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코지오 Nov 26. 2023

무당의 말


  전임 강사로 일 한지 한 달이 되었다.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를 정도로 바빴다. 5개의 예비 고1 반을 맡았는데, 반마다 수준이 달라서 수업 구성을 다르게 짜야했다. 그 일은 쉽지 않았다. 그래도 어찌어찌해서 고3 모의고사 기준 4등급부터 1등급까지의 친구들을 이끌고 있다. 정이 쌓여서 호흡이 잘 맞는 학생들이 제법 생겼다. 이들은 항상 앞자리에 앉아 총명한 눈빛으로 나의 설명을 받아 적는다. 적은 내용을 쉬는 시간에 다시 상기하고 모르는 것을 질문한다. 이들의 정성에 나도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 매일 아침을 교재 분석으로 시작하는 이유이다.



  내 학생들은 내년에 17살이 된다. 똑같이 17년을 살았지만 영어실력은 천차만별이다. 나는 그 모습을 볼 때마다 기분이 묘하다. 어떤 학생은 벌써 수능 기출을 풀면 100점이 나온다. 다른 학생은 수능 기출은 고사하고 고1 모의고사 기출 점수가 56점이다. 나는 이 다름이 시사하는 무게감이 버겁다. 영어의 첫 단추를 어떻게 끼웠는지, 타고난 지능이 어느 수준인지, 부모의 성품은 어떠한지, 가정환경은 평온한지 등이 아이의 결괏값을 결정한다. 그것도 극명하게 말이다.

  점수가 높은 학생들은 끈기, 언어 감각, 부모 지원이 조화롭다. 반면에 점수가 낮은, 그중에서도 영어를 거부하는 학생들은 저 세 가지가 두드러지지 않는다. 요즘 후자의 학생들의 잠재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방법을 고심하는 중이다. 세상 모든 것이 재능에 달려 있다는 말에 동의한다. 그러나 영어 재능이 없어서 방황하는 학생들이 환골탈태하는 경우가 정녕 없는 것인지, 나는 계속 숙고하고 있다.



  용하다는 점집에 가서 점을 보았다. 사주는 몇 번 본 적이 있었으나 점은 처음이었다. 근래 들어 불안감이 올라와 정신을 또 흔들고 있었다. 답답한 마음에 무당의 말에도 귀를 기울여 보기로 했다. 내가 찾아간 무당은 50대로 보이는 여성이었다. 눈매가 날카롭고 묶은 머리에 작은 키였다. 방에 들어가자마자 ‘아가들을 가르치나 보오. 동자들과 씨름하느냐고 힘들겠네’라는 말을 했다. 무당은 나의 얼굴을 뜯어보더니, ‘아이고, 그 일 하지 마. 동자들이 자네 기를 다 빼앗아. 병들어 죽어. 안돼.’라고 말했다. 3분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무당은 나의 깊숙한 곳까지 들어왔다. 소름이 돋았다.

  그 뒤로 여러 대화를 나누었는데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무당의 말을 전부 믿을 필요는 없다. 어디까지나 참고 사항일 뿐이다. 그러나 거슬렸다. 무당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집에 오면서 생각해 보았다. 받는 돈에 비해 학생들한테 과하게 힘을 쓰지 말라는 말인가. 입시 강사로 일하다가 다른 영역으로 진출하라는 소리인가. 아니면 정말 뜻 그대로 강사 일을 하지 말라는 것인가. 예술 계통 팔자가 있어서 본인을 표현해야 하고 대나무처럼 곧아서 머리 숙이고 일하면 화병에 걸릴 것이라는 무당의 말이, 그간 나의 과거를 설명해 주는 듯했다. 집에 와서 영어 모의고사를 분석했다. 같은 지문을 몇 번이고 읽었다. 문장이 눈에 붙질 않았다.



  내일은 추스르고 대청소를 하려고 한다. 현재 밤 12시가 지났으니 오늘이구나. 집안 구석구석을 때 빼고 광 내서 잡념을 쓰레기통에 버릴 요량이다. 청소를 끝마치고 운동을 한 후 칼칼한 라면에 논알콜 맥주로 속을 채워야겠다. 기분이 양극단을 오가는 요즘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시작과 이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