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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지오 Feb 21. 2021

보테가 베네타의 '깔끔한' 브랜딩

기본에 충실하기



최근 패션 업계에서 떠오르고 있는 브랜드,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


가죽을 엮어서 만든 인트레치아토(Intrecciato Weave) 디자인이 독특한 시그니처이다.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이러한 제작 방식은 전 세계 수많은 팬을 매료시켰다. 그렇게 독자적인 팬층을 쌓아가며 보테가 베네타는 다른 명품 브랜드와 결을 달리한다.


로고 플레이(로고를 제품에 표시하는 디자인적 기법)도 하지 않고 특별한 마케팅도 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들의 제품, 그리고 그 제품을 사용하는 '사람'에게 집중한다.


그들은 말한다.


"당신은 완벽하다. 그렇기에 큼지막한 로고나 화려디자인은 필요하지 않다. 그저 당신을 더욱 빛나게 해 줄 깔끔하고 뛰어난 품질의 무언가가 필요하다. 보테가 베네타는 당신의 존재가 가려지지 않도록 겸손하면서도 훌륭한 제품을 만들 것이다. 명품에 의존하지 말라.


When your own initials are enough

당신의 이름만으로도 충분하니까.






인트레치아토(Intrecciato Weave)의 탄생


Copyright 2016. bagaholicboy all right reserved.


보테가 베네타 하면 떠오르는 것이 바로 특유의 격자무늬 디자인이다. 이 디자인은 1960년대 후반에 만들어졌는데 가방의 구조적 한계를 개선하는 과정에서 개발됐다. 당시 보테가 베네타는 가죽을 활용하여 다른 브랜드보다 더 아름답고 튼튼한 가방을 만들고자 했다. 하지만 기존에 사용하고 있었던 재봉틀 기계로는 여러 겹으로 둘러싼 가죽을 꿰맬 수 없었다. 그래서 고안한 것이 인트레치아토 기법이다.


부드럽고 얇은 가죽을 촘촘하게 엮으니 가방 구조가 안정적이었다. 엮인 가죽들이 서로 탄력적으로 잡아당기기 때문이다. 또한 여러 가죽이 겹쳐지면서 내구성이 향상됐다. 통 가죽을 겹치는 것보단 두께가 얇아 바느질도 가능했다. 무엇보다 독특한 패턴으로 색다른 아름다움을 연출할 수 있었다. 이러한 장점으로 인트레치아토는 보테가 베네타의 상징적인 디자인 기법으로 자리 잡았다.


디자인 자체로 완벽해서 굳이 커다란 로고를 새길 필요가 없다. 구조와 형태도 단순하여 어느 패션이든 매치하기 좋다. 좋은 가죽과 실을 사용했으니 여러 물건을 수납해도 될 정도로 튼튼하다. 그냥 무심하게 툭 들고 밖으로 나가면 된다. 가방의 본질적인 역할에 충실하기에 그 자체로 완벽하다. 과묵한 가방 덕분에 드는 사람이 더 빛난다.


When your own initials are enough.

보테가 베네타의 가방은 브랜드 철학에 맞게 사용자의 품격을 높이는 일에 집중한다.




기본으로 돌아오다


브랜드가 성장하면 본래 설립 취지와 다른 방향으로 갈 때가 있다. 바로 '욕심'때문이다. 제품 라인업이 구축되고 단골 고객으로 인한 매출 상승이 발생하면 업계에서 주목을 받는다. 여기저기서 협업 제안이 들어오고, 신제품이 출시되면 금세 품절되며, 브랜드를 찬양하는 팬층은 더욱 확장된다. 하는 일마다 잘 되니 자신감이 한껏 올라온다.


하지만 이때가 가장 위험한 시기이다. 잘되고 있는 현실을 더욱 누리고 싶은 욕구가 올라오면서 잘못된 판단을 범하게 된다. 보테가 베네타도 마찬가지였다.


1990년대 패션 업계는 로고 열풍(Logo Craze)이 불었다. 많은 브랜드들이 다양한 아이템에 자사 로고를 프린팅 하거나 새겨 넣어 브랜드 가치를 높이려고 했다. 일반적인 중저가 브랜드나 명품 브랜드 할 것 없이 너도 나도 로고 플레이에 격정적으로 달려들었다.


