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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지오 Nov 22. 2020

'경청'없는 대화는 죽은 대화이다

'진심어린 듣기'의 위대한 힘


"선배님하고 이야기하면 공감받는 기분이 들어서 좋아요."



친한 후배가 나에게 한 말이었다.


막상 앞에서 들으니 부끄러웠지만 기분이 마냥 나쁘진 않았다.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들이 대화에서 중요한 요소로 주장하는 것이 바로 '경청'이다. 잘 들을 줄 알아야 올바른 대화를 이끌고 갈 수 있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경험을 해보니 정말 맞는 말이다. 외국어도 듣기가 되어야 내가 원하는 말을 할 수 있다고 하지 않던가. 한국어도 똑같더라. 대화에서 일방적인 대화는 소음에 불과하다.


상대방이 표현하는 생각과 감정을 들어야 나 또한 알맞은 생각과 감정을 전달할 수 있다.


그 시작이 '경청'이다.






나는 관광경영을 전공했다. 과 특성상 팀 프로젝트 과제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았다. 한 학기에만 발표 수업이 10개 이상은 되었고 소규모 팀 프로젝트까지 합치면 15~7개는 되었다. 학기가 시작되면 과제 회의로 시작하여 과제 회의로 끝날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다양한 친구들과 프로젝트를 수행한다는 즐거움은 있었으나 매번 해피엔딩은 아니었다.


확률상 80% 이상은 꼭 '프리라이더(조별 과제에 참여 안 하고 노는 친구들)'가 팀에 있었고, 일부는 자기 잘난 맛에 다른 팀원들의 의견을 묵살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이 정도는 약과다.


'도대체 어떠한 환경에서 살아왔길래 저런 행동을 하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기심이 절정을 치닫는 사람, 발표를 았는데 당일 잠수 타는 사람, 자기가 끝내주는 PPT를 만들겠다고 호언장담해놓고 과제 제출 날까지 만들지 않은 사람 등. 어떻게 대학에 들어왔을까 싶을 정도로 이해가 안 가는 사람들을 간간히 목격했다.


군대를 다녀오고 편입까지 했으니 같이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대체로 나보다 나이가 어렸다. 그래서 필연적(?)으로 팀플을 하게 되면 조장을 맡게 됐다. 어린 친구들보다 몇 년 더 인생을 산 사람으로서 팀에 문제가 생겨도 애써 침착한 척했지만 위에 열거한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참으로 곤욕스러웠다.


멀쩡한 친구들은 나에게 하소연을 하고 분탕을 일삼는 이들도 나름의 사정이 있다며 나를 붙잡고 하소연했다. 전 대학과는 사뭇 다른 앙칼진 팀 과제 분위기에 적잖이 당황했다. 중재를 하려고 해도 모두 자기만 자기 말이라고 떠들어대니 회의가 될 리 만무했다.





나도 어디서 본 게 있어서 '경청'을 하려고 날 믿고 따라와 주는 친구들 이야기도 들어주고 프리라이더들의 이야기도 들어주며 조율을 시도했다. 하지만 하면 할수록 나 또한 감정이 격해지면서 엄한 친구에게 가시 돋는 말을 '던져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너 이따위로 하려고 등록금 내서 학교 왔어? 야 너 그냥 때려치워라."

"너 미쳤니? 건방지게 어디서 프리라이더 짓 하면서 떳떳하게 굴어?"

"야 너만 힘들어? 잘난 척하지 마. 정 그러면 네가 조장하든지."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얼굴이 화끈거린다. 어떻게 저런 말들을 내뱉을 수 있었을까. 어찌어찌 이끌고 가서 과제를 마무리하면 다행히 점수는 잘 받았으나 기분은 항상 찝찝했다. 프로젝트가 끝나면 팀원들하고도 서먹해지고 서로 대면 대면하게 지내는 되는 관계가 됐다. 문제는 다른 팀들도 사정은 비슷했다.


타과에서 전과한 학생들이 '관광과 학생들은 뭔가 다들 긴장되어 있고 날이 서있는 것 같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을 때 어찌나 부끄러웠는지 모른다. 우리 과가 마치 '예민하고 신경질적이며 서로 타박하는 사람들만 모인 과'로 보이는 느낌이었다.


어떻게 해야 좋을까. 고민에 빠졌다. 대외적인 평가는 고사하고 나부터 이런 분위기가 숨 막히고 짜증 나서 어떻게든 해결하고 싶었다. 달력을 보니 이번 학기에 남은 팀 프로젝트는 3개. 그것도 아주 중요한 과제들이었다. 그만큼 더 밀도 높은 회의와 의견 교류가 있을 것이기에 '갈등'은 무조건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남은 팀 과제만큼은 평화롭게 하고 싶었다.






나는 보통 해답을 '책'에서 찾는다. 어쭙잖은 인터넷 정보나 유튜브 영상을 보면 정신만 혼탁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팀플을 하기 전에 교보문고로 달려가 대화에 대한 책들을 탐독했다. 대체로 비슷한 톤으로 쓰인 책들을 보니 감흥이 없었다. 그러던 중 하나의 책에서 유독 '경청'이란 것을 강조했다.


들을 수도 없는데 올바른 말이 나올까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듣지 말고 진심을 다해 들어보세요. 그리고 공감하세요.

어떤 감정을 가지고 말을 해야 할지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겁니다.


그래 이거다. 아주 단순했지만 강력한 메시지였다. 내가 여태 한 것은 '경청'이 아니라 그냥 '듣는 것'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조잘거리는 예쁜 말들을 듣는 심정으로 팀원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기로 결심했다.


이후로 내가 삼은 3 가지 규칙이 있었다.


