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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지오 Jan 14. 2021

친구들의 '배신'은 달콤했다

성장을 위한 필요조건

7명



날 배신한 친구들이다.


앞에서는 위하는 척, 뒤에서는 칼을 꼽고 비웃은 친구들이다.


너덜너덜해진 정신과 육체로 한동안 방황했지만 끝에 가선 웃을 수 있었다.


나에게 친구들의 배신은 달콤한 사탕과도 같았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죽마고우처럼 지낸 친구들이 있었다. 나까지 포함하여 총 8명으로 구성됐다. 8명이 전부 친했던 것은 아니었다. 대신 같은 고등학교에 다녔어서 일부 친구들은 오고 가며 안면만 튼 정도였다. 난 7명 모두 알고 지내는 사이었다. 다들 됨됨이가 좋아서 다 같이 친구로 지내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도 한동안 끼리끼리 놀다가 22살 때쯤 내가 술자리를 한번 크게 잡았다. 다행히 다들 동창들이라 서로 크게 어색해 하진 않았다. 술잔을 기울이며 나는 이 모임을 왜 가졌는지를 설명했고 우리 모두 친하게 지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친구 녀석들이 흔쾌히 받아들였고 그렇게 우리는 맛있는 안주와 술로 끈끈한 우정을 만들어갔다. 이후에도 자주 모이며 시간을 보냈다. 돈을 모아 여행도 다녔고 시간 맞는 친구들끼리 커피도 즐겼다. 정말 즐거웠다. 이 친구들과 평생을 함께 하며 멋스럽게 늙고 싶었다.


그렇게 2년이 지난 2014년. 우24살이 되었다. 대부분 군복학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었고 정신없이 스펙 준비에 몰두했을 때였다. 어떤 친구들은 일찌감치 사회로 나와 돈을 벌었다. 대학생에서 사회인으로 넘어가는 그 중간 지점이 친구 사이에 여러 위험요소가 많다는 것을 경험해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바로 '경제적 문제'이다.

우리 모임 중에 6명은 학생, 2명은 사회인이었는데 경제적 차이가 벌어지면서 생활 패턴과 관심 분야가 판이하게 차이 나기 시작했다. 학생인 친구들은 대부분 취업, 과제, 대학 생활, 아르바이트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했고 돈을 버는 친구들은 재테크, 결혼, 만나는 여자, 색다른 사회 경험 등이 주를 이뤘다.


서로 배려하고 들어주면 탈 없이 지나간다. 하지만 어느 순간 한쪽이 상대방의 이야기를 '지겨워하는 순간' 문제는 발생한다. 그 문제가 우리에게 일어났다. 친구 한 명이 아버지가 하시는 사업을 이어받으면서 또래보다 엄청난 돈을 벌고 있었다. 현재 대기업 신입 초봉보다 높은 수준이었다.


사람이 여유가 생기면 불필요한 자랑을 할 때가 있다. 그 친구는 자신의 벌이와 구매한 명품을 은근히 자주 자랑했고, 심지어 도덕적이지 못한 곳에서 여성과 나눈 경험을 거리낌 없이 말했다. 이 친구가 이런 친구였나? 싶을 정도로 나머지 친구들은 적지 않게 당황했다.


학생이었던 친구가 이에 불편함을 내비쳤는데 사업하는 친구는 사과를 하지 않고 오히려 무시했다. '대학교 4년을 다니면 뭐하냐, 나보다도 지금 돈을 못 벌고 있는데 '라는 식의 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격 낮은 말이 입 밖으로 나온 순간 모임은 아수라장이 됐다.






그날 이후 단톡방에 채팅도 잘 안 올라왔다. 서로 사이가 얼어붙은 것이 보였다. 다들 마음에 맞는 친구들끼리 개인적으로 연락을 하는 듯 했다. 모임을 주최한 사람이 나였기에 내가 어떻게든 화해도 주도해보고 분위기 전환도 시도했지만 쉽지 않았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어서 친구들을 따로 만나 모임 존속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게 몇 명 만나다가 나랑 마음이 맞는 친구 한 명과 카페에서 만났다. 그런데 이때 나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이 친구가 이실직고 얘길 하는데 친구들 일부가 자기들끼리 내 욕을 했다는 것이다.


내가 쓸데없이 모임을 만들어서 귀찮게 했고

단톡방에 초대한 바람에 눈치가 보여 나가지 못하고

내가 리더 역할을 하는 것이 괜히 눈에 거슬려 보이고

트러블 생긴 친구들끼리 풀게 내버려두지 오지랖 부린다고 흉보고

...


심지어 그날 싸운 친구들은 이미 화해를 하고 자기들끼리 내 흉을 보고 다닌다고 했다. 내가 모임을 만들지 않았더라면 그냥 끼리끼리 잘 어울렸을 텐데 내가 나댔다는 식으로 말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새로운 관계가 형성되었고 주최자인 나를 비난하고 있었다.


그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들었을 때 두 가지 감정이 들었다. 왜 이 친구는 저 얘기를 나한테 빨리 말해주지 않았나 가 첫 번째. 사내놈들이 앞에서 좋다고 해놓고 뒤에선 왜 자기들끼리 수군덕거리며 날 험담했는지가 두 번째. 나는 말없이 커피를 마셨다. 속이 부대끼고 어지러웠다.