다시 한번 보테가 베네타의 철학을 확인해보자. 그들은 'When your own initials are enough'를 주장한다. 우리 제품을 사용하는 당신이 명품이기에 브랜드를 억지로 드러낼 과한 로고나 디자인도 필요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이 철학을 계속 지켜나가는 것이 보테가 베네타만의 진정한 브랜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남들과 마찬가지로 '로고 열풍'에 편승하고 말았다.



Bottega Veneta의 'BV'를 활용하여 아이템 여기저기에 도배하듯이 디자인했다. 기존의 깔끔한 인트레치아토 디자인과 No-Logo 전략을 선호했던 충성 고객들은 지저분하고 복잡한 BV 로고 플레이에 적잖게 당황했다.


시장의 반응은 차가우리만큼 냉정했다. 보테가 베네타는 다를 줄 았았는데 트렌드 팔로워에 지나지 않다는 혹평이 난무했다. 잘못된 선택에 대한 결과는 가혹했다. 10년에 걸쳐 지속적인 매출 하락이 발생했고 파산 위기까지 맞았다. 그들은 결국 2001년 구찌를 소유한 럭셔리 패션 그룹 '케어링(Kering S.A)'에 인수됐다.


이를 지켜본 당시 구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톰포드(Tom Ford)는 보테가 베네타의 몰락을 너무나도 아쉬워했다. 찬란했던 브랜드가 단 한 번의 실수로 나락의 길을 걷는 모습을 지켜만 볼 수 없었다. 그래서 주변에 유능한 디자이너를 몰색 했고 보테가 베네타를 구원해 줄 구원 투수로 '토마스 마이어(Tomas Maier)'를 보테가 베네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했다.


Tomas Maier. Copyright 2018. luxuo all right reserved.


그는 첫 업무를 수행할 때 확실하게 말했다.


보테가 베네타의 기본으로 돌아가자.


보테가 베네타의 철학은 'When your own initials are enough'이다. 토마스는 전 임직원이 이 철학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끔 노력했다. 자사 제품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더욱 멋진 명품으로 보일 수 있도록 집중하는 것. 이를 위해 제품의 질을 확실히 높이고 불필요한 디테일은 모두 제거하며, 제품의 본질적 존재 이유를 다시 한번 상기하는 것. 그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지키고자 했던 제1원칙이었다.


이후 보테가 베네타는 자신들이 가장 잘하는 것에 집중했다. 인트레치아토를 완성도 높게 발전시켰고 세월이 흘러도 멋스러운 디자인과 컬러를 라인업에 적용했다. 또한 BV 로고를 삭제하고 격자무늬만으로도 브랜드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도록 신경 썼다. 떠났던 팬들은 'Intrecciato is back'을 외치며 기존의 멋진 모습으로 돌아온 보테가 베네타를 격하게 환영했다.




브랜드 철학을 더욱 확실하게


2018년, 17년 동안 보테가 베네타를 이끈 토마스 마이어의 자리를 이어갈 신규 디자이너가 임명됐다.


바로 '다이엘 리(Daniel Lee)'이다.


Bottega Veneta's Creative Director Dainel Lee


다니엘이 임명됐을 때 패션 업계는 엄청난 관심을 보였다. 그는 셀린느(Celine)의 전설적인 디자이너 '피비 파일로(Phoebe Philo)'의 수제자였기 때문이다. 피비 파일로 수제자인 것이 왜 중요한 것일까.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패션 브랜드라면 자고로 고객과 직접 소통해야 한다. 그리고 고객들이 브랜드 철학이 가득 담긴 오프라인 공간에서 옷을 마음껏 입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와 같은 감각적인 경험이 브랜드 충성도를 높인다.


또한 번잡하고 무의미한 마케팅에 힘쓰지 말고 뛰어난 품질로 승부를 봐야 한다. 패션 디자이너는 패션에 집중해야 한다. 그래야 사람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디자인을 할 수 있다.>



다니엘 리는 이 그녀와 7년간 함께 한 사람이다. 그 역시 비슷한 철학을 가지고 있다.


<온라인 상으로는 브랜드가 가진 깊은 철학을 이해하기 어렵다. 또한 디자이너라면 다양한 시선으로 패션을 해석해야 한다. 하지만 플랫폼에 갇혀 있으면 그런 생산적인 일을 할 수 없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돌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라며 최근 패션 브랜드들의 공격적인 온라인 마케팅이나 SNS 활동에 회의적인 시선을 드러낸 바 있다.


