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The Story of
Future Writers

by 권오현 Dec 26. 2021

버질 아블로의 생각

디자인 & 패션


스트릿 패션을 하이패션 반열에 올린 선구자

유럽계 명품 브랜드 역사상 최초 흑인 디자이너

타임지의 2018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선정


이 모든 수식을 가진 사람, 패션 디자이너 '버질 아블로(Virgil Abloh)'이다. 버질 아블로는 정식으로 패션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그는 중산층 가정에서 자라 공부에 매진한 건축학도였다. 그런 그가 화려한 경력의 패션 디자이너들을 제치고 루이비통 아트 디렉터가 되었다. 패션계에 변화의 바람이 분 순간이었다. 전 세계 글로벌 브랜드는 그에게 열광했고 끊임없이 러브콜을 보냈다.


혜성처럼 등장하여 역사를 만든 버질 아블로. 평범한 대학생이 어떻게 명품 브랜드의 수장까지 되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나는 이 글을 썼다. 다른 매체에서 자주 언급된 버질 아블로의 생애보다는 그의 디자인 철학과 패션 철학에 집중해서 조사했다. 두 가지는 엄연히 달라서 따로 살펴봐야 한다. 버질 아블로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이 글이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디자인 철학: Changing A Little


버질 아블로의 디자인 철학은, '조금만 바꾸기(Changing A Little)'이다. 그는 오리지널에서 3%만 바뀌어도 새로움이 탄생한다고 말했다. 대상을 적당히 자르고, 붙이고, 뒤집고, 해체하는 것만으로도 디자인을 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는 개념 미술의 선구자로 불리는 예술가 마르셀 뒤샹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그는 대량 생산된 공산품을 예술로 다루었다. 남 소변기를 작품으로 출품한 '샘'이 대표적이다. 뒤샹은 물었다.


회화보다 정확한 사진기가 등장했고, 머리 위로는 비행기가 날아다닌다. 주변에는 품질 좋은 공산품이 넘쳐난다. 우리(예술가)는 저것들 보다 더 멋진 것을 만들 수 있는가. 이것들이 예술이 되지 말라는 법이 있는가. 예술이라고 흰 캔버스에 유화 물감을 발라가면서 대단한 무언가를 창조해야 하는가. 레디 메이드(Ready-Made)를 달리 해석하면 그것도 예술로 표현할 수 있지 않은가.


이미 만들어진 것에 유연한 시선과 생각을 더하는 행위 자체가 예술이 될 수 있음을 뒤샹은 시사했다. 뒤샹의 말에 따르면 기성복도 이미 존재하는 물건이다. 이것을 재치 있게 바라보는 상상력이 있다면 충분히 디자인적 가치를 지닐 것으로 버질 아블로는 생각했다.


ⓒPYREX VISION-23 via Tumblr


실제로 그러한 지 실험하고자 버질 아블로는 2012년에 '파이렉스 비전(Pyrex Vision)'을 설립했다. 그는 패션 브랜드 폴로와 챔피언의 철 지난 럭비 셔츠와 스웨트 셔츠를 헐값에 사들였다. 그리고 등판에 그가 좋아하는 농구 선수 마이클 조던의 등번호 23과 Pyrex 스펠링을 커다랗게 프린트했다. 40달러에 사들인 그 옷들을 550달러에 판매했다. 반응은 뜨거웠다. 사람들은 앞다투어 그의 옷을 구매했다. 심지어 셀럽들도 자신들의 소셜 미디어 계정에 구매 인증을 했다. 대중은 익숙함에 새로움이 더해지니 그 물건이 가치 있다고 여겼다. 버질 아블로는 뒤샹이 옳음을 몸소 경험했다⑴.



오프 화이트

버질 아블로는 파이렉스 비전을 운영하며 패션에 확신을 얻었다. 그 경험을 확장하고자 2013년 스트릿 웨어 브랜드 '오프 화이트'를 세웠다. 오프 화이트는 기존의 스트릿 웨어 브랜드와 다른 방향성을 갖는다.


첫 번째, 고품질. 후드, 면바지, 티셔츠, 스웨트 셔츠 등의 스트릿 웨어는 대체로 젊은 세대가 입는다. 가격대가 합리적이며 그 가격대를 유지하려고 많은 브랜드가 소재의 품질을 타협한다. 그래서 일반적인 사람들은 스트릿 웨어에 대한 기대치가 낮다. 그런데 티셔츠의 봉제, 로고 프린팅, 소재 품질이 압도적이면 어떨까. 마치 명품 브랜드처럼 말이다. 대중은 신선한 충격을 받을 것이다. 버질 아블로는 이를 의도했다. 서브 컬처의 대명사인 스트릿 웨어에 명품 브랜드의 고품질 정책을 차용함으로써, 스트릿 웨어의 고정관념을 깼다.


ⓒOff White


두 번째, 기존 디자인 차용. 오프 화이트에는 따옴표, 화살표, 대각 평행선의 시그니처 디자인이 있다. 따옴표는 문장에서, 화살표⑶는 이정표에서, 대각 평행선은 공사장 입간판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만큼 흔하다. 버질 아블로는 오프 화이트 제품 곳곳에 이 세 가지를 더했다. 단어를 강조한 따옴표는 말을 거는 느낌을 준다. 화살표와 대각 평행선은 무언의 신호를 보내는 듯하다. 로고 플레이를 하는 옷과는 달리 경쾌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버질 아블로는 오프 화이트를 운영하면서 개인 협업 프로젝트를 지속해 나갔다. 나이키, 이케아, 맥도날드 등 글로벌 브랜드와 함께했는데, 그들의 제품에도 그의 상징적인 디자인을 적용하여 유쾌한 결과물을 만들었다. 진지함을 기피하고 가벼움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팝아트스러운 그의 디자인은 패션의 주류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⑴파이렉스 비전은 퍼포먼스성 브랜드였다. 버질 아블로는 1년 후 파이렉스 비전을 접었다.