따로 만나서 이야기할 때는 '네가 고생이 많다, 이 모임을 잘 유지해보자.'라고 웃으며 말했으면서 안 보이는 자리에서는 저렇게 행동했다는 사실에 화가 치밀어 올라 볼살이 떨렸다. 난 그저 각자 능력들이 뛰어나고 성품들도 좋아서 함께 어울리면 좋을 것 같다는 순수한 마음으로 출발했다. 하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 자리에서 다른 친구도 불렀다. 솔직하게 말해 달라고 했더니 먼저 만난 친구가 한 얘기와 같은 말을 했다.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시간 낭비하기 싫었다. 겉옷을 챙겨 입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친구들은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난 친구들에게 아니 '그놈들'에게 "잘 살아라."라고 말하고 카페에서 나왔다.


더 웃긴 것은 그 뒤로 어느 누구도 나한테 먼저 연락을 안 했다는 것이다. 17살 때부터 각별한 사이로 지냈던 친구들이었는데 7년이란 세월이 그저 신기루였단 말인가. 나 혼자서만 친구였던 것일까. 절대로 절친들한테 함부로 하는 성격이 아닌 나인데 도대체 어디에서 실수를 했던 것일까.


정말 나는 쓸데없이 오지랖이나
부린 못난 놈이었던 것일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이렇게 씁쓸할 줄이야. 급등하던 주식이 하루아침에 휴지조각이 되는 것처럼 나와 친구들의 관계는 시시하게 끝나버렸다. 멍석은 내가 깔아 놓고 멍석말이에 두들겨 맞은 놈은 나였다.


인간은 혼자 있을 땐 모르지만 3명만 모여도 편을 가르고 싸운 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날 이후 가족, 여자 친구, 그리고 나를 끝까지 믿고 지지하는 친구 몇 명과 선배들 빼고 연락처를 다 삭제해버렸다. 인간관계에 대한 극심한 피로감과 회의감이 극에 달했다. 그래. 더 보란 듯이 성장해서 눌러버려야지. 지금 생각하면 유치하기 짝이 없는 생각이었지만 그때는 저 생각이 스스로에 대한 유일한 정신적 위로였다.


슬퍼만 하고 있기에는 더 분하고 억울해서 뭐라도 해야 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공부였다.


독하게 공부했다.


군복학을 앞두고 토익 점수, 개인 영어 공부, 자격증, 전공 공부를 정신 나간 사람처럼 파고들었다. 강한 분노는 사람을 초인적 힘을 발휘하게 했다. 여자 친구나 지인들을 만나는 시간 빼고는 책상에 앉아 공부만 했다.


내 브런치에 자주 등장하는 '운동'. 운동도 아주 열심히 했다. 채 아물지 않은 마음의 상처는 땀을 흠뻑 내는 운동을 할수록 조금씩 아물어갔다. 이때 내 운동 기량이 제일 좋았을 때였던 것 같다. 누가 보면 혼자 산에서 수련하는 사람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월화수목금 주 5일을 강도 높게 진행했다.


개인적으로 이 시기에 내면이 많이 성장할 수 있었다. 덕분에 복학해서도 학교 생활에 집중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불필요한 관계는 만들지 않았다. 남들이 의미도 없는 선후배 사이를 만들며 술 마시고 놀러 다닐 때 나는 오직 학과 공부와 스펙 쌓기에 열중했다. 그 결과 2015년 3학년 2학기 때 전액 장학금을 받았고 종국에는 과 수석 졸업과 동시에 1년도 안돼서 취업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외롭고 고통스러웠다. 믿었던 사람들에게 배신당하면 이런 기분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하지만 내 삶이 훨씬 담백해질 수 있었다. 인간관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다.


남과 친해지기 위해 광대가 될 필요가 없다는 것.

소중한 사람에 집중하면 된 다는 것.

이것이 인간관계의 전부라는 것.


말이다.





덕분에 내 연락처에는 40명도 안 되는 연락처만 등록되어 있다. 하지만 오히려 더 든든하다.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나에게 소중한 사람들이기에 누구보다 풍요로운 인간관계를 누리고 있다. 더 좋은 것은 내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에너지가 생겼다는 것. 그만큼 사람들한테 치여 살지 않기 때문이다. 일에 집중하니 성과는 잘 나오게 되고, 이는 나의 가치를 향상시켰다.


7명의 친구들한테 고맙다. 배신해준 덕분에 전보다 더욱 강한 사람이 되었으니까. 안 그랬다면 여전히 친구들과 어울리며 쓸데없는 곳에 돈과 시간을 낭비하며 중요한 시기를 놓쳤을 것이다. 물론 알아서 조절했겠지만 혼자 지냈을 때보다 그 정도는 많이 미약했을 것이다.



담담하게 적으려고 했지만 당시엔 너무 속상했다. 크게 한번 데이니 성격이 부정적으로 변하고 방어기제로 인해 나도 모르게 사람을 쌀쌀맞게 대하더라.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하나의 성장통이었다고 생각한다.


감당하기 힘든 아픔을 겪으면 처음에는 현실을 부정하고 스스로를 비관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단단해진다. 단단해지면서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몸과 마음이 강해진다.


나 또한 어느 순간 고통은 서서히 사라지고 마음에는 더 나은 미래를 향한 갈망으로 가득해졌다. 뜨거운 갈망은 더 높은 곳까지 닿을 수 있게 도와줬다. 시간이 흘러 뒤를 돌아보니 난 성장해 있었다.


그들이 현재 어떻게 사는지 전부는 모르지만 세 명 정도 지인을 통해 알게 됐다. 한 명은 하던 사업이 망해서 고향으로 내려갔고, 다른 한 명은 약혼자와 헤어졌으며, 나머지 한 명은 공시 준비를 하다가 연락이 끊겼다고 한다.



친구들의 배신은 달콤했다.

비록 나에게 고통을 안겨줬지만

그 어느 때보다 나란 사람을 극한으로 성장시킬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고통은 성장을 위한 필요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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