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다면

앉아서 고민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by 코지오


우리의 엉덩이는 너무 무겁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강연자이자 저자인 '닐로퍼 머천트(Nilofer Merchant)는 '산책이 참신한 아이디어를 생산하는데 좋다'라고 말한다. 그녀는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문제를 해결하려 할 때 앉아서만 고민한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움직이지 않고 모니터 앞에, 혹은 긴 테이블 주변에 모여 심각하게 생각해도 반짝이는 아이디어는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다.


의자가 발명되고 인터넷 보급률이 늘어나면서 현대인은 하루 평균 9.3시간을 앉아서 생활한다. 평균 수면 시간인 7.7시간 보다 더 많은 수치이다. 앉아 있는 것도 양질의 환경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방은 막혀 있고 창백한 형광등 아래에서 온갖 전자 기기로 둘러 쌓여 있으며, 필요한 순간(화장실, 무언가를 가지러 갈 때 등) 외에는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막힌 시야, 과도한 전자파, 굳어진 신체. 이런 상태는 우리 뇌를 지치게 만든다. 지친 뇌는 활동성이 떨어지며 능률 저하를 일으킨다. 즉, '아하!'를 외칠 만한 아이디어를 만드는데 무리가 있다는 뜻이다.


닐로퍼의 강연을 보면서 공감했다. 나 또한 글을 쓰는 직업을 갖게 되면서 '아이디어'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전에 평범한 직장인이었을 때는 잘 몰랐다. 그냥 주어진 일에 충실하게 집중하면 됐으니까.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브런치 운영도, 브랜드와 협업하는 일도 모두 아이디어에서 판가름 난다. 깜빡이는 마우스 커서만 쳐다본다고 해서 고민이 풀리지 않는다. 앉아 있을수록 머리는 단단하게 굳어간다.






걸어야 비로소 보인다


작년 초겨울에 프로젝트를 하나 맡았다. 보통 나 혼자서 처리를 하지만 디자인적 요소가 필요하여 아는 디자이너와 함께 진행했다. 그런데 평소와 달리 일에 진척이 없었다. 다양한 레퍼런스를 참고하며 텍스트와 디자인을 수정했지만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경복궁 근처에서 만나 커피를 한 잔 했다. 그리고 밖으로 나와 삼청동 일대를 천천히 산책했다.


길거리에는 겨울 분위기가 차오르고 있었다. 11월인데도 크리스마스 캐롤을 틀어 놓은 가게가 있었고, 사람들은 따뜻한 호떡을 사 먹고 있었다. 나무들은 반짝이는 조명으로 장식되어 있었으며, 하늘은 어둑한 남색으로 물들었다. 초겨울의 감성을 보니까 그동안 잔뜩 움츠려 든 몸과 마음이 느슨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그런 걸까. 며칠 째 막혀있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책상에 앉아 몇 시간이고 고민할 때는 생각도 안 났는데 바깥공기를 쐬며 산책을 하니까 비로소 답을 찾았다. 덕분에 우린 3일 동안 빠르게 프로젝트를 마무리했고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브런치를 쓸 때도 마찬가지다. 어떤 소재를 선택할지, 제목은 무엇으로 정할지, 문맥은 어떤 흐름으로 구성할지 등 모든 것이 아이디어 영역이다. 접신이 된 것처럼 잘 써지는 날도 있는가 하면, 아무리 방안을 서성이며 고심해도 한 줌의 아이디어 조차 떠오르지 않을 때도 있다. 이럴 땐 그냥 밖으로 나간다. 정처 없이 동네를 돌아다니다 보면 자연스럽게 소재나 문장이 떠오르곤 한다.


이처럼 산책을 통해 문제를 해결한 사람들이 적지 않다. 故스티브 잡스도 새로운 아이디어를 위해 수석 디자이너와 산책 회의를 자주 했고, 스타벅스의 하워드 슐츠도 해변가를 돌며 사업 아이템을 개발했다. 이뿐만 아니라 페이스북, 구글, 링크드인, 삼성, 현대 등 국내외 굵직한 기업들의 CEO들은 모두 산책을 좋아했다.


산책이 아이디어를 생산하는데 좋다는 사실은 과학적으로 밝혀졌다. 옥스포드 대학 연구팀에 의하면, 인간의 뇌는 걸을 때 행복 호르몬인 '세로토닌''엔도르핀'을 분비한다고 한다. 이 두 호르몬은 뇌세포를 자극하여 창의성을 기존 대비 약 60% 이상 끌어올려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가만히 앉아서 고민하는 것보다 바깥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며 생각하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


인간은 태초부터 늘 이동하면서 진화했다. 움직임이 우리 DNA에 내재되어 있기 때문에 걷는 것은 '발전'에 자극을 준다. 푹신한 의자에 눌러앉아 멍하니 있으면 몸은 몸대로 병들고, 생각은 생각대로 쇠퇴할 뿐이다.






밖으로 나가자


벌써 봄기운이 가득한 4월도 중순을 넘어가고 있다. 곳곳에 예쁜 꽃들이 만발했고 하늘은 더할 나위 없이 푸르다. 사람들의 옷차림도 가벼워졌고, 주인과 마실 나온 귀여운 강아지들도 많다. 우리나라의 가장 큰 장점은 계절별로 주는 느낌이 다르다는 것이다. 또한 같은 계절이라도 달마다 미묘하게 차이가 난다. 봄을 예로 들자면, 3월은 녹색과 파란색이 섞인 느낌이고 4월은 파란색과 노란색이 섞인 느낌이다. 둘 다 파란색을 띠는 봄이지만 4월이 조금 더 화사한 편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시기에 산책을 하면 없던 아이디어도 떠오르길 마련이다. 좁은 책상에 앉아 진하게 탄 커피를 마시며 머리를 싸맨다고 상황이 나아지진 않는다.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필요하다면 엉덩이가 가벼워야 한다. 회의를 해야 한다면 또는 어떠한 프로젝트를 완수할 묘책이 필요한다면. 의자에서 박차고 일어나 답답한 실내를 빠져나오자. 그리고 밖으로 나가 천천히 주변을 거닐며 산책을 하자. 지나가는 사람도 구경하고 싱그러운 자연도 만끽하며 걷다 보면 훨씬 양질의 해결책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닐로퍼 머천트(Nilofer Merchant)의 강연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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