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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어지며 배운 삶의 모서리들

프롤로그, 장면으로 남은 시간들

by 코지한울

어릴 적부터 나는 풍경보다

사람을 오래 바라보는 아이였다.

웃는 얼굴 뒤의 미세한 떨림,

손끝에서 스치는 오랜 습관, 말끝의 길이.
말보다 말 없는 순간의 장면들이

내 안에 더 오래 남았다.

기억을 더듬을 때면 내 안의 카메라가 천장 어딘가에 붙어 있는 것처럼, 언제나 장면을 위에서 본다.

나의 눈으로 본 기억이 아니라,

누군가의 시선이 나를 비추던 장면.

CCTV처럼, 프레임 안에서.

그 장면들 속 나는 언제나 작다.

어른들 틈에서 어느샌가 대화를 듣고있던 아이,

알고 싶지 않아도 모든 걸 알게 되는 눈치 빠른 아이,

말하지 않고 모든 걸 내면에 기록하는

조용한 목격자였다.


가족은 나의 첫 번째 교과서였다.

그들은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내게 배움의 방향을 정해준 사람들이었다.

누구에게서 배워야 하는지,

누구에게서 배우지 말아야 하는지.

말보다 몸으로 보여주는 그들의 삶이 나를 길러냈다.


어릴 적 종종 생각했다.
“저건 절대 따라 하지 말아야지.”
“저건 나도 닮고 싶다.”
그 구분이 너무도 분명해,

오히려 세상은 단순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았다.

분명히 구분해 두었던 그 경계가

나라는 존재 안으로 스며드는 순간들이 있다는 걸.

말투 하나, 표정 하나, 판단의 방식 하나.

어느 날 문득 내 입에서 흘러나온 낯선 언어에

깜짝 놀란 적도 있었다.

그건 내 것이 아니라, 오래전 닮기 싫다던

그들의 말과 행동이었다.


사람을 보는 눈이 있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사실 그것은 재능이라기보다 습관에 가까운 감각이다.

누군가의 눈빛이 조금만 흔들려도

마음속으로 이미 다음 장면을 예측해 버리는 버릇.

웃음 뒤에 흐르는 기류, 스치는 긴장감,

말하지 못한 사정까지 읽어버리는 피로한 재주.


어린 시절부터 늘 1인칭이 아닌 3인칭의 자리에서

나를 바라보았다.

‘나’의 감정에 휘말리기보다,

장면 전체를 파악하는 버릇이 먼저 몸에 배었다.

덕분에 사람들의 실수와 상처,

감정의 결을 조금 더 빨리 이해할 수 있었지만,

때로는 그것이 나를 너무 빨리 늙게 만들었다.


무수한 장면들이 스쳐 갔다.

가족, 친구, 연인, 낯선 사람들.

그들이 나를 만나지 않았어도,

혹은 나를 만났기 때문에 만들어진

수많은 실수와 상처들.

그 흔적들이 고스란히 내 안에 층층이 쌓였다.

문제는, 안다고 해서 다 피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거다.
나는 여전히 나를 실망시킨 어른들처럼 말하고,

비슷한 실수를 반복하며,

그때의 그림자를 따라 걷는다.
그리고 그 순간마다 죄책감이 밀물처럼 들이친다.

하지만 이 예민함은 나를 지키는 방패이기도 하다.

나는 반복되는 장면을 정확히 알고 있다.
같은 길을 걸어가지 않기 위해,

언제나 한 걸음 떨어져 나를 관찰한다.

이 감각이 나를 피곤하게도 하지만, 동시에 살게 했다.

앞으로는 그 시간들을 기록하려 한다.

어린 시절 듣던 어른들의 대화,

알고 싶지 않아도 알게 되는 비밀들,

사람들의 표정 사이에 숨어 있던 공기,

그리고 그로부터 배운 것들.
그것은 거창한 회고가 아니라,

조용한 기록의 시작이다.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은 하나의 장면이 된다.
어떤 장면은 배움이 되고, 어떤 장면은 경계가 된다.
나는 그 장면들 사이를 걸어오며 사람이 되어갔다.

그리고 이제, 그 시간들을 꺼내어 쓸 것이다.
나를 만들었던 사람들의 잔상을 따라, 한 장면씩.
말 대신 장면으로, 감정 대신 공기로.

이것은 누군가를 탓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어떻게 나를 배워왔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누군가의 실수와 상처가 나를 만들었고,

나는 그 안에서 길을 배웠다.

그리고 이제, 그 길 위에서
내 목소리로, 내 시선으로, 나를 써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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