달라며 내 손을 잡았던 어린 꼬마의 손내음 만큼이나

충격을 받았다. 윤회에 대해 의심을 하고 있었지만 만약 윤회가 있다면 이들은 무슨 까르마로 이런 선택할 수 없는 부류로 태어나 한 생을 존재 그 자체 만으로 멸시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어야 하는지가 더욱 의심스러웠으며 이들의 존재 때문에 인도에서는 더욱 까르마와 윤회를 더욱 믿게 되고 그것을 주장하는 지배계급을 더욱 공고히 하게 되는 이데올로기가 되며 마찬가지로 그것을 주장하는 종교가 더욱 번성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다. 즉 이들의 존재로서 사회계급과 그들의 종교가 증명받게 되고 공고화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태어남은 선택이 아니다. 백인으로 태어나든 흑인이든 황인종이든 선택할 수 있음이 아니기에 그 자체로 차별이나 멸시의 대상이 아니다. 이들은 태어남과 동시에 불가촉천민으로 분류되어 한평생을 존재 그자체로 차별과 멸시를 받으며 살아가는 것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었다. 불가촉천민으로 태어난 것은 전생의 죄업에 대한 까르마로 인해 그런 삶을 살게 된 것이라고 믿게 되면 이 차별은 당연시된다. 뭄바이에서 본 화려한 덩치 좋고 보기에도 부자스러운 아리아인들은 그들 스스로 마땅히 좋은 까르마로 인해 좋은 태생을 받게 된 것이니 그러한 차별 역시 당연하게 받아지게 된다. 부처의 생전에도 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상황이었을 것 같다. 그렇기에 깨달음 이후의 부처의 불교는 그런 카스트 같은 제도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고 모든 존재는 깨달을 수 있다고 이야기했겠지 싶었다. 윤회와 까르마에 대한 의심은 더욱 깊어진 체 바라나시를 향해 기차를 탔다.

바라나시는 악명처럼 혼돈이었다. 바라나시역에 내려 게스트하우스를 찾아가는 좁은 골목길은 정말 미로였다. 겨우 한두 명 만이 지나갈 수 있는 좁은 길 어디에도 소들이 누워 있었고 그 소들이 저지른 소똥 가득한 길 옆으로 개들이 지나가고 있었으며 그보다 좀 넓은 길은 온갖 사람과 자전거, 릭샤, 자동차들이 뒤섞여 흘러가고 있었다. 몇몇의 서양 배낭여행자들에게 길을 물었으나 그들도 역시 길을 헤매고 있었었고 겨우 간신히 인도인 그네들 말로 '강가'라고 불리는 갠지스 강 근처의 게스트 하우스에 배낭을 풀었다. 배낭을 풀고 간단히 요기를 하기 위에 게스트하우스 옥상에 있는 식당에서 늘 그렇듯 차우면을 먹고 있으니 보이지는 않지만 가까울 것 같은 곳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저기가 그 유명한 바라나시의 화장터이구나 하면서 식사를 마쳤다. 옷을 갈아입은 후 바라나시를 돌아다니러 나왔다. 좁은 골목길을 헤매고 있는데. 그 좁은 골목길에 무언가 짊어진 사람들이 무언가를 암송하며 내 옆을 지나가고 있었다. 대나무로 만든 들것에 온몸의 형체가 드러나는 얇은 천에 놓여 내 옆을 지나가는 것은 죽은 시체였고 이들은 화장터로 가는 중이었다. 가족은 없는지 네 명의 남성만이 들것으로 힌디어로 무언가를 암송하며 걸어가고 있었고 그 좁은 길에 있던 이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살짝 길만 피해 비켜주고 있었다. 시체를 본 것은 처음이었다. 와락 눈물이 터져 나왔다. 채 덮히지 않은 그 까맣고 거칠은 주검의 발을 본 순간.

바라나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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