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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지오 Sep 18. 2022

나폴리 정장의 역사

지중해의 멋


일러 두기

본 글에 나오는 나폴리 정장의 특징은 보편적인 특징에 해당한다.

여러 문헌을 참고했는데 저마다 기록이 다르다. 공통분모를 추려서 정리했다.






이탈리아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파스타, 명품, 자동차, 가구가 있을 것이다. 이 외에도 이탈리아를 상징하는 것이 있다. 바로 정장이다. 이탈리아 정장의 역사는 정장의 본고장인 영국 못지않게 유구하다. 이탈리아는 그들의 정장을 옷가지만으로 두지 않았다. 긴 세월 간 이탈리아인들이 건설한 문화와 아름다움을 담은 산물로 발전시켰다. 그 노력의 대가로, 이탈리아는 정장 대국으로 성장했다. 이탈리아에는 도시별로 정장 스타일이 다른데, 그중 나폴리(Napoli) 지역의 정장이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나폴리에서 정장을 만든 지 수백 년이 흘렀다. 이곳의 장인들은 선조에게서 물려받은 손바느질 기술로, 자국의 유산을 지키고 있다.



나폴리 테일러링(정장을 짓는 일)의 역사는 14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탈리아에서 남성복을 만드는 사람들이 더 나은 작업 환경과 수익을 위해 테일러링 협회를 만들었다. 그것이 1351년에 설립된 '콘프라테르니타 데이 사르토리(Confraternita dei Sartori)'이다. 15세기에는 나폴리에서 울과 실크 공장이 번성했다. 원단 산업이 형성되면서, 사회는 원단을 주기적으로 소비할 직업이 필요했다. 그 결과 나폴리에는 전문 테일러(정장을 짓는 재단사)를 육성하는 학교가 설립되었다. 콘프라테르니타는 졸업생의 일부만 정식 재단사로 인증했다. 17세기에, 이탈리아와 타국을 오가며 활동하는 테일러는 607명이었다. 나폴리는 런던과 파리와 더불어 남성 패션의 중심지로 떠올랐다.


그러나 18세기와 19세기를 거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이탈리아에서 꽃 피운 르네상스가 저물었고, 유럽의 패권은 프랑스와 영국으로 넘어갔다. 이탈리아의 1·2차 독립 전쟁과 통일이 일어나면서, 국가는 어수선했고 국고는 바닥이 났다. 불안정한 상황에서 테일러의 기술이 나아질 여지는 없었다. 유럽인들은 더는 나폴리 정장에 관심이 없었다. 나폴리 테일러링은 쇠퇴의 길을 걸었다.


나폴리는 소수의 부유층의 소비로 명맥을 유지했다. 나폴리 테일러들은 그들을 온전한 단골로 확보하기 위해 노력했다. 재단 작업실을 귀족의 집처럼 꾸몄고, 1:1 응대로 그들의 개인 이야기를 긴 시간 동안 들어주었다. 원단의 품질과 재단 및 재봉 기술을 향상하는데도 몰두했다. 장인들의 특별한 응대와 기술이 소문이 나면서 더 많은 부유층이 나폴리로 방문했다. 나폴리 테일러들은 또 한 번의 전성기를 누리기 시작했다.


20세기에 들어서 나폴리 테일러링은 대격변을 겪었다. 그전까지 나폴리는 영국의 테일러링에 기반을 두었다. 영국 귀족들이 나폴리 정장의 주 소비자였기 때문이다. 수세기 동안 영국 귀족들은 견문을 넓히기 위해 유럽 곳곳을 여행했다. 나폴리는 그들이 필히 방문해야 하는 도시였다. 영국 귀족들과의 접점이 많아지면서, 나폴리 테일러들은 자연스럽게 영국식 정장 재단법을 답습했다. 단단한 원단과 부자재를 활용하여 각이 잡힌 정장을 만든 것이었다. 나폴리가 안정을 되찾으면서, 나폴리에 장기 체류하는 영국인들이 늘어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한 사실을 깨달았다. 지중해의 열기와 습기가 있는 나폴리에서는 두껍고 무거운 정장을 오래 입을 수 없음을 말이다. 이  사실을 나폴리 테일러들 역시 알게 되었다.


빈센조 아톨리니(Vincenzo Attolini). ⓒAttolini


테일러들은 영국 정장의 구조를 개선해 나갔다. 이를 나폴리의 유명 테일러, 젠나로 루비나치와 빈센조 아톨리니가 주도했다. 두 사람은 정장의 어깨 패드를 빼고 원단은 하절기용 울을 썼다. 몸통에 넣는 얇은 심지를 제거했으며 안감은 반만 사용하거나 없앴다. 재킷 가슴부터 밑단까지 긴 다트를 넣어서, 패드와 심지 제거로 줄어든 볼륨감을 보완했다. 수많은 수정 끝에, 갑옷 같았던 정장은 카디건의 느낌을 지니게 되었다. 가볍고 편안하고 부드럽되 정장의 무게감도 뽐내는, 제2의 나폴리 정장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1980년대 아르마니 정장. ⓒGIORGIO ARMANI


새로워진 나폴리 정장을 세계 시장으로 진출시킨 인물이 있다. 그가 조르지오 아르마니이다. 아르마니는 자기 브랜드를 세우면서, 남성 정장은 나폴리 테일러링으로 제작하기로 했다. 그는 유연한 원단, 최소한의 부자재, 풍성한 어깨 볼륨감, 아래로 낮춘 라펠 고지선, 떨어지듯 흐르는 실루엣. 여기에 차분한 색감을 더하여 정장을 만들었다. 나폴리 테일러링에 자신의 개성을 입힌 스타일이었다. 아르마니의 정장은 처음에는 빛을 보지 못했으나, 1980년대에 미국 할리우드 배우들이 그의 정장을 입으면서, 아르마니는 큰 인기를 얻었다. 당시 미국을 비롯하여 각국의 복식 문화는 편안함을 추구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었다. 아르마니의 여유로운 나폴리식 정장은 그런 변화에 부합했다. 아르마니의 성공 이후 나폴리 정장은 하나의 정장 장르로 자리매김했다.



나폴리에는 많은 테일러가 상주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직업을 자랑스러워하고, 기술을 소중히 여긴다. 그리고 자신들의 기술을 후계자들에게 전수하는 것을 명예롭게 생각한다. 첨단 생산 설비가 등장했지만, 그들은 여전히 손으로 옷을 매만진다. 가위로 원단을 자르고, 바늘로 꿰매고, 다짐질로 원단에 굴림을 넣어서, 가볍고 편안하고 우아한 그래서 마치 지중해를 닮은 나폴리 정장을 만든다. 이것은 여러 세기를 지나 지금에 이르렀다. 나폴리 테일러들의 정신은 불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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