그래서 그런 걸까. 지난 1월 보테가 베네타의 공식 SNS 계정들이 모두 삭제됐다.




인스타그램은 물론 페이스북 심지어 트위터까지 전부 사라졌다. 특히 패션 브랜드에게 인스타그램은 정말 중요한 마케팅 수단이다. 플랫폼 자체가 '이미지'에 특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른 곳들은 다가올 s/s시즌 컬렉션을 다양한 SNS에서 앞다퉈 선보이는 와중에 보테가 베네타는 아예 반대되는 노선을 택했다. 이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가는 분분하나 일각에서는 '다니엘 리 다운 결정이다.'라는 평이 꽤 지배적이다.


패션 디자이너라면 패션 디자인 그 자체에 집중해야 한다. 그래야 라인업의 품질이 올라가고 아름다움은 배가 될 수 있다. 이는 착용하는 고객을 더욱 멋지게 만들어 준다. 특별한 것이 아니다. 보테가 베네타가 오랫동안 추구해온 'When your own initials are enough'이다.


다니엘 리는 이 철학을 더욱 공고히 다지기 위해 불필요한 브랜드 활동을 모두 중단한 것일지도 모른다. 온라인 마케팅과 기타 다양한 홍보 활동은 매출을 위해 중요할 수 있다. 하지만 더욱 본질적으로 접근하자면, 패션 브랜드는 '자사의 제품을 훌륭하게'만들어야 할 책임이 있다. SNS 플랫폼으로 아무리 눈길을 사로잡는 광고를 해도 제품이 비싸기만 하고 품질이 형편없으면 다 무슨 소용이겠는가.


이것을 보면 브랜드 철학은 구성원을 선택할 때도 아주 중요한 지표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신들의 철학과 결이 맞는 사람과 함께 해야 브랜드도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다. 토마스 마이어를 비롯하여 다니엘 리도 패션의 기본적 본질을 중요하게 생각한 사람들이기에 보테가 베네타의 철학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이다.






보테가 베네타에 대해 공부하면서 느낀 점은 참 '깔끔하게' 브랜딩을 한다는 이다.


온라인 마케팅도 안 하고 별다른 행사도 하지 않는다. 오직 보테가 베네타의 제품을 잘 만드는데 집중한다. 그래서 매장에 찾아오는 손님들이 그들의 철학을 이해하고 다양한 아이템을 경험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


이들의 담백한 행보에 팬들은 더욱더 열광한다.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은 사라졌지만 팬 계정들이 활동하고 있다. 보테가 베네타를 구매한 사람들의 룩북이나 보테가 베네타와 어울리는 감각적인 이미지를 자발적으로 정성껏 모은다. 이처럼 팬심에 의해 운영되기 때문에 그 어느 브랜드 계정보다 훨씬 '진정성'이 담겨 있다.


사람들마다 명품을 정의하는 기준이 다르다. 누군가는 자신의 부를 드러내는 수단일 수도 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순수하게 좋아하는 물건일 수도 있다. 보테가 베네타는 명품이란 '사람을 명품으로 만들어주는 '으로 정의했다. 그렇기에 깔끔해야 하고, 튼튼해야 하며, 겸손해야 한다. 그래야 사람이 물건에 가려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그들은


When your own initials are enough



라는 철학을 바탕으로 운영되어 왔다. 이에 맞게 제품 라인업,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작금의 SNS 활동까지 결정했다. 중간에 비록 힘든 시기도 있었지만 자신들이 본래 추구하던 본질로 돌아와 재기에 성공했다. 만약 로고 열풍 이후로도 브랜드 철학에 맞지 않는 인사(人事)나 온라인 활동 등을 선택했다면 힘든 길을 걸었을 것이다.


브랜딩을 위하여 브랜드 철학을 절대 바꾸지 말라는 법은 없다. 다만 구성원들이 모두 동의한 멋진 철학이라면 끝까지 믿고 밀어붙일 필요는 있다. 분명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본인들이 나아가야 할 길을 알려주는 든든한 기준이 될 것이다.


보테가 베네타는 현재 남들이 같은 방향으로 갈 때 홀로 다른 방향으로 묵묵히 걸어가고 있는 중이다. 결과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그 희생을 감수하고 긴 세월 지켜온 그들의 철학을 추구하는 자세는 역사적으로 오래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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