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쓴 글은 무엇일까

글의 본질

내 직업은 브랜드 라이터(Brand Writer)이다. 이름 뜻 그대로 브랜드에 대한 ‘글’을 쓴다. 그래서 필연적으로 문장을 다룬다. 간단한 카피부터 단문, 장문, 더 나아가 단편집 분량의 스토리 북도 제작한다.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브랜드의 숨겨진 이야기를 세상 밖으로 꺼내는 일이 무척 즐겁다. 평범한 소비자가 내 글을 읽고 브랜드의 진성 팬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보면 뿌듯하다.

---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 지금 잘 쓰고 있는 건가?

그동안 내가 쓴 브랜드 플롯을 다시 읽어보는데 뭔가 불만족스러웠다. '이때 이 부분을 이렇게 썼어야 했는데', '이 표현을 굳이 사용할 필요가 없었는데', '문장을 줄였어야 했는데' 등. 당시에는 클라이언트나 나나 만족했던 글이 구멍투성이로 보였다. 아니야, 이렇게 쓰면 오랫동안 일을 할 수 없을 거야. 더 노력하자. 이때부터 나는 스스로를 몰아세우기 시작했다.

---

맨 처음 한 일이 ‘집착에 가까운’ 독서였다. 거의 3개월 동안 활자 중독자가 되길 자처하며 글에 파묻혀 살았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책상에 앉아 책을 읽었다. 일이 없으면 잠들 때까지 책을 손에 놓지 않았다. 항상 비문학 책을 즐겼는데, 필력을 늘리겠다는 이유로 평소 관심도 없었던 소설, 에세이, 시까지 닥치는 대로 읽었다. 확실히 전보다 문장을 써 내려가는 힘이 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래도 만족스럽지 않았다. 마음 한 구석이 계속 찝찝했다. 작서법에 문제가 있나? 글을 구성하는 방법을 배워야겠다. 이후로 나는 온갖 자료를 뒤지며 작서법을 탐구했다. 문장 배치, 문맥 흐름, 문장 요소, 심지어 조사의 활용까지. 말이 작서법 공부지, 한국어를 다시 파헤쳤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때 브런치 외에도 워드에 생각을 정리하며 글쓰기 연습을 많이 했다.

그런던 와중에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주변 사람들의 피드백이 내 기대와 달랐기 때문이다. 그들은 기껏 공들여 쓴 글에는 별 반응이 없고, 오히려 아무 생각 없이 휘갈긴 한 두어 줄 문장에 관심을 보였다. 그중 친구 한 명이 이런 말을 했다.

“읽은 사람이 좋으면 잘 쓴 글이지, 뭘 그렇게 집착을 해.”

뭔가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그동안 나는 글을 너무 학문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핵심 문장은 서두에 배치하고

감정적인 형용사나 부사는 줄이고

번역투 문체는 지양하고

서론, 본론, 결론 구조를 지키고

주어와 서술어를 일치시키고...

이처럼 방법에 몰두한 나머지, 글의 본질은 놓쳤던 것이다. 결국 글이라는 것은 글쓴이의 생각과 감정 혹은 정보를 표현하는 수단이다. 이것을 읽는 자가 깨달음을 얻거나 도움이 되었다면 ‘잘 쓴 글’이다. 그게 한 명일 지라도 말이다. 적어도 그 한 명에게는 우리가 선한 영향력을 끼쳤으니까.

단순히 수많은 사람이 읽었다고 해서, 가장 많이 팔린 글이라고 해서,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고 해서 잘 쓴 글은 아닌 듯하다. 또한 한 치의 오차 없는 문단 구성과 뚜렷한 주제를 담고 있다고 해도 역시 좋은 글이라고 보기 어렵다. 잘 쓴 글이란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이다. 사람마다 좋아하는 음악 취향이 다르듯이 말이다. 논리 정연하게 썼든, 허술하게 썼든, 프로 작가가 썼든, 아마추어 작가가 썼든. 누군가 읽었을 때 그 사람이 좋다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최고의 글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

이후로 글을 대하는 태도가 보다 유연해졌다. 마음을 내려놓으니 전보다 브랜드 글이나 내 개인적인 글이나 더 즐겁게 쓰고 있다. 물론 글의 기본적인 퀄리티 유지를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다만 전처럼 너무 이 잡듯이 내 글을 파헤치려고 하진 않는다. 분명 지금 쓴 이 글 자체로도 어떤 사람에게는 좋은 영향을 줄 것이니까.

최근 글쓰기 강좌가 많아졌다. 하지만 적지 않은 강의가 ‘방법론’에 치우친 듯하여 아쉽다. 물론 글을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쓰는 방법을 배우면 큰 도움이 된다. 나 또한 그랬다. 그렇지만 그것보다 사람들이 글의 본질적인 의미를 더 깊이 고민했으면 좋겠다.

어설프게 쓰면 뭐 어떤가.

누군가에게 작은 행복을 주었다면 그걸로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