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제대로' 듣질 못한다

올바르게 듣는 방법

by 코지오


우리 모두 청력을 잃고 있다. 소리를 들을 수 있는데 청력을 잃다니. 여기서 말하는 청력은 물리적인 능력이 아니라 ‘정신적인 능력’을 의미한다. 즉, 상대방이 어떤 의도로 말을 하고 있는지, 어떤 감정을 내비치는지 파악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운드 컨설턴트 ‘줄리안 트레저(Julian Treasure)’는 현대인들의 고질병 중 하나가 이와 같은 ‘맥락적 청력 손실증’이라고 지적한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말만 고집한다.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은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아니, 애초에 관심조차 없다. 말 그대로 ‘듣지 못한다.’ 그래서 오해가 생기거나 불필요한 다툼이 발생하기도 한다. 우린 이런 세상에서 살고 있다. 그 정도는 심해지고 있으며 개선될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





2년 전의 일이다. 대학 동기와 후배 몇몇이서 만났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근처 카페로 들어갔다. 각자 주문을 하고 음료를 가져온 후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한 사람이 말할 때 나머지 사람들은 대충 듣거나 스마트폰을 하기 바빴다. 말하는 이가 민망해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하지만 그 사람조차도 자기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


난 이런 모습을 가만히 지켜봤다. 불편한 감정이 솟구쳤다. 왜 돈과 시간을 쓰며 여기까지 왔을까. 결국 참다못해 한마디 꺼냈다.


“저기 잠깐만. 아니 왜 사람이 말을 할 때 스마트폰만 들여다봐?”


정적이 흘렀다. 다들 눈을 끔뻑거리며 날 쳐다봤다.


“이럴 거면 그냥 카톡으로 대화를 하지. 안 그래?”


동기 녀석이 어색한 웃음소리를 내며 말했다. 그래, 우리 너무 스마트폰만 보는 것 같다. 오늘만큼은 얼굴 보면서 즐겁게 놀자! 라며 분위기를 풀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자리인 만큼 난 조금 더 각자에게 집중하며 시간을 보내길 바랐다. 그 뒤로 모임을 몇 번 더 나갔지만, 눈앞에 펼쳐진 모습은 여전히 작은 전자 기기에 정신이 팔려 있는 친구들이었다.


안타깝게도 이런 일은 일상 속에서 부지기수로 일어난다. 카페나 식당 같은 곳에 앉아 가만히 주변을 둘러보자. 상대방이 말할 때 넋이 나가 있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너는 떠들어라 난 내 할 일 하련다 식으로 딴청을 피운다. 아니면 자기 얘기만 하느냐고 상대방의 말과 계속 충돌이 일어난다. 그 충돌은 잡음으로 변질되고 두 사람의 관계는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듯 이어진다.


인간은 소통의 60%를 듣기에 사용한다. 그러나 겨우 25%만 상대방의 말을 들을 뿐이다. 듣기 전체의 절반 이상을 낭비하고 있는 셈이다. 도대체 이유가 무엇일까. 줄리안 트레저를 비롯한 관련 전문가들은 ‘빠르고 자극적인 세상’에 그 원인을 두고 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빨리 얻는 세상. 자극적이어야 관심을 주는 세상. 이런 세상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은 ‘천천히 호흡을 맞춰가며 소통하는 행위’ 자체가 답답하다고 여기게 됐다.


결국 얻은 것은 무엇인가. 다른 사람의 말을 충분히 듣고 이해하지 못하는 ‘맥락적 청력 손실증’이다. 메시지를 멋대로 해석하거나 제대로 이해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인지하지 못하는데 적절한 대응이 가능할까. 불가능하다. 이로 인해 갈등이 생기고 관계는 틀어지며 더 넓게는 국가와 국가 간의 전쟁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반대로 말하면, 그동안 우리가 수없이 겪어 왔던 기분 나쁜 경험과 감정 대다수는 ‘듣기’만 잘했어도 거의 없었을 일들이라는 것이다.


잘못된 듣기 습관은 꽤나 심각한 손해를 만든다.






올바르게 듣기 위해선 훈련이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평소에 자극적인 노출을 피하는 것이다. 사람은 강한 자극이 가해지면 ‘도파민’이라는 호르몬을 분비한다. 그럼 우린 쾌락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도파민은 만족을 모른다. 계속 더 강한 자극을 원한다. 그래서 나도 모르는 사이 강렬한 쾌락이 주는 즐거움, 이를 테면 게임, 도박, 마약, 혹은 특정한 무언가에 ‘중독’되어 간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상대적으로 평범한 자극의 대화는 집중하기 어려워진다. 그러므로 자극을 줄여 작은 것에도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심리 환경’을 만드는 것이 좋다.


그다음으로 가장 중요하면서도 간과하기 쉬운 것. ‘듣기’에 집중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무엇을 말하는지 토씨 하나 놓치지 않고 듣는다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의 감정, 생각, 말투, 표정 등을 천천히 관찰하는 것이다.


‘이 사람은 이런 대화를 할 때 저런 표정을 짓는구나.’

‘저런 감정을 느끼고 있었네. 앞으로 내가 더 조심해야지.’

‘그동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군. 대화를 자주 나눠야겠어.’


생각보다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친한 사이라면 전보다 가까워질 수 있는 방법을 배울 수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면 구태여 감정 소모를 막을 수 있는 실마리를 얻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 주변에서 다른 사람들과 크게 모나지 않게 지내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고통점은 대체로 ‘듣기’를 잘한다. 상대방의 메시지를 섬세하게 파악하고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빠르게 판단한다. 이런 사람들 주변에는 늘 사람들로 가득하다.



잘 들어도 손해는 보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듣지 않고 독단적인 언행을 일삼는 사람들의 말로는 좋지 않았다. 아무리 우리가 잘난 사람일지라도, 놓친 것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 근간을 메꾸기 위해선 상대방을 진심으로 이해하며 듣는 성숙함이 필요하다. 그럼 이 세상은 더욱 살기 좋은 곳으로 변할 것이다.


분명 그럴 것이다.










<줄리안 트레저(Julian Treasure)의 강연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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