⑵시즌이 거듭될수록 떨어지는 품질로 논란이 잦다. 초심을 찾아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⑶현재 오프 화이트는 화살표 로고를 사용하지 않는다. 두 손과 얼굴 모양의 로고로 바뀌었다.





패션 철학: For Everyone


버질 아블로는 어려서, 음악, 미술, 패션을 즐겼다. 이 셋의 공통점은 '포용'이다. 인류의 유산이기에 누구나 접하고 누릴 수 있는 것들이다. 동네 친구들부터 전문직 종사자들까지,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스크린 프린트 샵에 모여서 티셔츠를 만들었다. 클럽에서는 무명 DJ이든 유명 DJ이든 다 같이 턴 테이블을 돌리며 음악을 즐겼다.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미술 작품은 다양한 신분을 가진 위인들이 남겼다. 그가 전공했던 건축도 마찬가지였다. 한 공간에 수많은 사람들이 드나들었다. 건축물은 특정인의 출입을 제한하지 않았다.


음악도 미술도 패션도 그리고 건축도, 어느 한 계층만을 위하지 않았다. 모두에게 열려 있었다. 버질 아블로는 자신이 즐긴 인류의 유산으로부터 포용의 자세를 배웠다. 그래서 그는 패션을 업으로 삼을 때, 누구에게나 열린 패션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앞에서 썼듯이 파이렉스 비전과 오프 화이트가 그 시작이었다. 두 브랜드의 옷은 대부분 남녀 겸용이었다. 한 성별에 치우치지 않았다. 또한 버질 아블로는 사회 메시지를 담은 옷도 만들었다. 2017년 미국 워싱턴에서 여성 행진이라는 시위가 벌여졌다. 주최자들은 여성·성소수자 인권, 이민자 정책 개혁, 인종 차별, 노동 환경 문제 등을 제기했다. 버질 아블로는 예술가 제니 홀저와 Planned Parenthood 티셔츠를 제작하여 그들을 응원했다.


Planned Parenthood. ⓒHYPEBEAST


흑백논리로 구분 짓는 태도는 사회에서 금하는 추세였다. 누구든 평등한 대우를 받고, 소외를 당하지 않고, 권리를 주장할 수 있도록 격려했다. 패션도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변했다. 특히 명품 업계가 그러했다. 관계자들은 젊은 세대를 주목했다. 소득이 높아지면서 그들의 소비력이 시장 곳곳에서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딱딱한 격식보다 편안함을 선호했고 윤리적으로 올바른 브랜드를 찾아다녔다. 젊은 세대를 먼저 차지한 브랜드가 업계를 주도할 것이 자명했다. 명품 브랜드 몇몇은 체질 개선을 감행했다. 그 첫 타자가 루이비통이었다.


버질 아블로의 루이비통 데뷔 무대. ⓒLVMH


루이비통은 버질 아블로의 행보를 눈여겨보았다. 그의 디자인 철학과 패션 철학은 젊은 세대를 포용하기에 알맞았다. 루이비통은 마침내 2018년에 버질 아블로를 아트 디렉터로 영입했다. 이에 부응하기라도 하듯 버질 아블로는 같은 해 6월 28일, 그의 데뷔 무대를 파격적으로 구성했다. 런웨이 컬러를 사회 소수자들을 상징하는 무지개색으로 꾸몄고, 17명의 흑인 모델을 포함하여 다양한 인종과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무대에 세웠다. 런웨이 VIP석 절반을 패션 전공 학생 3,000명으로 채웠다. 쇼의 의상은 화려한 원단으로 제작된 옷들이 주를 이루었다. 피날레는 아름다웠고 세상은 버질 아블로의 등장에 환호를 보냈다.






2021년 11월 28일, 버질 아블로는 심장 혈관육종으로 눈을 감았다. 2019년에 병을 진단받았지만 언론에 알리지 않았다. 평소처럼 버질 아블로는 일에 몰두했다. 묵묵히 오프 화이트와 루이비통 그리고 LVMH의 브랜드를 책임졌다. 그는 오리지널의 일부를 바꾸어 전에 없던 가치를 창출했다. 그는 장르를 넘나들면서 만인이 즐길 수 있는 패션을 전개했다. 그의 디자인과 패션에는 무거움과 권위가 아닌, 재치와 평등이 숨 쉬었다.


이루어야 할 일이 많다며 늘 노력했던 버질 아블로는 그렇게 떠났다. 가까운 지인들과 가족들이 그의 마지막을 배웅했다. 그의 마지막은 평소처럼 차분했다. 버질 아블로가 이룬 업적은 짧지만 강렬했다. 그가 이룬 업적으로 패션은 전보다 밝아졌고 세대를 아우르게 되었다. 그렇기에 더욱 기억에 남는다. 버질 아블로는 여전히 여기에 있다.


Rest In Peace. Virgil Abloh 1980 - 2021.






매거진의 이전글 입생로랑, 천재의 꿈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