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지키는 단단함

남에게서 시선 거두기.

by 코지한울

AI가 하루가 다르게 똑똑해지고, 정보는 물처럼 넘친다. 가만히 서 있어도 무언가가 밀려와 등을 떠민다. 지금 이걸 알아야 할 것 같고, 저 사람의 선택을 따라가지 않으면 뒤처질 것 같고, 잠시 멈추는 일조차 게으름처럼 느껴지는 시절이다. 모두가 앞서 가는 것처럼 보이는 풍경 속에서, 나는 종종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 사람인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이리저리 방향을 바꾸지 않고 자기 자리에 오래 머무는 사람들이 있다. 유행에 맞춰 말의 방향을 바꾸기보다, 오늘 해야 할 일을 오늘의 속도로 해내는 사람들. 비교의 기준을 바깥에 두지 않고,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조용히 대조해보는 사람들이다. 크게 흔들리지 않고, 대신 깊어지는 쪽을 택한다. 속도를 내는 대신 무게를 쌓는다.


그들은 내공이라는 말을 굳이 입에 올리지 않는다. 다만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조금씩 단단해진다. 화려하지 않지만 쉽게 무너지지 않는 사람이 된다. 남의 성과를 보며 조급해하기보다, 지금 자신이 책임지고 있는 삶의 범위를 정확히 안다. 오늘의 가족, 오늘의 일, 오늘의 마음을 돌보는 데 에너지를 쓴다.


특히 가족이라는 시간 앞에서는 더욱 그렇다. 적어도 오십 년 가까이 함께 살아갈 얼굴들. 지금의 선택이 훗날의 풍경이 된다는 걸 알기에, 너무 멀리 있는 미래를 상상하느라 현재를 소홀히 하지 않는다. 지금 이 시기를 잘 건너는 것이, 이미 충분한 계획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오늘의 식탁, 오늘의 대화, 오늘의 침묵까지도 미래로 이어지는 선이라는 걸 믿는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조용하다. 스스로를 위너라고 부르지 않는다. 다만 하루를 지켜낸다. 무사히 지나온 하루를 다음 날로 건네며 살아간다. 요란한 전략 대신 성실한 반복을 택한 사람들. 미래를 앞질러 소유하려 하지 않고, 현재를 끝까지 살아내는 사람들이다.


생각해보면, 현재를 지켜낸다는 건 꽤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불안이 많은 시대일수록, 사람들은 앞날을 붙잡고 싶어 한다. 그러나 어떤 미래도 현재를 통과하지 않고는 도착하지 않는다. 오늘을 대충 살면서 내일만 정교하게 설계할 수는 없다. 지금의 삶을 존중하는 태도 자체가 이미 가장 현실적인 계획이다.


그래서 나는 요즘,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을 다시 보게 된다. 빠르지 않아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들. 비교하지 않음으로써 자기 삶의 리듬을 지켜내는 사람들. 그들이야말로 이 시대에서 가장 단단한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닐까 생각한다. 현재를 버티는 힘이 곧 미래를 견디는 힘이라는 걸, 말없이 증명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 글을 보고 있는 그대들도, 그런 사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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