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사진은 2022년 4월 28일에 찍은 것이다. 어젯밤에 사진첩을 보다가 저 사진에 시선이 멈추었다. 이미 두 달 이상 지난 그때의 상황에 생각을 더하고 싶어졌다. 구태여 꺼내어서 당시를 더듬어본다.
최근에 사진 찍는 취미가 생겼다. 틈틈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카메라에 시선을 담는다. 2022년 4월 28일도 그런 날이었다. 모처럼 한가하여 카메라를 챙겨서 밖으로 나갔다. 아직 봄의 시원함이 공기 속에 스며 있어서 돌아다니는데 버겁지 않았다. 집 앞 단독 주택을 시작으로 골목과 놀이터, 주차장을 배회했다. 무심코 지나간 자리에 기록할 만한 찰나가 있는지 나는 바삐 두리번거렸다. 걸음 속도를 늦추고 관찰을 집요하게 하면, 주변에 꽤나 괜찮은 장면들이 있음을 알게 된다. 버려진 자전거가 피사체가 되고, 뛰어노는 아이들이 교훈이 되며, 해를 등진 건물이 근엄하게 다가온다. 나는 걷고 멈추기를 반복하면서 셔터를 눌렀다.
두 시간쯤 찍었을까. 집으로 돌아가려고 발걸음을 옮겼다. 돌아오는 길에 한 골목길을 통했는데, 길 가운데에 폐지 줍는 할머니가 있었다. 할머니는 어느 집 앞에 버려진 폐지 더미를 뒤적거렸다. 나는 멀리서 지켜보았다. 할머니는 보물을 찾듯 폐지들을 풀어헤쳤고 다시 모았다. 쓸만한 폐지를 발견하면 손을 뻗었고 작고 찢어진 폐지는 더미에 그대로 두었다. 한 집을 그렇게 확인하고 다음 집으로 폐지 유모차를 밀고 갔는데 한 집과 다음 집의 거리는 아득했다. 유모차는 오래된 것이었다. 바퀴가 바깥으로 휘었고 바퀴를 이은 축이 아래로 처져 있었다. 그런 유모차에 폐지들이 당신 몸집만 하게 쌓여 있었다. 할머니의 신발 밑창도 바깥 부분이 갈려 나간 상태였다. 나는 유모차와 신발이 할머니와 함께한 세월을 가늠하려다가 관두었다.
다섯 번째 집에 당도할 쯤에 할머니는 돌담에 앉아 숨을 골랐다. 유모차에 걸어 둔 손수건을 꺼내서 땀을 닦고는 무언가를 바라보았다. 구름을 보는 것 같기도 했고 하교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것 같기도 했고, 허공에 초점을 맞춘 것 같기도 했다. 아이와 아이 엄마가 할머니 앞을 지나갔다. 할머니의 고개는 두 사람에게 고정되었다. 아이와 여인이 다른 골목으로 꺾어 들어가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할머니는 그 두 사람에게 시선을 두었다. 할머니는 고개를 숙이고 무어라고 중얼거렸는데 들리지 않았다. 할머니의 표정에는 체념과 슬픔 같은 감정이 얼핏 보였다. 정말 그러한지는 알 수 없었다. 직접 물어보지 않는 이상 할머니의 속을 헤아릴 수 없는 것이었다. 할머니는 무릎을 짚고 일어나서, 아이와 엄마가 걸어 간 골목을 또 한참 쳐다봤다. 할머니는 고개를 숙이고 한숨을 쉬시더니 유모차를 끌고 앞으로 나아갔다. 나는 뒤에서 할머니가 놀이터 방면으로 사라질 때까지 가만히 서 있었다.
며칠 전에 커피를 사러 집 근처 카페에 갔다. 주문하고 기다리는데 저 멀리서 낯익은 사람이 다가왔다. 두 달 전에 봤던 그 폐지 줍는 할머니였다. 할머니의 유모차는 전처럼 폐지로 수북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초록색 종이로 만든 바람개비가 손잡이에 달려 있었다는 것이다. 만듦새를 보아하니 누군가 만들어준 바람개비였다. 날개 네 개의 모양이 삐뚤거렸지만 굴곡이 충분해서 바람개비는 바람을 잘 받아냈다. 할머니는 새 신발을 신고 있었다. 신발 갑피는 선명한 분홍색이었고 밑창은 닳은 구석이 없었다. 당신이 직접 만들고 구매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이 선물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할머니는 그사이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낸 듯하다. 나는 커피를 들고 멀어져 가는 할머니를 지켜봤다. 할머니의 발걸음이 차분했다. 바람개비는 가볍게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