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됨
근 한 달간 브런치에 글을 쓰지 못했다. 6월 초부터 중순까지 유감스러운 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의 순간들을 기록한다.
영업
6월에 접어들면서 영업이 뜻대로 풀리지 않았다. 2주 가까이 연락한 브랜드로부터 거절당했다. 꼭 파트너십을 맺고 싶은 곳들이었다. 몇 차례 다가갔지만 그들의 문은 열리지 않았다. 이해는 됐다. 요즘 경기가 말이 아니니까 말이다. 물가는 치솟고 있고 사람들의 소비 심리는 위축되고 있으며, 내년에 최저 임금이 오른다는 소식까지 들린다. 회사 곳간이 쪼들리고 시장이 불타는 상황에서 브랜딩에 배팅할 여유가 있는 곳이 몇이나 있겠는가. 착잡함이 느껴졌다. 착잡함이 느껴지는 것은 내가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착잡함으로 하루하루를 살았다.
늦은 새벽에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에는 눈에 걸리는 것 없이 어둠만이 넓게 펴져 있었다. 문득 이순신 장군이 떠올랐다. 선조와 대신들과 왜놈과 명나라가 사방에서 목을 조르는 상황에서 그분은 여러 해전에서 승리하셨다. 난중일기를 보면 억울한 모함으로 정신이 흔들릴 때, 그분은 자신의 감정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으셨다. 분노가 치밀어도 '오늘 바다가 높았다'라는 식의 문장을 적으셨다. 이순신 장군은 절망을 절망으로 밀어내면서 삶의 아수라를 견디어내셨다. 이순신 장군을 떠올리면서, 나는 나 자신이 나약해졌다고 생각했다. 다음 날 심기일전하여 콜드 메일을 보냈다. 다행히 멋진 브랜드 대표와 연이 닿아서 6월 말에는 작업에 열중할 수 있었다. 그 기록은 이틀 전 목요일에 올렸다.
주둥아리
방법이 없다. 거절로 인한 상심을 상심으로 받아들이고 계속 영업해야 한다. 이상적인 것은 누군가의 소개로 브랜드가 알아서 나에게 연락하는 것인데, 나는 이 일을 하면서 타인으로부터 소개를 받은 적이 없다. '제가 아는 대표가 있는데 소개해드릴게요.' '나 아는 사람 있는데 연락해줄게.'라고 말한 이들이 있었다. 그들의 장담은 내뱉어진 말이었을 뿐 진짜 장담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들은 내 앞에서 있는 척하다가 대부분은 조용히 사라졌다. 그들의 꽁무니는 다급해 보였다.
누군가의 소개가 계기가 되어 자리를 잡은 프리랜서들이 부러웠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내 팔자는 그렇게 될 수 없음을 인정했다. 스스로 모든 것을 일궈야 하는 운명이라면 기꺼이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한테 무언가를 해주겠다, 도와주겠다고 하는 지인들이 숱하게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주둥아리로만 나불거리지 말고 확실할 때 이야기해라.'라고 그들에게 말한다. 6월 초에 이런 일이 지인들과의 술자리에서 몇 번 있었다. 나는 주둥아리로 기약 없는 장담을 무책임하게 말하는 사람들이 안쓰럽다.
할머니
5월부터 할머니가 허리 통증을 호소하셨다. 병원에 모시고 갔는데, 노화에 의한 것이어서 몸을 무리하지 않는 수밖에 없다고 의사는 설명했다. 다른 병원의 의사들도 똑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노화에 의한 아픔이라는 말은 유치원생도 이해할 수 있는 말이다. 내가 의사들에게 바랐던 점은 그래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제시해주는 것이었다. 운동을 해야 한다면 정확히 어떤 운동이 좋고, 영양제를 먹어야 한다면 어떤 영양제를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를 알려주기를 바란 것이었다. 내가 물어봤으나 의사들은 '노화에 의한 것'이라는 소리만 지껄여댔다. 인간은 나이가 들어서 신체가 무너지면, 그 어떠한 방법도 통하지 않는 존재인 것인가.
할머니에게 더 잘해드리지 못해서 항상 죄송스럽다. 내 마음에는 그 미안함이 천 근의 무게로 자리하고 있다. 많이 벌어서 여기저기에 모시고 가서 산해진미를 대접해드리고 싶은데, 이상은 저만치에 있고 현실은 이곳에 있어서 나는 방황한다. 할머니는 지금도 충분하니 걱정 말라고 하신다. 손자의 심정은 그렇지 않다. 할머니의 불꽃이 갈수록 사그라드는 듯해서 나의 속은 조바심으로 뒤엉키고 있다. 사정이 이러한데 몸까지 편찮으시니 나의 속은 더욱 난장이 되어간다. 6월 중순에 괜찮은 병원을 찾아서 할머니의 상태는 나아지셨지만, 나의 답답함은 가시지 않는다.
6월은 이러했다. 지치고 무겁고 불안하고 난처하고 속상하고 혼란스러운 일들의 연속이었다. 나는 그저 감내했다. 7월에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가야 할 것이다. 충무공께서 그러하셨던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