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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지오 Apr 25. 2021

잊을만하면 찾아오는 '비교병'

내가 잘난 건 무엇일까

'비교병'


나 자신을 남과 비교하여 나의 부족한 부분을 인식하는 병.


주기적으로 찾아와 내 마음을 후벼 파는 못된 고질 병.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는 습성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동물은 원래 자신보다 더 뛰어난 존재에 열등감을 느끼길 마련이니까. 난 왜 이렇게 부족한 게 많은지, 난 정말 잘난 구석이 하나도 없는 것인지, 저 사람은 어떻게 살아왔길래 저렇게 떵떵 거리며 사는 건지. 비교를 하면 할수록 내 처지는 동화 속 비극적인 인물과 별반 차이가 없는 듯하다.


나는 다른 사람과 끊임없이 비교하며 살았다. 하고 싶지 않아도 저절로 그렇게 됐다. 초등학생일 때는 '와, 쟤는 나보다 훨씬 좋은 장난감을 가지고 있네.' 중고등학생일 때는 '저 친구는 나보다 집안이 좋아서 비싼 학원도 다니나 보다.' 성인이 되어서는 '금수저인가. 저 나이에 벌써 스포츠카를...' 등. 곱씹어 볼수록 처량했다. 아니, 질했다. 현재는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그 정도가 덜하지만, 아직도 나보다 나은 사람을 보면 마음 한 구석이 괜스레 쓰리다.


책이나 강연에서 사람은 각자 장점 한 가지씩 가지고 있으니 남과 비교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사실 맞는 말이다. 우리보다 잘난 사람일지라도 그들에게 없는 것이 우리에게 있다. 그들도 우릴 보며 '와 저 사람은 저런 능력이 있네. 난 왜 없는 거지?'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은 이 사실을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가슴으론 이해하지 못한다. 어김없이 뛰어난 사람을 보면 자꾸 나 자신이 초라해 보인다. 긍정적인 것보다 부정적인 것에 시선이 쏠리며 불필요한 감정 소모에 허덕인다.


그런데 분명한 사실 한 가지는 있다. 남과 비교해도 얻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길동이가 나보다 돈을 많이 번다. 영희가 나보다 예쁘다. 철수가 나보다 성실하게 인생을 산다. 그래서 뭐...? 비교하며 시기 질투한다고 그들이 있는 돈을 나눠 줄 것인가, 아니면 나를 위해 못생겨질 것인가, 그것도 아니면 당장 내일부터 폐인처럼 살아줄 것인가.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쓸데없는 패배감에 젖어 나만 초라해질 뿐이다. 그들은 그들이고 나는 나다. 같이 태어난 열 손가락 길이도 모두 다른데 하물며 남은 오죽할까.


인생을 가장 처참한 꼴로 만드는 지름길이 '남과의 비교'이다. 상대방의 찰나의 순간만을 보고 그것이 그 사람의 전부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sns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특히 그렇다. 항상 어딜 놀러 가고, 항상 무언가를 구매하고, 항상 누군가와 함께 하는 모습만을 기록하는 사람들. 막상 만나서 이야기 나눠보면 빚에 쫓기거나 마음 병든 경우도 적지 않다. 회색 빛으로 물든 현실을 감추기 위해 연기를 하며 발버둥 치는 것이다.


이런 속도 모르고 우린 그저 눈에 보이는 것에 혹하여 나 자신을 부족한 인간으로 평가해버린다. 절대 그래선 안된다. 인생은 순간에 찍힌 점들이 모여 하나의 선으로 연결된 '그림'이다. 겨우 점 몇 개 찍어 놓고 '나는 결점 투성이다'라고 한탄하는 것은 우매한 행동이다. 아직 찍을 점이며, 이어야 할 선이며, 채워야 할 색이며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우리만의 멋진 그림을 위해서 내 눈에 있는 도화지에 집중하면 그만이다.






30대에 들어서면서 주변 친구들의 위치가 격동적으로 바뀌었다. 누군가는 좋은 사업 아이템으로 부자가 된 친구도 있고, 어떤 친구는 투자한 주식이 대박 나며 근사한 외제차를 한 대 뽑았다. 몇 년째 연락이 안 됐던 친구는 전문직 시험에 최종 합격하여 빛나는 금색 배지를 달게 됐다. 이렇게 보면 내 주변에 엄친아들 뿐인 것 같다. 처음에는 부러웠다. 눈 앞에서는 진심으로 축하했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그 어느 때보다 씁쓸했다. 하지만 최근에 조금씩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투자로 성공한 친구는 '자만'이라는 마법에 빠져 이번에 잘못된 투자로 큰돈을 잃었다. 그는 나의 신중함을 부러워했다. 대기업에서 불합리한 조직 문화에 시달리는 친구는 나의 자유로운 업무 환경을 부러워했다. 외제차를 타고 있는 친구는 불필요한 비용을 아끼고 있는 나를 부러워했다. 전문직에 종사하고 있는 친구는 내가 하는 일의 잠재력에 대해서 부러워했다. 그들도 알게 모르게 나와 그들 자신을 비교했던 것이다. 난 내 친구들이 부러워했던 것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이처럼 인간은 '가지고 있는 것'은 제대로 판단하지 못한다. 왜, 너무나 당연한 거니까. 하지만 그것조차 상대방에겐 먹음직한 떡처럼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말하는 나도 주기적으로 한 번 씩 비교병에 걸려 울컥할 때가 있다. 뭐 별 수 있나. 계속 나 자신을 달래고 멀리 내다보며 걸어가는 수밖에 없다. 그래도 비교라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 지를 알고 나니 전보다 마음은 편하다. 이 세상에 태어난 우리는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잘난 점이 하나씩 있다. 다른 사람들은 결코 가질 수 없는, 그래서 더욱 빛나는 장점을 지녔다.



비교병.


감기처럼 오가는 병이지만 생각보다 별거 아니다.

그러니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생각하자.


우린 그럴 자격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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