1) 절대로 상대의 말을 끊지 않을 것

2) 모든 팀원들이 충분히 이야기할 수 있도록 배려할 것

3) 의견이 다른 부분이 있다면 왜 그런지 당사자들에게 다시 되물을 것


조장인 나의 말은 최소화하고 팀원들의 말을 '듣는 것'에 온전히 집중한 방법이었다. 신기하게도 회의를 시작하자마자 변화를 느꼈다. 예상했던 팀원들과의 마찰이 눈에 띄게 줄어든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적어도 '난 너의 말을 잘 듣고 있다'라는 이미지를 준 덕분인지 각자 훨씬 편안한 상태로 자신의 의견을 주장했다. 난 거기에 적당히 반응을 보이고 메모를 해가면서 들었다. 팀원에게 집중하니까 그들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해도 잘 됐고 공감은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덕분에 억지로 고개를 끄덕이거나 흘려들을 필요가 없었다.


심지어 팀내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친구들에게 먼저 다가가 왜 이렇게 행동을 하는지, 뭐가 지금 문제인지 물으면서 그들이 자신의 속내를 말할 수 있도록 했다. 전에는 무조건 엄하게 대하거나 심지어 무시하기도 했는데 막상 대화를 깊게 나눠보면 멀쩡한 친구들도 제법 많았다.


경험상 이런 친구들은 자아가 올바르게 형성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집안이나 개인 사정이 불안정하여 삐뚤어진 행동들을 하는 것이었다. 오히려 이런 친구들에겐 날 세운 언행은 독이었다. 반대로 더 친근하게 다가가고 그들의 속사정을 충분히 공감하는 것이 좋은 결과를 만들었다.


묵묵히 들어주고 반응을 하니까 그들도 나를 더욱 이해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겐 말못할 사정들을 알려주었다. 사람은 비밀과 아픔을 공유하면 유대 관계가 좋아지길 마련이다. 그런 시간들을 여러 번 가지니 어느새 그들과 나는 돈독한 사이가 되었다. 이때 청소년 심리 상담가들이 왜 '경청'을 자주 하는 지를 깨닫게 됐다.





그렇게 프로젝트 회의를 진행할 때마다 팀원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었다. 적절할 때 내 생각을 전하고 조금씩 조율해가면서 회의가 끝날 때마다 깔끔하게 목표를 정하고 마무리했다. 흥미로웠던 점은 내가 그렇게 행동하니 나머지 팀원들도 서서히 나처럼 경청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상대방의 말을 끝까지 듣고 자신의 의견을 예의 있게 표현했으며 중간에 말을 가로채거나 끊는 일이 많이 줄었다. 서로서로 배려하는 문화가 생기니까 굳이 언성을 높이거나 얼굴 붉힐 일 없이 평화롭게 회의를 끝마칠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팀워크도 좋아졌고 과제 결과물은 늘 최고였다.


이후로도 조별 과제가 있을 때마다 새로 만난 팀원들에게 경청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설명하고 권유했다. 처음에는 다들 나를 신기하게 생각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경청의 중요성을 이해하며 회의에 참여했다.


참 고맙게도 당시 같이 과제를 했던 후배들이 선배가 된 이후 자신들도 경청을 바탕으로 한 팀 프로젝트를 진행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배려심 깊은 경청의 자세를 대물림하면서 건강한 팀플 문화를 만들어갔다. 내가 뭔가 유산을 물려준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좋았다.


이때 배운 경청의 자세가 지금도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다. 직업 특성상 수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데 경청을 잘 하니 사람들과 관계가 좋은 편이다. 사람은 나의 말과 마음을 잘 알아주는 사람에게 감정을 쓰기 마련이다. 내가 집중하여 듣고 공감하니 그들도 내가 힘들 때 진심으로 나의 마음을 들어준다.


하물며 급한 순간에 그들이 먼저 자처하여 도움을 주기도 하고 좋은 기회를 제안하기도 한다.


경청의 힘은 실로 위대하다.






내가 한 것은 딱 하다.


'그저 진심을 다해 듣는 것'


경청은 한자어로


敬 - 공경 경

聽 - 들을 청


이다. 그냥 듣는 것이 아니라 '진심을 다해 공경하여 듣는 것'이 경청의 참된 의미이다.


요즘 사람들은 들으려고 하지 않는 것 같아 개인적으로 아쉽다. SNS가 발달하고 개성이 중요시 여겨지는 시대가 되면서 모두 자기 말만 하기 바쁘다. 실제로 모임을 나가면 스마트폰만 쳐다보고 있거나 본인들 이야기만 신나게 해낸다. 그렇다 보니 정작 불필요한 말들이 오가면서 괜한 갈등을 만들기도 한다. 그것만큼 쓸데없는 감정 소모가 또 어디 있을까.


과묵하게 입 닫고 가만히 있으라는 것이 아니다. 나보단 먼저 상대방의 말을 경청의 뜻대로 진심으로 들어보자는 것이다. 남이 무슨 말을 하는지를 들을 줄 알아야 거기에 맞는 언행도 나오는 법 아니겠는가. 그럴 때 내가 전달하는 메시지도 힘이 실리는 것이고 그래야 남도 우릴 받아들일 수 있다.


경청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생각보다 인내심도 필요하고 흥미 없는 주제를 들을 때면 답답하기도 한다.


그래도.


배운다는 자세로 공감하며 듣다 보면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혜안을 얻기도 하며 내가 몰랐던 상대의 모습도 관찰할 수 있다.



경청은 남을 배려하기 위해 하는 것도 맞지만
 궁극적으로는 '나의 성장'을 위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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